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의 취재에 관하여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5/05 [18:49]

뉴스앤조이의 취재에 관하여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다!

공헌배 | 입력 : 2019/05/05 [18:49]

 

위의 동영상에서 4가지의 주제로 좁혀보자:

 

첫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거룩하고 보편적인 공()교회이다.

 

둘째, 법을 지켜라!

 

셋째, 신학적 교회론을 납득할 수 없다.

 

넷째, 맘몬주의

 

이와 같은 주장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추상적 발성들로써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

 

어차피 추상들이라 어쩔 수 없이, 심리적 분석을 따라 몇 줄 써보기로 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이론이나 당위가 현장에서 그대로 실행되지 않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 즉 이론적 당위성이나 학문적 개념이 실지의 현장에서는 달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현장조사를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문화인류학에서는 이상적 문화와 현실적 문화를 구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떤 문화행동에 대해 이상적이며, 규범적으로 제시된 것을 이상적 문화로 그리고 이상적 기대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현실적 문화라 한다.

 

한국에는 여러 곳의 교회들이 있다. 수많은 고소/고발의 건들을 비롯하여, 너무도 복잡한 문제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M교회의 위임목사 청빙의 건과 이에 따른 뉴스앤조이의 취재를 따라 조금 설명하려 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교회는 보편적이며 거룩한 공()교회이다.

 

이는 이론적 선언에 불과하다. 북한은 그들 스스로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듯 희망을 가진 적이 있었고, 레닌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을 세울 때 적지 않은 낙관론을 가졌을 듯하다. 또한 모택동은 엄청난 피의 희생을 치러가면서까지 개혁정책을 실행했지만 오늘날의 소련이나 중국이 과연 그들의 이상과 기대에 어울린다고 여기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선언일 뿐이고, 공공성을 가졌다는 주장은 경제적 그래프나 현장조사 및 사회과학적 데이터 그리고 문화인류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을 때에는 공허한 발성에 불과하다.

 

당장 초대교회만 해도 바울파, 그리스도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등을 비롯하여, 영지주의에서 에비온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교회가 공()교회인가? 설명 좀 듣고 싶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사유화 할 수 없다는 주장처럼 타당한 신학은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처럼 당위적인 주장은 현실적 설득력이 약하며, 추상적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스도교회는 천 몇 백 년 동안이나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종교개혁기에는 수많은 개혁교도들이 살해당하였고, 종교전쟁도 30년이나 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얼마나 많이 미워하고 죽였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직도 영국국교회(성공회)와는 같이 성만찬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한 몸인가? 만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한국교회의 그 많은 가난한 목사들은 기초생활비를 지급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비도 지급받아야 정상이다. 가능하면 4대보험에도 가입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실정성을 따르면, 총회나 노회가 연약한 교회의 목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역할들은 너무도 미약하다. 그나마 있는 총회연금재단이라도 정상적 운영이 될 수 있길 기대할 뿐이다.

 

M교회는 왜 생겼는가? 나도 잘 몰랐는데, 그분의 설교 중에 들은 적이 있었다. 목회를 열심히 하고 계셨는데, 누가 자신한테 교회에서 나가라고 했다더라, 안 나가고 버틸 능력이 없어, 갈 곳도 없었는데, 나갔다. 버스종점 지역에(그 당시로는 변두리), ‘명일동의 소리라는 뜻의 조그마한 교회를 개척해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럼 명일동의 소리 교회는 누가 개척하도록 만들었는가? 공교회적 소임을 하지 못했던 노회나 모 교회의 구성원들이 만들었다. 다시 말해 쫓아낸 교회의 구성원들과 무책임했던 그 당시 노회의 구성원들과 그런 사태들을 일일이 신경 써주지 않았던 총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생긴(태어 난)교회였다. 무책임하게 내동댕이칠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간섭인가?

 

명일동의 소리교회 목사님에게도 무명(無名)시절이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던 시절도 있었고, 가난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분에게도 딸이 있었다.

 

그분의 돌 지난 아이가 아팠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공()교회일까?

 

시찰회는 즉각적으로 노회에 보고하고, 노회는 긴급구호금으로 아이의 치료비를 마련해주었어야 했다. 이 정도는 해주어야 공적(公的)교회로서의 책임을 조금이나마 말 할 수 있다.

 

이것이 공()교회로서의 사명이다. 그러나 모 교단 총회는 그런 어려운 일을 당한 목사님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한 일 없다! 사과는커녕 갖은 비난들을 쏟아냈다.

 

노회에서는 분쟁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개()교회별로도 분쟁이 생길 수 있다. 그럼 노회는 그런 일들을 잘 처리할 능력들이 있겠는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모아 놓으면 적지 않은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모아놓으면 큰 일 낼 만 한 심각한 경향들을 보여 왔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교회가 공()교회라는 말을 당위적으로는 받아들이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에서 쫓겨났다. 갈 곳도 없었다. 막막하다. 결국 개척하셨다.

 

보기 싫은 사람들끼리 계속 보고 사는 일은 서로에게 괴롭다. 그래서 갈라지고, 개척하며, 또 자기 소신 때문에라도 개척할 수 있다. 다 설득력 있다. 그러나 우리는 초기 한국장로파 교회가 추구해왔던 매뉴얼이나 그 연장선상에서 살필 필요성이 있다. 이를 따라서 볼 때, 과연 공()교회는 무엇일까?

 

적어도 돌 지난 딸아이의 병원비 정도는 해결해주어 그 아기를 살려주어야 한다.

 

백 미터도 못 걸을 정도로 고난당하는 교역자에게 심방하여 무엇이라도 도와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비록 교회의 구성원들 중 누군가가 목사님에게 나가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나갔다면, 그 목사님이 먹는 지, 굶는 지, 개척하신 교회의 월세는 어떻게 해결하시는 지 등 기본적으로 이 정도는 살폈어야 했다. 그런 일들 하라고 시찰회나 노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혹시 어느 교회의 목회자 계승에 관해 총회가 관여하고 싶은가? 그럼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총회에게 요청한다:

 

하나, 총회나 노회는 무관심하여 어느 이름 없던 교역자의 어린 딸이 병원치료도 못 받고 죽었는데, 그 딸을 살려내시라!

 

하나, 그 당시의 노회나 총회가 모 목사님의 개척 시에 쌀이나 돈이나 월세라도 도와 준 일들이 없다면 먼저 찾아가 공식적으로 그 목사님에게 사과하시라!

 

하나, 장신대는 그 고난 중에 있던 교역자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거나 그 어려운 교역자에게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 준 일들이 있는가? 만일 없다면 장신대는 공식적으로 그 목사님에게 사과하시고, 그 사과문을 게재하시라! 그런 후에 교수집단성명서들을 발표하시라!

 

모 교회를 향하여 무얼 하라고 요청할 일이 먼저가 아니라 사과 할 일들이 먼저다!

 

그것이 신학대가 되었던, 노회가 되었던, 총회가 되었던 만일 공()교회라는 말을 굳이 쓰고 싶다면 공식적 사과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둘째, 법을 지켜라!

 

이는 크게 두 가지의 뜻으로 유추 된다:

  

헌법 정치 제286항의 목사청빙제한규정을 지켜라

 

서울 동남노회의 임원선출 규칙을 지켜라

 

그러나 목사청빙제한 규정 제286항은 악법이며, 법률적 미비로 적용상의 무리가 있다(<경건과 학문> “헌법 정치 제286항에 관한 소고(2019. 2. 14)”와 어째서 불법인가?(2019. 3. 22)”를 참고).

 

서울 동남노회의 임원선출에 관한 규칙은 그 노회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부노회장의 권한으로 지교회의 서류를 반려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다. 설령 거기에 법률적으로 의문이 든다면 기소위원회로 넘겨, 재판을 받았어야지, 개인이 보관하다, 반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니까 그 뒤부터 많이 뒤틀려버렸다.

 

셋째, 신학적 교회론을 납득할 수 없다.

 

역시 신학적 추상으로써 무슨 뜻인지의 설명이 필요하다.

 

통합 교단 신학교육 기관의 커리큘럼이나 신학교수들에 관하여는 일관성을 찾기 힘들며, 실지로 목회현장과의 연관성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해보아야 한다.

 

세 가지로 예를 들어보자;

 

모 교파 신학 교수님들의 출신학교들을 볼 때에는 일관성이 없다. 다만 한 가지의 일관성 만 있는 듯하다. 해외 유학 다녀 온 분들이다. 이것 말고 무슨 일관성이 있는가?

 

드류대, 클레어몬트대, 뉴욕 유니언 세미너리, 프린스턴신학교, 풀러신학교, 듀크대학교, 에모리대학교, ()소르본대학교, 에든버러대학교, (Bonn)대학교, 보쿰대학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에어랑엔대학교, 마인츠대학교, 뮌스터대학교, 튀빙엔대학교, 서베를린 혹슐레, 부퍼탈, 베델, 바젤대학교, 스트라스부르크대학교...

 

이런 것으로는 예장 통합 교단의 목사들을 길러낼 만한 일관 된 도구(tool)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예장 통합 교단 신학교 신학대학원(M. Div.)의 커리큘럼을 볼 필요가 있는데, 필자는 모 신학대학교의 커리큘럼을 본 적 있다.

 

그러나 그 학교의 실질적 체감온도는 잘 모른다.

 

그리고 신학자들이 게재한 논문들로 읽기에는 더 모호하다.

 

여성신학, 정치신학, 종교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개혁신학, 루터신학, 칼 바르트신학, 본훼퍼신학, 쉴라이에르마허 신학, 와잇헤드 철학, 하이덱거 철학, 과정신학, 몰트만 신학, 판넨베르크 신학, 에버하르트 윙엘신학, 어린이 신학, 미국신학, 독일신학, 프랑스신학, 아프리카신학, 라틴아메리카신학, 한국신학, ()신학, 단군, ··, 류영모신학, 안병무신학, 문익환신학, 서남동신학....

 

어쩌라고?

 

물론 그분들의 학문적 성과들은 인정받을 만하다. 그러나 논문의 세계와 신학생들이 가야 할 목양의 세계와는 무엇인가의 괴리(gap)들이 있지 않겠는가?

 

차라리 J. A. 핫지의 <교회정치문답 조례>나 찰스 핫지의 책이나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이론이나 스펄전의 설교들이나 허순길 박사님의 논문들이나 일제시대 평양신학교의 커리큘럼들이나 스트롱의 책들을 참고하는 편이 목양에는 더 유리할 듯 하지만 통합 교단의 7개 신학대학들이 그러한 주제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굳이 W.C.C.의 신학을 배우고 싶으면, 차라리 문화인류학이나 종교학을 배우는 편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차라리 종교학 하면 좋을 텐데, 왜 하필 목양의 현장으로 가도록 했는지 좀 의문이다!

 

00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예장 통합 교단의 정체성은 로마 가톨릭교회로 가고 있다고 했는데(<경건과 학문> 2019. 1. 31), 제법 설득력 있다.

 

넷째, 맘몬주의

 

이 역시 추상적이라 알기 힘들기는 한데, 대략의 심리적 추론으로는 대형교회가 가진 재산(동산/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현대사회에서의 교회들은 원시기독교가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교회다. 이를 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수님이 선언하신대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다 돌기 전에 종말이 왔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떻게 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현실사회에서는 돈이나 재화를 필요로 한다.

 

클라우스 뮐러가 쓴 <돈과 인간의 역사> 김대웅 옮김 (서울: 이마고, 2004)를 따르면, 교회는 돈을 필요로 했다.

 

교회의 역사를 경제사나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관심을 끌 수도 있으며, 이는 비신화화(非神話化)이기도 하다.

 

사실 인류학의 교양서적으로 꼽히는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도 그런 류의 책이다.

 

당연히 교회도 재화들을 필요로 한다. 동방교회, 로마가톨릭교회, 개신교회 등 가릴 것 없다.

 

현대사회의 물질문화는 화폐를 교환가치로 쓰며, 국경을 넘나들면서도 통용되는 가치다.

 

쉽게 말해 돈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한다. 하나님도 돈으로 섬겨야 할 만큼 너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성경말씀)

 

교회에 돈을 넣는다는 것은 교회에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이 시대는 헌신의 가치가 돈으로 교환된다(클라우스 뮐러의 <돈과 인간의 역사>와 비교).

 

그래서 M교회를 맘모니즘으로 폄하하는 것은 마치 자신들은 공중에 떠서, 비현실세계에서나 살 법한 듯 느껴질 정도로, 마치 자신들은 거룩하기라도 한 듯 느껴질 만한 발성처럼 들리는 데, 이는 오해일까?

 

교회 일도 돈으로 실행한다! 아니라면 변명해보시라!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하신가?

 

좀 더 경제적으로 분석해보자!

 

2016년 교단 총회의 연금재단 구두보고에 의하면, 그때까지도 회수하지 못한 자금들이 적지 않았다. 즉 총회 연금재단은 경영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편이다.

 

모 지방의 노회는 모 교육재단을 빼앗겼다. 그리고 모 지방의 노회와 연관 있던 모 기독병원도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통합 교단 총회에서 규칙을 정해주어야 하는 모 지방병원은 내홍을 겪은 모양이다.

 

잘 생각해보시라!

 

사람들이 모여, 노회를 만들고, 노회들이 모여, 총회가 됐다. 그리고는 그 노회산하/총회산하의 기관들이 어떤 어려움들을 겪고, 어떤 문제들을 야기했는가? 이를 일일이 열거해야 하겠는가?

 

순수하게 경영학의 관점에서 어느 학자들이 판정한다면 목사/장로들이 모인, 노회들이나 총회는 적지 않게 부실 운영을 한 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노회와 총회를 믿으란 말인가? 무슨 수로?

 

뭘 봐서 총회와 노회를 신뢰한단 말인가!

 

총회는 염치도 없는가?

 

도대체 총회가 얼마나 훌륭하시길래 개()교회의 인사권까지 법으로 제정하여 간섭하려 드는가?

 

우리가 무슨 수로 노회들이나 총회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경영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분명 총회는 ‘M교회라는 개교회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경영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지방의 모 노회는 그 재정상태가 M교회보다 운영 면에서 약할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두 개의 집단이 있다: 한 쪽은 부실 운영을 하여, 소송 중에 있으며, 한쪽은 흑자를 내어, 사회적 공익에 헌신하며, 많은 공공재화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의 말을 더 들어야 하겠는가? 아니, 어느 쪽이 더 신뢰도가 높겠는가?

 

과거에 총회가 잘 해결하지 못했던 그 사업에 관해 어느 개()교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그 개 교회에서는 이를 해결해주었다.

 

반면 그 개척교회의 목사는 과거에 굶주렸고, 쫓겨났으며, 아팠다. 그 때 총회는 그 이름 없던 목사를 외면했었고, 내동댕이치듯 방치하지 않았을까?

 

부끄럽지도 않은가? 총회는 염치도 없는가?

 

그 잘난 신학대학교에서도 M교회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왜 그 신학교육기관에서는 하필이면 누군가가 맘모니즘으로 폄하하는 그 교회에게 도움을 받았는가?

 

신학교육기관에서도 최소한 부끄러운 줄 알고 살면 좋겠다!

 

눈치나 염치라도 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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