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단상

건국절 논쟁에 관하여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8/14 [13:21]

광복절 단상

건국절 논쟁에 관하여

공헌배 | 입력 : 2019/08/14 [13:21]

 

몇 해 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역사와 전통에 대한 해석논쟁이 있었다. 이를테면 815일을 건국절로 하자든가, 그 반대로 임시정부를 기준으로 하자는 논쟁이다. 이는 정파에 따라 그 해석이 달랐다. 그러나 이는 사태(역사적 사실)의 차이가 아니라 역사적 해석의 차이이다.

 

그런데 아무리 해석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좀 더 객관적으로 불릴만한 현()사태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인류의 보편적 상황들을 따른다면; 첫째, 영토, 둘째, 국민, 셋째, 주권, 넷째, 헌법이다.

 

그렇다면 헤아려보자, 상해임시정부는 저 네 가지의 요건들 중 두 개만 갖추었으므로 온전하지 못하다. 그리고 좀 더 우파로 여겨지는 815일 건국절 논쟁에서는 저 네 가지의 요건들 중 두 개만 갖추었으므로 역시 온전하지 못하다.

 

상해임시정부에서는 영토와 국민이 없었고, 1945815일에서는 주권과 헌법이 없었다. 그래서 양측의 주장은 모두 부족한 사태들에서의 주장이다. 그나마 좀 더 온전한 사태에서의 주장은 1948717일에서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도 선언적 주장들이지, 실정적 주장으로 여기기는 어렵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보자,

 

첫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는 신생독립국이었다. 그래서 이는 추구했던 바를 명시한 것이므로 실정성이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그 당시의 실정성은 국가보안법의 발현이었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선진적 헌법을 실행할만한 사회적 수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포함한다. 여기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한반도의 주변에 있는 그 부속도서들은 무수하게 많다. 그래서 단수로 쓰면 안 되고 복수로 써야 한다.

 

그래서 그 부속도서로 되어 있다면 옳지 않다. “그 부속도서들이라고 복수로 써야 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문제들이 있는데, 역시 영토조항이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들이라고 했는데, 한반도의 북위 38도 선의 북쪽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던 곳이었다.

 

, 1948년 경에는 북위 38도 선의 남쪽으로만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 역시 정확한 고백은 아니다. 그래서 어차피 현()사태로서의 정확도보다는 바라던 바를 이상적으로 담은 듯한데, 그럴 거면 좀 더 이상적이어야 한다.

 

기왕이면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의 영토들은 만주대륙과 요동반도와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들을 포함한다. 이렇게 고백하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한반도가 분단되기 전()의 사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한국인들의 소망을 담기라도 하듯, 만주제국(만주대륙 및 요동)의 독립, 내몽골의 독립, 티벳과 신장의 독립, 조선의 독립 등을 주장하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국제사회의 전후처리도 이와 같이 되었어야 했지 않을까? 헌법을 그토록 많이 수정하였지만 이와 같은 고백들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듯 하여 몹시 좋지 않다.

 

아래는 내한(來韓)개신교 선교사들의 정책을 반영한 대목이다:

 

우리 모두는 이 다음의 선교지부는 북쪽 지방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미 평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중략) 단지 이제 선교 지부를 한 군데에서만 시작할 수 있다면 그곳은 평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189084일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H. G. Underwood,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 편지(1885-1916)>, 김인수 옮김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2), 226-227).

 

그래서 평양이야 말로,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그 평양은 어떤 곳인가? 고구려의 마지막 도읍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 때에는 묘청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려 하다가 개경파에게 져 피살되었다. 그래서 서경천도는 실패했다. 단재 신채호는 이 사건을 반만년 이래 최대의 사건이라고까지 할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평양은 왠지 인상적인 곳인데, 하필 언더우드 선교사가 지목한 곳이 그곳이었다.

 

평양의 지정학적 특성을 좀 더 고려해보자, 고고학적으로 할 때, 한반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고인돌(지석묘)들이 발견되었다. 이 고인돌들의 분포에는 지역적 특성이 있는데, 대략 대동강을 경계로 하여, 그 남쪽에는 남방계 고인돌들이고, 그 북쪽은 북방 식 고인돌들이다.

 

물론 황해도에도 일부 북방 식 고인돌들이 있다고도 하고, 북방 식 고인돌들의 분포가 남쪽으로 더 확산 되어 있어, 정확하게 경계를 정하여, 남방 식과 북방 식이 칼로 두부썰듯이 구별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는 그렇게 경계되어 진다.

 

그렇다고 한다면 선사고고학으로 들어갈 때, 평양지역은 남방문화와 북방문화와의 접경지대다. 그러므로 평양은 중요한 요충지가 될 수 있다. 또한 고구려 장수왕의 남방 정책에 기인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고구려는 그 도읍(수도)을 남쪽(평양)으로 옮겼다. 그렇다면 평양은 남과 북과의 접점지대이다.

 

내한 개신교의 선교사 언더우드는 그곳(평양)을 지목했다. 조선예수교 장로회의 노회와 총회는 모두 그곳에서 창립됐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는 간도동노회, 남만노회, 산서동노회와 같은 노회들이 있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회의록에는 몽골지방에 연관된 기록도 있다. 즉 그 당시에는 대한예수교 장로회가 내몽골지방으로도 신경을 써야 할 접경지역이었을 수도 있다.

 

언더우드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

 

그러던 얼마 후 빛이 다가와, 그 자신이 잘못된 방식으로 일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과 초기 한국의 종교를 탐구하는 동안에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the Kingdom of Kokurei)에서는 하나님으로 불리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말은 설명적 용어로써,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제까지 하나님이란 말의 사용을 한국인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그가 발견하였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고구려 시대의 그 의미가 원래의 의미이고 지금의 의미는 거기 파생된 것임에 틀림없음으로 언더우드는 이 본래의 의미에 담긴 속성을 가지고 이 말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사용되면 그 본래의 의미가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쉽게 살아날 것이었다(L. H. Underwood/ 이만열 옮김, <언더우드: 한국에 온 첫 선교사> (서울: 기독교문사, 1990), 136).

 

이 주장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무엇으로 해석할 것인가? 즉 영어의 ‘God’이라는 개념을 어디로부터 빌려 올 것인가가 주제였다. 그것을 언더우드는 고구려로부터 찾았다. , 조선시대 때 썼던 하나님개념이 잘못된 것이고, 고구려 시대 때 썼던 하나님개념이 바른 것이라는 언더우드의 해석이다. 그래서 원래의 개념, 즉 고구려 때 썼던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영어의 ‘God’을 옮기기에 적합하다는 언더우드의 주장이었다.

 

물론 실질적 고구려의 신관은 연구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언더우드가 옳았느냐 틀렸느냐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다. 언더우드가 무엇을 연구하였고, 무엇에 관심을 가졌느냐를 주목한다. 언더우드는 한국의 고전들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 언더우드의 머릿속에는 고구려가 들어있었다. 설령 언더우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모르지만 나는 그 언더우드의 해석을 통해 고구려를 발견한다.

 

유명한 과학철학자 와잇헤드는 인류 문명의 3대요소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상업의 확대, 둘째, 기술의 발전, 셋째, 비어있는 대륙의 발견이다(A. N. Whitehead, <관념의 모험>, 오영환 옮김 (파주: 한길사, 1996), 151). 조선 말 한반도는 바로 이 세 가지를 갖추어 가던 단계였다. 특히 만주라는 비어있는 대지를 알았다. 하지만 공산당 정부가 이 낙관론을 무너뜨리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8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조선 말, 내한 선교사들이 꿈꾸었던 그 기독교의 낙관론이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신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다시 헌법논쟁으로 가보자, 1945815일 이후 한반도의 사태는 분단된 신생국가로서 서울 중앙청에 성조기가 꽂히었다(게양되었다). 바로 이게 현()사태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에서는 이를 반영하기보다 매우 이상적으로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그 당시 대한민국의 헌법은 세계에서 좋은 조항들만 골라, 짜깁기 한 것이므로 한국인들의 체질이나 고백이나 실정성들을 담기에는 몹시 어색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추론되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몹시도 눌려 살았고, 그 억눌렸던 감정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으며, 역사의 사태들을 볼 때, 긴 기간 동안의 억압된 감정들이 분노 내지 폭발되어 그 어떤 사태들이 헌법에 반영된 듯한 인상이 있다.

 

사실 영국은 오늘날까지도 국왕이 있으며, 미국조차도 아직도 상원과 하원과의 구별이 있을 뿐 아니라 일본에는 천황이 존재하며, 독일에서는 20세기까지도 황제가 존재했다. 그러나 조선 관료주의나 일본의 착취들에 의해 몹시도 시달렸던 한반도 사람들은 전()근대적 요소들을 말끔하게 청산하고 가장 선진적 헌법을 수립함으로써, 가장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선언들이지, 현실이 아니었다. , 자신들의 현()사태들과 역사적 고백 및 해석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헌법이라는 뜻이다.

 

좀 듣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신학을 공부해 본 나로서는 상징과 해석 또는 그 의미들의 추상적 개념들에 대해 몇 가지로 비교해 보겠다. 이는 국가(國歌)와 국기에 대한 해석들이다:

 

브리타니아(더 유나이티드 킹덤): 장엄하고 화려하면서 품위까지 느껴지는 비교적 느린 곡이지만 뚜벅뚜벅 나아가듯 힘 있는 곡이다. 그러나 그 주제가 여왕 한 사람에게 쏠려 있어, 국왕제, 즉 전통과 현대와의 조화미를 느끼게 해 준다.

 

프랑스: 경쾌하고도 힘이 느껴지며, 의지 충만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프랑스 혁명정신과 그 시대의 사태들이 집중적으로 담겨 있는데다 피들을 소재로 하고 있어 잔인한 인상을 준다.

 

중국: 노예가 되기 싫으면 일어서라는 선동적이고, 항의적인 가사로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분노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선동적이며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신해혁명이나 그 뒤의 중국 건국에 대한 시대상이 반영된 듯한 인상이다.

 

네덜란드: 종교개혁기의 독립의지와 스페인 왕 및 로마 가톨릭 국가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써 자신들의 개혁 및 독립의지를 담은 고백이다.

 

독일: 국가적 자부심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강하게 보여주며, 자신들의 대지들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비교적 힘 있고 장엄하듯 하면서도 독일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 형의 국가인데다 약간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 인상적 국가다.

대한민국: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소박한 애국가로서 자연을 노래하지만 인간 공동체의 고백이 결여된 꾸며진 듯한 설정이다. 동해의 물, 백두산, 가을 하늘, 남산의 소나무, 게다가 계산 착오를 일으킨 삼천리, 무궁화라는 좀 답답한 꽃을 후렴으로 하여 4절까지 설정된 이 컨셉을 신이시여! 지켜주소서! 신이시여, 이 동양화와 같은 설정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해주소서라는 비교적 소박한 소망이 담긴 이 국가는 웅장한 대지나 명예로운 자부심이나 인간 실존들의 고백들이 배제된 어색하면서도 꾸며진 듯한 가사가 느껴진다. 이 국가는 웅장함이나 대지가 주는 혜택들이나 인간 공동체의 고백이나 미래를 향한 전진 등이 결여된 한 폭의 동양화와 같은 국가(國歌).

 

일본: 곡의 느낌이 무겁고 장엄하지만 좀 느린데다 진지해 보인다. 국가(군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미국: 곡의 느낌이 저 넓은 대지들을 향해 쭉 쭉 뻗어나간다. 진취적이며 정복적인 곡으로 미국다움이 잘 반영되어 있다(펄럭이는 성조기).

 

러시아: 시적(詩的)이면서도 몹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나라를 사랑하게 만들고, 자랑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대지를 담고 있는 그 국가는 찬미적이고, 사랑스러운 나라! 자랑스런 나라를 느끼게 해 준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점은 국기다. 국기에 우주 또는 별들이 표현 된 나라들이다.

 

미국: 수십 개의 별들이 그려진 한 마디로 별들의 나라다.

 

중국: 다섯 개의 별들이 그려져 있는데, 왜 다섯 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 태양을 상징하는 듯하다. 태양도 별의 일종이므로 별이다.

 

대한민국: 우주철학이 담겨 있다. 음양을 비롯한 우주를 표기한 사상(철학 또는 상징)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보일만한 상징이 표기 된다.

 

그러나 1945815일은 세계 대전이 종식된 날이며, 그 이후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신생독립국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엄청난 혼란이 기다리기도 했다.

 

정리한다: 첫째, 내한개신교 선교사들이 꿈꾸었던 한반도의 새로운 거점들은 평양 및 서북한 지역으로서, 이는 고조선 시대 거점들 중 일부이기도 했고(요서, 요동, 西북한),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고구려의 새로운 도읍이기도 했으며, 고려 시대 묘청의 강력한 소망이 담긴 곳이며, 고인돌들의 분포를 볼 때 비교적 북방 식과 남방 식들의 접점 내지 경계 지역이기도 할 만한 대동강 유역이며, 조선시대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조선시대에는 비교적 소외되기도 했던 그 곳들을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새로운 거점으로 부각하였다.

 

둘째, 언더우드의 머릿속에 있던 고구려의 신관을 한글성경의 신명으로 옮길 만큼 그 어떤 의미들을 해석하거나 고백해 볼 수도 있을 중요한 한글성경 번역의 작업이 있었다.

 

셋째, 복음은 만주대륙으로부터 왔으며, 번역된 성경도 만주 대륙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남만노회, 간도동노회, 산서동노회 등이 설립되어 있었고, 국가적으로는 제주도에서부터 만주대륙, 요동, 한반도가 통일되어(연결되어) 있었다.

 

초기 조선예수교 장로회는 이와 같은 패러다임에서 활동했다. 그 당시에는 장로회신학대학교나 총신대학교나 고신대학교나 대신대학교 등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평양신학교, 봉천신학교(만주), 일본신학교(동경) 등이 있었다. 1945815일은 이 모든 패턴들이 무너지던 날이었다.

 

다시 말해, 1945815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지만 분단 된 날이고, 중앙청에 성조기가 게양되어야 했던 날일뿐만 아니라 만주(滿洲)대륙이 소비에트연방에게로 넘어가던 날이다.

 

만주(滿洲)제국과 이이신죠로 푸이 황제가 몰락하던 날이다!

 

왜 이 날이 기쁜가? 한편으로는 너무도 슬픈 날이다!

 

그 날은 묘청의 소원이나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책이나 고구려 수복의 꿈들이 무너지던 날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신라의 마지막 황제(푸이)가 몰락하던 날일지도 모른다!

 

정말, 1945815일이 기쁜 날이기만 한가?

아니다, 1945815일은 매우 슬픈 날이다!

 

더 쉽게 설명 한다: 대한민국은 오히려 너무 빨리 독립 된 게 탈이었다. 차라리 일제가 망하지 말고, 좀 더 오래 유지되다가, 각 국가들(만주, 티벳, 신장, 내몽골 등)의 독립이 이루어졌다면, 중국의 팽창은 없다!

 

소비에트연방이 한반도의 38도선까지 침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8일정도였다. 일본과 전쟁하느라 온 힘을 다 쏟은 나라는 미국인데, 미국은 한반도와 만주(滿洲)에 대해 아무 것도 얻은 게 없을 만큼 큰 손해를 보았다!

 

이러려고 2차 세계대전씩이나 했던가!

 

차라리 일본이 독일과 협공하여, 소련을 항복시킨 후, 대략 경도 바이칼호 주변을 경계로 하여, 그 서쪽은 독일이 차지하고, 그 동쪽을 일본이 차지하는 편이 우리에게는 월등하게 유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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