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기가 두렵다

칼뱅의 기도에 대한 요청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2/08 [09:54]

기도하기가 두렵다

칼뱅의 기도에 대한 요청

공헌배 | 입력 : 2019/02/08 [09:54]

 사람들은 흔히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행위를 우상숭배 및 배교로 여기는 경향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신사참배만 우상숭배인가? 칼뱅의 매뉴얼로 들어가 보라! 과연 한국교회에서 우상숭배하지 아니하고, 정상적 신앙생활이 가능할 듯 한가?

 

성경의 엄격한 기준들이나 교리의 전통들 그리고 성령의 내주 인도하심을 따를 때, 한국사회와 같은 다종교의 문화 안에 거주하는 자들이 과연 개혁교회의 원리대로 실행할 수 있을까? 좀 의문이다!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가능할까? 무슨 수로 가능할까? 그 정도의 능력들이 있을까? 만일 그런 능력을 가진자들이 있다면 소수일 듯하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 믿음이나 능력들은 인간으로부터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 인간들에게 선물(은혜)로 주시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교회에서는 기도하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칼뱅의 주장대로 하면 잘못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인간에게 저주하신다고 한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에서 저주하신다고 하니, 누가 견딜 수 있을까? 단지 그 주제에만 국한해서 본다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저주받을 확률이 낮지 않을까?

 

나는 칼빈의 말을 들을 때마다 교회 다니는 것이 두렵고, 예배드리기도 두려울 뿐만 아니라 특별히 기도드리는 것이 두렵다.

 

누군가는 나에게 배울 것이 전혀 없다라고 했는데,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러나 칼빈한테서는 배울 것이 많지 싶어 짧은 소견이나마 여기에 몇 줄 적는다.

 

칼빈은 제네바 교리문답(1545)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M: How will you prove this to me?

어떻게 기도 할 것인지 당신이 나에게 설명해 보세요?

 

C: Since God is a Spirit, and in other cases always requires of men their heart, so especially in prayer by which they communicate with him. therefore he promises to be near those only who call upon him in truth; but on the other hand he abominates curses all who pray to him deceitfully and dishonestly (Ps. 145:18; Isa. 29:13).

신실하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경우에서도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특별히 하나님과의 소통에 의해 기도할 때 그렇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곁에 계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그 분에게 거짓으로 기도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서 몹시 싫어하시고,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저주하실 것입니다.

(Edited by J. K. S. Reid, “Calvin: Theological Treatises”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8, 120).

 

이 내용을 보아, 우리는 기도에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즉 가증스런 기도를 하다가는 큰 일 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정직한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 나는 칼빈의 그 말이 무섭게 들린다.

 

그래서 기도하기 싫다. 차라리 하지 아니하는 것이 낫지, 해 놓고 벌을 받는다면 아니한 만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소위 통성기도라는 것을 자주 갖게 됨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살필 때 통성기도가 가능했는지를 살펴보자!

 

칼빈은 제네바 교리문답(1545)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M: Now let us consider the manner of praying. Does it suffice to pray with the tongue, or does prayer demand also the mind and the heart?

이제 우리의 기도의 그 방법을 고려해 봅시다. 말로써 기도하는 것이 충분합니까? 아니면 마음과 생각까지도 기도에 요구해야 충분합니까?

 

C: The tongue indeed is not always necessary, but the intelligence and devoutness true the prayer must never lack.

사실 기도할 때는 언제나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반드시 지성과 헌신, 그리고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Edited by J. K. S. Reid, “Calvin: Theological Treatises”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8, 120).

 

M: All prayers conceived by the tongue only will then be vain and worthless?

말로써만 마음에 품은 것을 드러내는 모든 기도들은 단지 헛되고 가치 없는 것이 될 뿐입니까?

 

C: Not only so, but will also be deeply displeasing to God.

, 그렇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심히 불쾌하실 것입니다.

(Edited by J. K. S. Reid, “Calvin: Theological Treatises”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8, 120-121).

 

이를 따른다면 우리가 굳이 말로써 기도할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차라리 묵상기도가 나을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하나님께 말을 건넨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런가 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어)

and, if vocal, in a known tongue.

(C.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Michigan: Baker Books, 1931, 647).

 

(라틴어 번역)

et quidem, si vocalis sit, in lingua nota est efferenda.

(C.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Michigan: Baker Books, 1931, 647).

 

(한국어 번역)

그리고 만일 소리를 내는 경우면, 알려진 언어로써 드려야 한다.

 

이를 따라서 볼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도 굳이 말로 기도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 기도를 할 경우라면 반드시 알아들을 수 있는말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반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말로 기도하지 아니할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칼빈은 기도하는 사람의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M: What kind of feeling does God require in prayer?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감정을 요구하십니까?

 

C: First, that we feel our want and misery, and that this feeling generate in our minds grief and anxiety. Then that we burn with earnest and vehement desire to obtain grace from God, who also kindles in us the longing to pray.

첫째로 우리가 우리의 간구와 비참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슬픔과 염려를 낳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획득하는데 그것은 성실하고 격렬한 욕구를 불태우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Edited by J. K. S. Reid, “Calvin: Theological Treatises”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8, 121).

 

그러니까 기도할 때 우리는 감정의 상태조차도 잘 조절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기도는 마음에 끌리는 대로가 아니라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정신을 따라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칼빈은 주장한 것이다. 이 뒤에 나오는 내용이 바로 그 유명한 칼빈의 주기도문의 주해이다.

 

그러면 마르틴 루터는 어떻게 말했는지 살펴보자:

 

첫째 기원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이것은 무슨 뜻인가?

: 하나님의 이름은 실로 그 자체가 거룩하지만 그 이름이 우리를 인하여 또 거룩하게 되기를 이 기원으로 비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 되고 순전하게 전파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이루어진다.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지여, 이 일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과 다른 모양으로 가르치거나 살아가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소교리 문답서(1529) 3부 주기도).

 

이를 따른다 하더라도 기도는 그저 입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삶과 연관 되어야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이름에 우리가 결코 먹칠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 것이다. 이쯤 되면 목사 되는 것은 빨리 피하는 게 낫지 않을까?

 

누가 그러더라: 목회에는 항상 뒷문에 열려 있다.”

 

,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통성으로 시끄럽게 떠들며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기도는 옳은 것일까?

 

그 대답은 여러분 스스로가 찾아보시길 바란다. 어느 종교학자의 견해를 빌리면 그런 형태의 기도는 무교(巫敎)의 행태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제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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