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이 가능한가?

감정재판을 멈추어 주시길!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7/02 [08:13]

재심이 가능한가?

감정재판을 멈추어 주시길!

공헌배 | 입력 : 2019/07/02 [08:13]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은 어느 교파보다도 헌법 개정의 작업이 잦았으며, 그 개정의 기준들에 대하여는 일관성 있는 신학을 찾기 힘든, 대중의 편익과 여론선동에 있는 듯하다.

 

사실 이 교파의 목사청빙(제한)규정 제286은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는 여론선동에 의해 급조 된 헌법이며, 마치 어느 특정 교회를 겨냥하듯 했던, 표적 헌법이기 때문이다.

 

법에는 어느 정도의 보편성이 있어야 할 텐데, 어느 한 교회 때문에 교단의 헌법조차도 바꿀 만큼 그 교파의 특성이 드러났다. 아마도 이는 그 교파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편익을 따라, 너무 자주 헌법을 개정한 탓에, 여론으로 선동하고, 다수결로 표결하면 무엇이든 다 될 듯이 학습된 탓인 듯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의 헌법 개정작업들은 기준점들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매우 가변적이다.

 

특히 그 교파의 헌법은 권징조례를 많이 고친 듯 한데, 만일 그 권징조례의 규정이 대한민국의 형사소송법을 기준으로 했다면, 여전히 부실할 듯하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법전들은 엄청나게 두껍다. 형법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 두꺼운 법전들을 그 얇은 교단 헌법책에 반영한다는 것이 무리다. 그래서 교회법은 교회법으로써의 체계가 필요하며, 그 원류로는 조선예수교장로회의 <교회정치문답조례>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한정판이며, 구입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니까 원전(原典)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도 많이 헌법 개정들을 해 왔지 않을까 싶다. 특히 그 교파에서는 이 분야를 강의하는 신학교수들이 없거나 극소수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과목을 강의 하려면, 법학과 신학적 지식 그리고 교회사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교회들의 실정이 서양과의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일어났던 교회들 사이의 갈등 문제를 신학으로 조율하기에는 그 신학교육의 커리큘럼 상 많이 부실한 듯 했다(즉 신학 교수님들은 서양신학의 유통업자들과 같은 기능들을 많이 실행하신 듯 여겨진다).

 

그럼 이제 M교회의 재심에 대해 살펴보자,

 

교단헌법 제3편 권징, 62절의 재심사유를 보자:

 

다음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책벌의 확정판결에 대하여 그 선고를 받은 자의 이익을 위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

 

여기서 살펴보자, 책벌의 확정판결이다. 이는 행정소송이 아니다. 책벌, 즉 치리를 받았을 때에 억울하면 재심청구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8 가지의 사유들 중 하나라도 충족시켜야 한다.

 

일반사회의 재판에서도 재심은 있는데, 그 경우는 확실한 증거나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재심은 재판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느냐보다도 그 재심사유가 받아들여 질 수 있느냐? 다시 말해 재심까지 열만한 빼도 박도 못할 증거나 사유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각하나 기각처리되기 십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는 데, M교회의 건은 행정소송이지, 책벌사유가 아니다. 교단 헌법의 그 조항에서는 책벌사유를 주장했지, 행정소송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법률가는 행정소송도 재심이 된다고 했다(1501항에 의하면, 행정쟁송도 재심이 가능하다).

 

좀 더 살펴보자: 헌법 권징 편, 125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재심은 원심재판국이 관할한다.

 

여기서의 원심재판국은 원래대로라면 노회여야 했겠지만 이 경우에는 총회가 원심재판국이 된다. 그런데 총회에서는 재판국원들을 싹 물갈이 하도록 재판국의 조직보고도 받지 않은 채, 공천부에서 새로 공천하라고 해버렸다. 이는 법이든, 관례든 뭐든 상관없이 여론으로 싸그리 해치우겠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이와 유사한 행태의 재판이 있기는 있다. 여론재판 또는 인민재판이다. 한국전쟁 당시, 제대로 심판할 수 없을 전쟁 상황에서 여론으로 누군가가 죽입시다!라고 소리를 높이면, 덩달아 소리를 높이고, 그러다가 죽창으로 또는 총으로 사살한다. 이러면 끝이다.

 

이와는 반대급부로 생성 된 심판 역시 닮은 점 있는데, 역시 한국전쟁 당시의 재판(?)이다. 그냥 무더기로 총살시킨다. 이승만과 김일성 정부 당시에 무슨 법 체계가 그리 중요했겠는가? 전쟁 통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잘못 걸리면 죽는 거다!

 

물론 이는 한국현대사의 크나 큰 아픔이고, 그래서 이에 연관 된 모 인류학자의 박사논문이 있는데, 그 논문의 주제는 억울한(?) 국민 학살이다. 사실 영국에서 학위한 모 인류학자가 민중학살에 연관되거나 한풀이 하는 무당들의 굿 판을 참관한 일들도 있고, 그는 이 분야에 관심이 큰 인류학자인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폭력성의 재판을 조심해야 한다. 그게 재판이 됐던, 학살이 됐던 소위 법이라는 이름하에 저질러지는 또는 재판이라는 이름하에 실행되는 집행을 조심해야 한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단 헌법의 목사청빙제한 규정 제286항은 급조 된 악법으로서 균형감이 없는 것이지만 여론몰이에 의해 결정 됐더라도 일단은 법으로 들어와 있다. 필자는 이 조항의 삭제를 바라는 사람이다. 개정도 필요 없고, 보완도 필요 없다. 이 법은 삭제됨이 타당하다.

 

그러나 여론은 급조 된 그 법을 두고 모 교회에게 법 지키라며 강요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는 나름대로는 법 지킨다면서 실행했다. 그런데 교단의 일부에서는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몰아세우면서 일반 언론들까지 동원됐다.

 

왜 사회가 여기에 관심 갖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언론이 뉴스꺼리를 제공했으며, 이게 부끄럽다며, 교단 안의 유수한 분들은 유체이탈 화법식 뉘앙스로 대처한다. 예를 들면,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세습 안 한다’ ‘나를 저 사람들과 동류로 여기지 말라’ ‘예수님은 이랬는데...’하는 식이다.

 

그러나 교회론으로 하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가 어느 개()교회를 향해 돌을 던질 때 일단은 방어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교단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의 언론들에 합세라도 하듯, 같이 돌을 던지면서 자신들은 마치 의로운 사람인 듯 발언들 했다.

 

바로 여기에서 나는 구역질나는 행태를 경험했다! 그분들의 말씀들을 들으면 자신들은 마치 대단한 의인들이며, 마치 심판관이라도 된 듯한 인상이기 때문이다.

 

명성교회의 건은 세상의 가씹거리가 될 필요가 없다. 목사청빙 제한규정은 애당초 악법이었으며, 삭제됨이 마땅한 이상한 격률이다. 그리고 그 교파는 신학교육의 커리큘럼에 비해, 헌법개정작업이 너무 잦다.

 

왠지 그 헌법 개정작업들의 기준들은 신학이 아니라 대중들의 편익과 같이 느껴진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학이란, 칼뱅주의 교회정치나 개혁교회사 또는 한국교회사가 된다.

 

그리고 첨언하면 사회에서 법 공부한 분들의 실험재(?: 교보재)와 같이 느껴질 정도로 교단 헌법 권징 분야의 개정작업들이 활발했는데, 이는 큰 문제이다.

 

교단의 헌법을 아무리 개정한들 무슨 수로 대한민국의 그 두꺼운 형법책을 담아내겠는가! 이것은 애당초 그 입법취지부터가 심각한 문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교단의 헌법이 대한민국의 그 두꺼운 민법, 형법의 법전체계를 담기에는 무리다.

 

이보다는 신학의 작업들이 우선 됐어야 했을 텐데, 오늘날까지도 컨시스토리의 판례록 제1권은 번역할 엄두조차도 나지 않는다. 그나마 짧은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1645)라도 책으로 출판한 게 있기나 한가?

 

그럼 이제 한국교회사의 전통을 조금 살펴보자,

 

<교회정치문답조례> 308문과 답에 의하면, 控訴老會退却(공소로회퇴각)에 대해 나온다:

 

그 사유들은 () 공소장이 규칙위반일 때, () 공소인이나 변호할 자가 출석하지 아니한 때, () 당회록이 없는 때, () 공소한 사실에 대하여 증거가 없는 때, () 재판회가 曾往(증왕)에 이와 동일한 안건을 재판하여 결정한 것이 있는 때, () 각하함으로 해 볼 사람이 없는 때, () 공소한 사유가 紊亂(문란)하거나 부족한 때

 

이와 같은 일곱 개의 사유들 중, 하나라도 충족시키면 공소를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에 견주어 동남노회를 고찰해보자: 일단 공소장이 노회의 기소위원회로 가지 아니하고, 위임식 끝난 후에, 총회로 갔다. ∼∼∼

 

위임식까지 끝났는데, 무슨 공소인가?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름으로 위임식 때 선포했으면 그걸로 마무리다! 공소는 위임예식 전()에 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회의 기소위원회로 가야 했다. 즉 노회의 회의장을 뛰쳐나갈 필요도 없었고, 목사청빙서류들을 반려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기소위원회로 넘겼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의 조례문답집의 제4항을 따르면, 공소한 사실에 대하여 증거가 없는 때에는 공소를 취소할 수 있다. 이 말은 재심의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다. 사실 교단의 헌법에 재심사유들이 나온다. 그 사유 중 한 개라도 충족시켜야 재심재판국이 열릴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충족시키지 못하면: 각하 또는 기각판결로써 원심이 유효하게 된다. M교회의 목사청빙과 위임은 합법이 된다.

 

그리고 위의 조례문답집 제5항을 따르면, 재판회가 曾往(증왕)에 이와 동일한 안건을 재판하여 결정한 것이 있는 때라고 했는데, 이럴 경우에는 控訴老會退却(공소로회퇴각) 사유에 해당한다.

 

같은 사건을 두 번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재심불가와 같이 느껴진다. 물론 이 조항은 노회재판국을 말했지만 총회재판국은 최종심이기 때문에 실은 재심불가나 마찬가지이다. 재심하려면 결정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사실 그 재판은 개()교회를 판정한 것보다는 노회를 판정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문제가 노회로부터 붉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동남노회는 사고노회이다. 즉 노회의 업무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총회가 개입 된 모양인데, 총회는 이상하게 한다.

 

그 이상하다는 것은 총회가 교단의 헌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첫째, 규칙부와 헌법위원회의 보고를 받지 않았다. 이는 헌법위반이다.

 

둘째, 총회장은 규칙부와 헌법위원회가 보고를 하면 받아서 하달해야 하고, 그 즉시로 실행되는데, 총회장의 직권남용으로 행정기능을 작동시키지 않았다. 셋째, 재판은 재판으로써 해야 하는데, 총회원들의 결의로써 재판(원심)을 취소했다. 물론 불법이다. 그러나 이 결의를 인정하면, 원심파기의 효과를 갖기 때문에 결국 재심불가이다. 원심이 없는데, 무슨 수로 재심하는가?

 

그러나 이와 같은 불법들을 용인할 수 있는 기재가 있는 데, 그것은 폭력이다. 사실 폭력 앞에 법은 무기력하다. 핵무기 앞에 도시문명은 무기력하며, 대형 쓰나미 앞에서는 원자력 발전소도 무기력하다. 자연재해 앞에 농사꾼들의 수고는 정말 무기력하다.

 

그리고 인민재판 앞에서의 법률 책들은 그냥 종이쪼가리들일 뿐이다. 혼란 앞에 법은 아무 것도 아니다. 모름지기 법률이란 사회적 안전망이 있을 때 그 기능들이 정상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그래서 혼란과 무질서는 정말 그 힘이 세다!

총회를 그쪽으로 몰아가고 싶은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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