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의 아들과 석공의 후예들

같은 편끼리...

공헌배 | 기사입력 2020/12/26 [12:28]

목수의 아들과 석공의 후예들

같은 편끼리...

공헌배 | 입력 : 2020/12/26 [12:28]

 

<경건과 학문>을 보면 천사와 악마라는 컬럼이 있다. 이 글은 천사와 악마가 겉으로는 적대적으로 보이지만 뒤로는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특성을 느끼게 해 준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어린 양이 나온다. 이는 아마도 예수님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계시록에는 새끼 양’(요한계시록 13:11)도 나온다. 그러나 왠지 새끼 양은 어린 양하고의 대립적 이미지를 준다. 물론 그 새끼 양이란 단어의 헬라어를 찾아봐야 하고, 그 문장의 맥락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어린 양이나 새끼 양이나 무엇이 그리 다를까?

 

또 신약 마태복음에는 양과 염소와의 비유가 나온다. 다시 말해 양과 개와의 비유가 아니라 양과 염소와의 비유다. 그러니까 뿔 달린 초식동물끼리의 비유다. 달리 말해 낯선 동물들이 아니라 같은 종()끼리의 비유다.

 

그래서 성경이 재밌다!

 

왜냐하면 비슷 한 것끼리 비유하면서 엄청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독교인들도 분쟁이 만만하지 않다. 기독교 교회는 참으로 흥미로운 단체다! 크크크∼∼∼

 

더러 학자들은 기독교와 공산주의와의 대립을 주장한다! 특히 에밀 브룬너의 강연이 그렇다!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많이 다른가? 오히려 닮은 출발점을 갖지는 않았는가!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자 스탈린은 신학교를 중퇴한 사람이다. 북한의 초대 주석 김일성은 외삼촌이 목사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교회의 중직 아니었던가!

 

사도행전의 공동체는 재산공유를 말했고, 이에 대해 브룬너는 국가사회주의와는 다르다면서 설명하지 않았던가!

 

어쨌던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완전히 다른 걸 주장하는 게 아닌 이란성 쌍생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차 세계대전 후 시오니즘에 의해 이스라엘을 재건한 키부츠 공동체는 사회주의적이었다. 특이하게도 그 국가사회(이스라엘)를 적극 지원한 나라는 자유 시장경제의 대국 디 유나이티드 스테이트스 옵 어메리카였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유대교는 먼 종교인가? 뭐 그렇겠는가? 구약을 공유하는 데!

 

예수와 다윗은 어떤 가?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사실 예수님은 다윗을 싫어하는 듯하다(다윗을 존경하지 않는 것 같다: 마태 22:41-46). 그리고 예수님은 솔로몬에 대해서도 그다지 높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마태 6:29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신약 어디에도 예수님은 솔로몬을 칭찬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성전의 종말을 말씀하셨다: 13:2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느뜨려지리라

 

이건 예언치고도 거친 예언이다! 유대의 지도자들이 들으면 소름 끼칠 만한 말이기 때문이다.

 

역대하 6장을 따르면; 성전봉헌에 대한 솔로몬의 장문의 기도가 나온다. 이 애절한 기도를 생각할 때 예수님의 그 예언은 너무 잔인하다.

 

솔로몬이 실행한 성전건축의 기술자는 페니키아 출신인 모양인데, 그 이름이 후람하고 연관 있다(대하 2; 왕상 5장 참고). 일명 히람이기도 한데(왕상 5) 히람이 보낸 기술자가 지은 성전이 솔로몬 성전이다(왕상 5:18).

물론 이 성전은 신바빌로니아의 침공 시 무너지고, 바빌론 포로기 이후의 성전재건 기술자는 히람의 후예일지 아닐지 잘 모르겠다.

 

어쨌던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석공을 필요로 했다!

 

반면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인가?

 

목수의 아들이다!

 

목수와 석공은 모두 건축업에 연관된다. 그러나 J. D. 크로싼은 예수를 지중해 연안의 한 유대인 농부로 묘사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의 직업에 대해 농부보다는 목수 쪽으로 묘사한 듯하다.

 

실질적 예수님의 직업은 모르겠다.

 

그러나 마가복음 132절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느뜨려지리라는 예언은 석공의 정성을 목수의 아들이 갈아 뭉게 버린 것이다.

 

기술자 대(vs) 기술자로 만난다면 목수와 석공은 먼 사이가 아니다. 일하면서 만날 가능성도 있을 사이다.

 

다시 말해 목수의 아들이 석공의 예술품에 대해 찬사를 보내기는커녕, 소름 끼칠 예언을 했다. 그 석공들의 예술품 안에 거주하면서 신(야훼)을 섬기던 사람들이 제사장들이다.

 

목수의 아들은 그 제사장들에 의해 심문받고, 빌라도에게로 넘겨지며, 십자가에서 죽는다.

 

목수의 아들은 나무에 달려 죽었다.

 

그리고 석공들의 화려한 예술은 로마의 예루살렘 침공과 함께 무너졌다.

 

그리고는 2천 년 쯤 지났다!

 

어쩌면 좋겠는가!

 

나는 공자의 후손 아닌가? 공헌배라는 보잘 것 없는 띨띨이도 신학을 할 만큼 이 목수의 아들로부터 발생한 종교는 보편성을 갖는다.

 

내가 왜 목수의 아들과 석공의 예술품과의 갈등 문제에 휘말려야 하는가!

 

나는 한국인이다!

 

, 정말 신학을 해야 했는가?

 

내가 지방의 어느 작은 신학교 다닐 때 속으로 했던 말이 있다: 밥은 먹고 살아야 할 텐데...

 

나에게 신학을 가르친 분들은 여러 명인데, 마치 해외 신학의 유통업자들과 같은 인상이었다!

 

그런 종류의 유통업이 그분들에게는 익숙했겠지만 나에게는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신학이 이런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나는 신학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방 외 딴 곳 가난한 목사의 아들이었고, 내가 처했던 교회의 사태는 갈등이 많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교회에 다니는가?

 

내가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 나는 나의 신학 선생들로부터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내 신학 선생들은 나로 하여금 교회를 떠날 수 있는 당위성들을 더 잘 보여주었다. 그런 선생들이 나더러 교회로 가라고 했다.

 

이 얼마나 넌센스인가?

 

정리해 보자:

 

어린 양 vs 새끼 양, vs 염소, 기독교 vs 유대교, 목수의 아들 vs 석공의 화려한 예술 등.

 

멀지 않은 촌수끼리 싸우던 갈등의 최적화 된 종교와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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