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우십니까?

손봉호 교수님에게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9/06 [11:00]

부끄러우십니까?

손봉호 교수님에게

공헌배 | 입력 : 2019/09/06 [11:00]

 

손봉호 교수님,

 

CBS에서의 토론 잘 시청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여쭙습니다: 신사참배가 부끄러우십니까? 그리고 기독교의 목회지 대물림이 부끄러우십니까?

 

고고하신 손 교수님의 체면에 손상이라도 주는 것 같습니까?

혹시라도 그들과 같은 기독교인으로 엮일까 봐 창피하십니까?

 

한국교회의 신사참배가 부끄러우십니까?

 

왜 부끄럽습니까? 그것이 우상숭배라서 부끄럽습니까? 기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일을 교회가 결의해서 부끄럽습니까? 아니면 일본이 패전국이라서 부끄럽습니까? 왜 부끄럽습니까?

 

조선에서는 만동묘에 제사지냈습니다. 만동묘란 공자(孔子)를 기리는 곳입니다. 조선에서는 관우에게 제사지냈습니다. 조선은 인간을 숭배하던 나라였습니다. 어쩌면 귀신들(?: 인간영혼들)에게 제사지내던 나라였습니다.

 

어차피 기독교의 교리대로라면 만동묘에 제사지내나 관우에게 제사지내나 천황을 숭배하나 교리에 어긋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공자와 관우는 중국 사람이지만 일본 천황은 백제왕의 후손입니다.

 

조선에서는 오랫동안 공자를 신처럼 받들었지만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조선 국민들이 천황을 숭배했다는 것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물론 기독교의 교리대로하면, 공자숭배나 천황숭배는 모두 우상이지만 같은 우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상에도 결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최치원의 기록을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는 중국 본토의 동부지방들을 침공했거나 점령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태를 고려한다면, 일본의 중국침공은 마치 고대사(古代史)로의 회귀 또는 고대사의 재()해석과 같은 일이 될 만합니다.

 

어차피 우상들이라면 관우보다는 일제시대의 신사참배가 우리에게는 훨씬 더 실존적이지 않겠습니까?

 

텐노 헤이가 반자이를 외치던 그 시대에 조선인들의 공식적 지위는 일본인들보다는 낮게 그러나 중국인들보다는 높게였습니다. 물론 실질적 행태들은 비참했지만 형식적 신분에 있어서는 2등이라도 시켜주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2!

 

중세의 몽고는 서(西)아시아인들(색목인)2등 시켜주었는데,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을 2등으로 올려준 것 같기도 합니다.

 

1등 못해서 화 날 조선인들이 많겠지만 역사를 보면, 조선인들 스스로 중국의 종들이 되길 소원하듯 했으니, 일본이 조선 사람들을 2등 국민 만들어 준 일에 대해 그다지 화 낼 일 만은 아닌 듯합니다!

 

(: China)나라를 섬기던 조선인들에게 중국을 짓밟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나라가 대()일본제국입니다!

 

(: China)나라를 섬기던 조선인들에게 중국을 짓밟을 수 있도록 조선 땅을 병참기지 화 시켜 준 나라가 대()일본제국입니다!

 

(: China)나라를 섬기던 조선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국가에 헌금하여, 중국에게 복수(復讎)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나라가 대()일본제국입니다!

 

고구려의 복수, 고대 백제의 복수를 실행에 옮겨 준 나라가 대()일본제국입니다!

 

부산에서부터 신의주를 거쳐, 만주(滿洲)대륙으로 연결시켜 준 나라가 대()일본제국입니다!

 

고대의 고구려나 발해보다도 훨씬 더 넓은 영토들을 차지한 그 위대한 제국이 대()일본의 대동아공영권입니다.

 

비록 우상숭배이기는 했지만 이 얼마나 웅장하고 힘 있어 보이는 우상입니까?

 

기독교의 교리로서는 잘못이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들에게는 놀라울 만한 우상 아니겠습니까?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국민의 2%도 채 되지 않았을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외로 해주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예외조차도 허용하지 못한 일본의 정책이 아쉽습니다. , 굳이 기독교인들 아니어도 신사참배 할 사람들 많을 텐데, 굳이 기독교인들조차 거기에 동참시킨 일이 몹시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비()기독교인들이야 조상숭배하나 천황숭배하나 기독교의 교리를 어기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요.

 

기독교의 교리에서 보면, 신사참배는 우상입니다. 그러나 매우 웅장한 비전을 제시해주던 우상입니다!

 

적어도 그 시기의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매우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으니까요!

 

만주(滿洲)대륙을 달리고, 철로가 연결되며, 중국이 우리 앞에 무릎 꿇고 박박기게 만들었던 너무도 웅장하고 놀라운 시절이었으니까요!

 

손봉호 교수님은 이와 같은 사태들이 몹시 부끄럽다는 말씀이지요?

 

기왕지사 나온 말씀이니,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좀 더 하겠습니다.

 

조찬선 님이 쓴 <기독교 죄악사>는 기독교의 치부들을 들추어 낼 만 한 일이 아닐는지요?

 

/근세의 기독교가 실행했을 법한 마녀사냥에서 몇 만 명이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략적 통계라도 나와 있지 않을는지요?

 

오히예사가 쓴 <인디언의 영혼>에서는 기독교의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에게 어떻게 전도했는지에 대해서는 혹시 부끄럽지 않습니까?

 

어느 해방신학자가 쓴 <하느님은 선교사보다 먼저 오신다>의 한 대목에서 서양 유럽의 기독교가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어떤 짐을 지웠는지에 대해서는 부끄럽지 않은지요?

 

바돌로매 축일 사건 때 기독교의 문제로 몇 명이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부끄럽지 않은지요?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독일 국민들이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부끄럽지 않은지요?

 

게오르그 포오러가 쓴 <이스라엘 역사>에서 서양사회에서 유태인들이 어떤 박해들을 받았는지에 대해 대략적 설명이라도 하지 않던 가요? 이는 부끄럽지 않은지요?

 

교수님, 고대사회에서의 십자가란 말입니다. 죄수들의 옷을 벗기고, 나무에 매달아 망신 주며, 고통스럽게 죽여주던 매우 수치스런 물건입니다.

 

바로 이게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바울께서는 이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엽기입니까? 생각만 해도 섬뜩한 그 사형 틀, 십자가를 자랑하다니요? 이런 엽기종교가 어디 있습니까?

 

손봉호 교수님처럼 도도하신 분께서는 왜 기독교에 계십니까?

 

차라리 교수님의 품위와 직책에 어울리도록 공자의 제자가 되십시오!

 

공부를 강조한 공자의 제자가 되실 일이지, 뭐 하러 기독교 교회에 계시면서 사람들을 선동하십니까?

 

명성교회의 돈이 뭐 그리 많습니까?

 

교수님, 유럽유학 다녀오셨지요?

 

로마의 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블 박물관이나 영국의 애쉬몰리안 박물관이나 성()베드로 성당이나 러시아의 이삭성당을 가 보셨는지요?

 

유럽의 거대교파에 비교하면, 명성교회의 재산은 조족지혈도 안 됩니다.

 

명성교회의 재산들을 다 팔아, 사회로 환원하라굽쇼?

 

그런 말씀을 불교의 조계종 총무원장에게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불교의 어떤 스님은 무소유를 주장 하십디다!

 

그리고 홍인식 목사님,

 

목사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두는 우상을 배교로 여기면서 어쩌구 저쩌구 하셨는데, 이는 상당히 많이 들었을 법한, 일반론으로 포괄적 적용을 하면, 이 사람, 저 사람, 여러 사람들이 걸려들 만한 이을령, 비을령이 됩니다. , 세습(목양지 대물림)만 문제되는 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걸려 들 사람들 많을 것입니다. 이럴 경우, 명성교회 하나만 지적 받아야 할 일이 아닙니다. 왜 다른 교회는 예외로 하고, 명성교회만 지적받아야 합니까?

 

그래서 이는 보편성 없이 명성교회 하나만 공격하는 표적 식 적용이 됩니다!

 

그리고 교회법 운운하신 모 목사님,

 

목사님은 교회법들의 출처들을 밝히지 않았고, 추상적 장로파 교회를 목사님 맘대로 소개하면서, 마치 목사님이 장로교를 독점이라도 한 것인 양, 들립니다.

 

격률을 얘기할 때는 정확성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칼뱅주의 개혁교회는 장기간에 걸쳐, 생성 된 복합적 역사의 산물들이기 때문에, 어떤 전통, 어떤 격률적 근거에 의한 것인지를 좀 더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조건호 장로님,

 

장로님은 두루뭉술 넘어가듯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 실행 된, 총회재판국의 재심에서는 재심의 사유에 있어서 헌법 제 몇 항을 근거로 재심했는지를 말씀하시지 않았고, 증거실증주의에 가까운 대한민국 재판의 현실을 볼 때, 어떤 증거에 의해 재심이 실행됐는지 설명하지 않은 채, 단지 제286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갖고만 말씀 하다시피 했습니다.

 

원심재판 때부터 문제가 된 당사자 적격이나 재심에서의 결격사유인 피고의 진술이나 피고의 경정 등은 아예 거론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단 헌법에 의하면, 재심의 관할이 있는데(<헌법> 3, 권징 제125), 이에 대해서는 왜 말씀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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