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단상: 성서의 복개념(구약에서 신약까지)

땅으로부터 하늘로 상승곡선을 그려

황규학 | 기사입력 2019/03/10 [01:04]

설교단상: 성서의 복개념(구약에서 신약까지)

땅으로부터 하늘로 상승곡선을 그려

황규학 | 입력 : 2019/03/10 [01:04]

야곱의 복개념의 변화
 
야곱이 추구한 복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장자축복권-생명-소유-여인-자식-형과의 화목입니다. 이웃과 형제와 화평이 진정한 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과 교회는 소유로 인해 분쟁을 합니다. 소유 때문에 진정한 복인 화목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유가 없어도 화목하게 사는 사람은 야곱처럼 그 사람의 후손 중에 왕들이 태어날 것입니다. 즉 귀한 왕 같은 제사장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화목하다면 그 교회를 통해서 선교사나 목사, 훌륭한 왕같은 제사장들이 많이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그러나 한국교회는 분쟁중입니다.

 

소유의 복을 누린 야곱이 바로왕 앞에서 하는 고백은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복을 많이 받았지만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우같은 부인도 없고 토끼같은 자식도 없으며 죽더라도 파묻을 묘자리 한 평 없는 누가보아도 인간적으로 비참한 사도바울의 인생말년 고백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고백합니다. 
 
엘바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의 고백은 "내 인생 중 평안했던 날은 6일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멀고 귀가 먹고 벙어리인 헬렌켈러는 임종을 마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문 후유증과 평생 병으로 얼룩졌던 천상병시인의 마지막 말은 아름다운 세상에 소풍왔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면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말련의 고백은 대체로 헛살았으며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보다 참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적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누린 솔로몬의 마지막 말은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복과 행복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영어 단어로는 blessing이지만 복의 상태나 조건을 말할 때는 beatitudes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의 대부분의 복 개념은 물질적인 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의 복은 생산과 의식주와 연관이 있습니다.
 
 1. 구약의 복개념: 현실적인 복, 율법적인 복
 
구약의 복개념은 가나안 땅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 이전은 주로 현실적인 복과 관련이 있고 이후는 율법적인 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 가나안 복지 이전-족장 사회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새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
 
이 복은 영원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얻는 현실적인 복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준 복도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입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해 준 복도 생육, 번성, 땅의 유업입니다.
 
창28: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하시기를 원하노라
 
창35: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네 이름이 야곱이다만 이제는 이스라엘이 네 이름  이 되리라” 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이처럼 구약의 복은 현실성을 많이 띠고 있습니다. 땅을 유업으로 받고, 자손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는 뜻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구약의 복은 현실성을 많이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지상에서 커다란 복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신명기의 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8: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며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여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으리라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의 복은 율법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2) 가나안 땅에서의 복: 율법과 관련

 

가나안에서는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자 하나님은 율법과 관련한 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을 묵상하고 지키는 자(안식일, 십일조), 하나님을 의존하고 가까이 하는 자를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서 들어와서 풍족한 물질생활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다보니 우상도 섬기고 이방여인과 결혼도 하고 부패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풍요과 물질만능주의의 시대에서 요구되는 복은 의식주 생산과 관련된 복이 아니라 윤리도덕, 율법과 관련한 복, 물질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존하는 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잠언과 시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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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8:32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시편 1편 악인의 꾀를 쫏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시편 94:12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교훈하심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시편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다
시편 112: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
시편 2:2   여호와를 의지하는 복이 있다.
시편 84:3-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자가 복이 있다
이사야 56:2 안식일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사56: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말라기 3:9-10십일조를 내는 자가 복이 있다.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욥에 있어서는 고난이 복이었던 것입니다.
 
욥 5:15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어다.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물론 욥의 친구가 욥에게 비아냥 거리면서 한 얘기지만 고난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기 때문에 고난이 복일 수 있는 것이니다. 바울 역시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야고보는 1;12에서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고난은 숨어있는 복인 것입니다.   
    
2. 중간기 시대의 복
 
중간기 시대의 복은 구약성서의 복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지각있는 아내와 같이 사는 사람, 혀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 자기보다 못한 자들의 종노릇 하지 않는 사람들, 지혜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신약에서의 복
 
신약시대에는 바울의 복, 예수의 복, 종말론적인 복이 있습니다. 구약의 복개념과 많이 다릅니다.
 
1) 바울의 복
 
바울은 의로 여기심을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 4:6 하나님께 의로여기심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 불법을 사함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는 율법과 죄악에서 해방되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의 용서를 받는 것만이 진정한 복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이 주장하는 복은 이신칭의입니다. 믿음으로서 의롭게 된다는 것이지요. 바울이 가장 좋아했던 구절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였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이 의로 여김받아 심판받을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2) 예수의 복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개념은 바울과 달리 나타납니다. 그의 복은 그리스도의 정체를 알아보는 자, 의심하지 않고 믿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 마음을 비우는 자, 물질을 나누어주는 자(욕심이 없는 자)입니다.

1. 예수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며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알아보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천국의 열쇠까지 움켜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열쇠까지 얻은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2. 경험하지 않고 의심없이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29)
 
3.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눅1:48에서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에게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한 여인이 그리스도를 보면서 누가복은 11:28에서 당신을 밴 태와 젖이 복이 있습니다 하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1:3 절에서 예언의 말씀을 일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4.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13:15-16)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기적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5. 나눠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눅14:13-15)
 
부자청년은 의식주의 복, 율법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말을 듣고 근심하며 갑니다. 우리의 복 개념은 주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데 있지만 예수님의 복 개념은 나눠주는데 있습니다.
 
6.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영적인 복)
 
신약에서 50번의 복 중에 그 중 28번이 공관복음에 나오고, 그 중에서 13번이 마태복음에 있고,  그 중에서 9번이 산상수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중심적인 복 개념은 산상수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육하고 땅에 충만하고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여호와의 집에 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묵상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잘 내며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언급하는 궁극적인 복은 심령이 가난해져서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이요, 애통해서 위로를 받는 사람이요, 온유해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이요, 의에 주리고 목말라 배부름을 얻는 사람이요, 남을 긍휼히 여겨 긍휼하심을 받는 사람이요, 남을 화평케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사람입니다. 
 
어디를 보더라도 생육하고 충만한 복이 안나옵니다. 소유과 건물을 추구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삭개오처럼 나눠주는 자에게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이 요구하는 복은 하늘나라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종말론적인 복입니다. 이 복은 죽음을 초월한 복입니다. 죽음 이너머의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복입니다.   

3) 종말론적인 복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사32:16-20)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단12:12)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4:13)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요16:15)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19:9)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20: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7)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20:14)
 
앞서 말했지만 복의 상태와 조건을 말할 때는 Beatitudes라는 말을 씁니다.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지복을 말하는 것으로 헬라어로는 마카리오스라고 말합니다. 마카리오스는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에서 나오는 말로 '신들'이라는 뜻의 '마카레스'에서 파생된 말로 천상에서 신들이 인간의 질병과 죽음을 보지않고 평온하게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상에서는 잘 살기위해 물질주의적인 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요 목표이지만 성서는 보다 더 가치있는 복으로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고차원적인 복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적인 복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그리스도가 가르쳐 준 말씀을 믿고, 지키며 영적인 복인 산상보훈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잘 죽어 종말론적인 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 땅에서 잘사는 것이 지상 최대의 복이지만 인간은 인간답게 보다 윤리적이며 계명적으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면서 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인 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복을 추구한 사람들만이 종말론적인 천상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복된 사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입니다.  
 
구약의 복은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지만 신약의 복은 하늘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4:13에는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의 죽는 것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잘 사는 것이 복이지만 신약에서는 잘 죽는 것이 복입니다. 구약에서의 복은 지상에 집중되어있지만 신약에서의 복은 하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서의 복의 개념은 땅에서부터 하늘로 상승 곡선을 그으면서 올라갑니다.
 
복의 상승곡선

 

성서의 복개념은 물질적인 복-율법적인 복-영적인 복(산상수훈)-종말론적인 복으로 하늘로 향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단계의 복에 머물고 있습니까? 아직도 소유의 복입니까? 아니면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복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영적이고 종말론적인 복에 머물러 있습니까?  “꽃잎은 바람결에 떨어지는데...... 어디쯤 가고 있을까?”
 
히브리 속담에 "한 사람이 죽기 전에 복을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 그 사람은 그가 죽을 때 더 잘 알려지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복의 소유자는 그 사람이 죽을 때 알려질 것입니다. 
 
부흥강사들이 주장하는 대로 지상의 물질과 소유, 부동산, 땅에만 집착하다보면 결국 물질을 추구하다가 죽은 사람으로 알려질 것입니다. 하늘의 종말론적인 복을 소유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늘의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얻는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안에서 죽지 않고, 자연적으로 죽거나 탐욕을 누리다가 소유안에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소유욕과 사심을 버리고 주안에서 잘 죽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서로 양보의 정신이 없는 것도 구약에 나오는 땅의 복에 너무 집착해서가 아닐까요?  주안에서의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영원한 삶입니다. 진정으로 복을 찾는 사람들은 세상의 복보다는 하늘의 복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복개념은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상승곡선을 그리는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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