장신대 채플에서의 설교

왜 신학생들은 M교회에게 그리도 불만인가?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4/21 [03:16]

장신대 채플에서의 설교

왜 신학생들은 M교회에게 그리도 불만인가?

공헌배 | 입력 : 2019/04/21 [03:16]

 

위의 동영상을 통해 몇 가지의 주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명성교회의 세습(?: 목양지 계승)에 침묵하지 마십시오! 2. 지연 된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3. 부총회장 압박 4. 총회 재판국에 대한 촉구(?) 5. 선배 목회자들이 몸소 보여주십시오! 6. 재산증여? 무슨 증여? 7. 영성의 쇠퇴, 신학교의 정원미달,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 등. 8. 사회로부터도 지탄 받는 교회 9. 불법 세습(?)무슨 불법(?)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7번부터 보겠다: 부총회장은 총회장 후보이며(차기 총회장), 교단 문제를 살펴야 할 뿐만 아니라 총회정책에도 신경 쓰셔야 할 분이다.

 

7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교회의 쇠퇴이다.

 

이 말씀이 옳은 지, 그른 지를 차치하고, 그냥 그분 말씀대로 해보자.

 

경제원리나 수요와 공급의 기초이론대로 하면, 부총회장님의 말씀을 따를 때: 한국 통합 교파의 현 사태는 성장 침체다. 그러므로 이럴 때에는 공급을 줄여야 한다. 즉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목사과잉공급을 줄이고, 신학생들을 받는 문제나 신학교의 운영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설명하면, 성직매매 또는 교직매매로 부를 수 있다.

 

이에 대해 살펴보자:

 

본질적으로 성직매매와 직접적 연관이 될 수 있는 기구들은 총회의 고시부와 총회의 신학교육부이다. 다시 말해 신학교육기관이야 말로 성직매매적 구조에 노출되기에 가장 좋다. 그렇다면 그 성직매매의 문제는 어느 특정 개()교회보다도 신학대학교에 해당한다. 그럼 성직매매의 문제에 대해 논해보자;

 

고용수, “예장교역자 수급계획을 위한 조사연구,” <敎會神學> ⅩⅦ (1985. 5): 403-460을 따르면, 그 당시 예장 통합 교파의 전국교역자 통계 및 수급현황 등을 그래프까지 그려가면서 기초조사에 충실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논문이 게재되어 있다.

 

그 논문의 408<1>을 따르면, 전국의 교인 수 증가와 교역자들의 수 증가를 대비했는데, 1976년부터는 교역자들의 증가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래서 1984년도에는 그 차이가 꽤 벌어진다. 다시 말해 교인수의 증가에 비해 교역자들의 증가 수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표이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약 35년 전의 일이다. 그 후로부터 35년이나 지난 뒤이니까, 오늘날의 교역자 과잉추세는 더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따라서 성직매매와 같은 구조의 가장 심각한 요인은 신학교육기관에 있다. 따라서 그 설교는 신학교를 겨냥해야 했다.

 

그리고 장로회 신학대학교의 신입생들 선발은 다소 편법적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신학대학원(목사후보생들 교육기관) 입학시험에서, 1995학년도에는 입학 정원이 삼백 몇 십 명이었으나 1996학년도에는 450명으로 늘였다가, 1997학년도에는 이백십 몇 명으로 다시 줄였다. 1년 사이에 이렇게 정원이 들쭉날쭉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교육부가 지정한 인원보다 월등하게 많은 인원들을 지속적으로 뽑아 왔던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 또한 궁금하다.

 

그리고 입시 유형의 경우 95년도 신대원 신약성경의 출제는 그 이전에 보지 못했던 파격적 유형이었다. 예를 들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아람어 다섯 개를 쓰시오(김진성 편, <. 구약 성경 문제집>, (서울: 도서출판 장신선교, 1996), 296)라는 문제는 아주 놀라웠다. 심지어 92년에는 마태복음 16장 중간 부분에 무슨 기사가 나오냐(<같은 책>, 285)라고 묻기도 했는데, 이런 유형의 문제는 복사기가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왜 인간을 복사기처럼 취급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이와 같은 유형의 문제를 출제해도, 그 입학경쟁률이 61에서 71정도였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는 그 신학대학원의 갑질이 아닐까 싶다.

 

과연 이와 같은 행태는 성직매매라는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개혁교회의 목양방식에 있어서의 목사(牧師), ()들이 있어야 한다. 즉 양들이 없으면, 목사라는 직책이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양들이 모인 교회로부터의 합법적 부름(lawful calling)이 있어야 한다(The Form of Presbyterian Church-Government according to the Westminster Standards (1645), “The Rules for Examination.”; David W. Hall and Joseph H. Hall ed., Paradigms in Polity: Classic Readings in Reformed and Presbyterian Church Government(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4), 274-277).

 

그래서 목사로의 부르심은 교회의 상황과의 밀접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신학교에서 무작정 배출해 낸다고 하여, 그 많은 목사들을 교회들이 다 받아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래서 배출된 목사후보자들을 교회들이 받아주지 않거나 더는 목사들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목사고시를 중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리될 경우에는 신학교의 운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중세 말에 견준다면 성직매매(simony)를 행하였던 얀 후스의 시대가 연상된다(J. Hus, “On Simony,” in Advocates of Reform: From Wiclif to Erasmus: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ed. M. Spinka (London: SCM Press, 1958), 196-278).

 

후스는 신성모독, 변절(배교), 성직매매를 세 종류의 이단(異端)으로 여겼다(Hus, “On Simony,” 199.).

 

교회경기가 침체되고(마이너스 성장?), 목사들이 과잉 배출되고 있다면, 목사고시의 중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총회장은 총회의 행정을 담당하는 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5번 선배 목회자들이 몸소 보여주십시오!

 

말 잘 했다: 우리의 적지 않은 선배 목회자들은 적지 않게 몸소 보여주셨다.

 

이에 대해서는 일일이 길게 설명하기조차 힘들다. 과거의 교역자들은 너무도 헌신적이셨다.

 

과거의 목사님들은 죽여도 가고, 굶어도 가며, 때려도 갔다. 그러나 요사이에 목사를 때리면 일 난다. 요사이에는 굶지 않는다. 옛날에는 목사라는 그 명예 하나 만으로도 큰 영예를 얻은 것처럼 감사하며, 헌신적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아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불신집안에서 자라다가 죽을 고생을 해가며 예수를 믿은 사람이 있었다. 만일 이런 분이 목사가 되면 어떻게 할까? 죽기 살기로 했다. 목숨 내팽개치고, 피까지 짜 바치며 했다. 어지간한 환란이 와도 뚫고 나간다. 그에게는 어려운 환경이 주어져 있었다. 많은 문제들이 닥쳐왔다. 그러나 그는 어떡하든 교회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는 실지로 그렇게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쓰셨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직책을 맡겼을 때, 그는 기적을 일으켰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자신의 직책에 영예를 걸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그랬다. 쉽게 말해 완장을 채우거나 직책을 맡겼을 때 용감해졌던 민족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그 직책들의 값어치를 알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의 목사님들은 가난하고 굶어도 그걸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분들에게는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옛날 목사님들 중에는 일제순사한테 잡혀가 죽을 고생을 하는데도 버티는 분들이 계셨다. 왜 그게 가능할까?

 

그분들을 용감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그 능력이 무엇일까? 그 분들을 명예롭게 만든 그 힘이 어디에 있었을까? 바로 그게 성령의 임재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셨던 방식이었다.

 

그대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M교회도 개척교회로 출발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보여 준 놀라운 교회다.

 

그런데 무얼 더 보여 달란 말인가! 보고도 모르겠는가?

 

2. 지연 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라는 말은 논리가 아니다. 추상명사처럼 느껴진다. 다만 정의를 명분으로 의지들 간의 충돌이 일어난다.

 

지연시키지 말라는 뜻이 총회재판국을 추동하는 말인가? 즉 총회재판국 더러 재심하란 소린가? ? 그게 왜 정의인가?

 

법리적으로 하면, M교회를 주제로 한 행정소송은 당사자 적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각하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법 정의이다!

 

6. 재산증여: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M교회의 재산들은 교회공동체의 소유다. 민법에 의하면, 교회는 재산총유이며, 비법인 사단이다. M교회도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무슨 재산을 증여했는가? 교회재산을 증여했는가?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00목사님은 M교회에서 시무하시는 분으로서, 교회에서 주시는 생활비를 받는다. 대한민국에 있는 거의 모든 목사님들은 생활비를 받는다. 즉 월급생활자에 가깝다.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일일이 답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다만 과거의 헌법조례 문답집에서 신학생들을 어떻게 여겼는지 살피겠다:

 

곽안련 옮김, <교회정치문답조례>를 따르면, 다음과 같다:

 

313: 牧師候補者(목사후보쟈)라난거슨무어시뇨(* 원문에는 띄어쓰기 없음).

: 牧師候補者(목사후보쟈)라난거슨牧師(목사)되기를()하난()本老會(본로회)該敎友(그교우)에계()하야信仰(믿음)牧師(목사)되기를()하난理由(리유)牧師職分(목사직분)()資格有無(자격유무)調査(됴사)()神學校(신학교)入學(입학)함을許諾(허낙)할거시니라

 

314: 牧師候補者(목사후보쟈)난누구의管轄下(관할아래)에잇나뇨

: 本敎會堂會(본교회당회)管轄下(관할아래)에잇고學業(학업)關係(관계)되난()老會(로회)基才智(그재지)勤慢(근만)考察(고찰)하얏다가講道認許(강도인허)合當與否(합당여부)作定(쟉뎡)하되不足(부족)()認定(인뎡)하면該名簿錄(그명부록)에셔 基名(그일흠)削去(삭거)할지니라

 

이게 상당히 중요하다. 오늘날에는 신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학교 내의 규율로써 처벌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신학교에서 가만있어도 노회에서 그 신학생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명하거나 그만두게 하거나 정학시킬 수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목회자 후보자들(신학생들)을 관할하는 곳은 노회다!

 

그러면 오늘날의 노회에서는 신학생들이나 신학교수들을 소환하여, 치리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

 

교수는 노회 소속이고, 신학생들은 지()교회 소속이므로 치리는 가능하다.

 

물론 치리를 하란 소리는 아니다!

 

내가 듣기로 김00목사님은 타인에게 관대하신 분이셨다. 누굴 해롭게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그동안 M교회가 신학교와 신학생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도와주셨는가?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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