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민족

우리는 중국에서 탈출한 민족인가?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4/14 [17:06]

출애굽민족

우리는 중국에서 탈출한 민족인가?

공헌배 | 입력 : 2019/04/14 [17:06]

 

<漢書> 28 , <地理志> 樂浪郡’, ‘朝鮮縣의 주석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서주의)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

 

즉 주나라의 무왕이 기자(箕子)’라는 사람을 조선으로 보냈거나 기자가 동쪽의 조선으로 가서 왕이 됐다는 전설이다.

 

이 기자(箕子)는 주()나라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고조선의 연대를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그리고 <史記> 卷 百十五, 朝鮮列傳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조선왕(朝鮮王) (滿)은 옛날 연()나라 사람이다. (중략)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匈奴)로 들어가자 만(滿)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북상투에 오랑캐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동의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의 옛 공지(空地)인 상하장(上下鄣)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만이(蠻夷) 및 옛 연·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검(王險)에 도읍을 정하였다.

 

이를 따르면, 위만조선도 망명한 중국인이 왕이 된 나라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 사태는 후대에 일어났다:

 

이보다 앞서 국중 사람들이 진()나라의 난리를 괴로워하여 동으로 온 사람이 많았으며, 그 다수가 마한의 동쪽에 자리잡아 진한과 섞여 살아왔는데, 이 때에 이르러 점점 번성해지므로 마한이 이를 미워하여 책망한 것이었다(金富軾, <三國史記>, 卷第一, 新羅本紀 第一, “始祖赫居世居西干.”).

 

이에 견줄 수 있는 내용은 일연의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일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후한서(後漢書)>에 이렇게 말했다. “진한(辰韓)의 늙은이가 말하기를 진()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국(韓國)에 오자 마한(馬韓)이 동쪽 경계의 땅을 베어주었다. 그리고 서로 부르기를 도()라고 하여, 마치 진()나라말에 가까웠다. 그런 때문에 혹은 이곳을 진한(秦漢)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조그마한 나라들이 있어 각각 1만호(萬戶)나 되는데 저마다 나라라고 일컬었다.” 또 최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진한은 본래 연()나라 사람이 피난해 와 있던 곳이다. 그런 때문에 탁수(涿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읍과 마을을 사탁. 점탁이라고 불렀다.”(一然, <三國遺事>, 紀異 第一, “辰韓.”).

 

이로 볼 때 진한(辰韓)은 연()나라로부터 피난 온 사람들의 땅이다.

 

그럼 진한은 중국사람들인가?

 

이런 문제는 체질인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필자는 망명한 그들을 중국인들로 여기지 않았다(공헌배. “심적외상을 통해 본 야훼종교와 진한의 이주민들: 프로이트의 인간모세와 유일신교를 중심으로.” <계명신학> 15 (2015. 6): 69의 각주 113번 참고).

 

위의 인용문들을 통해 유추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고조선은 중국으로부터 왔거나 중국으로부터 망명한 세력에 의해 주도되거나 세워졌다.

 

둘째, 위만 이전에 존재했던 고조선의 스타일은 북상투(魋結蠻)를 한 헤어스타일로 여겨지므로 흔히 들어왔던 알타이 계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즉 고조선은 알타이 계에 비하면, 남방 계 농경민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경건과 학문> “고조선은 과연 북방계인가?” 2019. 3. 13).

 

셋째, 고조선과 진한은 출()중국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Exodus).

 

그렇다면 진한(秦漢)은 왜 중국에서부터 망명했는가?

 

辰韓의 노인이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들은 나라의 망명인으로 고역을 피해 韓國으로 왔는데, 馬韓이 동쪽 경계의 땅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後漢書>, 85, 東夷列傳 韓傳.”).

 

진한(秦漢)이 마한(馬韓)으로 망명한 이유는 고된 노동 때문이었다.

 

이리 될 경우, 우리는 ()=고대 이집트라는 도식을 만들어 볼 필요도 있다.

 

최치원의 주장을 따르면, 진한은 신라다. 그래서 신라의 조상들은 중국()의 강제노동 때문에 피난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신라 사람들은 후대에 친()중국 정책으로 갔다.

 

이를 성경에 견주면, 이스라엘 왕조가 친()이집트 정책을 한 것에 비교된다.

 

물론 훗날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예레미야는 반()이집트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정리해보자:

 

첫째, 서주의 무왕은 기자를 조선 땅에서 벼슬 하도록 했다.

 

둘째, 연나라 사람 은 무리를 이끌고 와서 자신이 조선의 왕이 됐다.

 

셋째, ()나라의 통일 이후, ()나라는 망했을 것이며, 그래서 진나라의 강제노동 때문에 연나라에 살던 사람들의 일부(노예들?)가 마한으로 망명했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China)이다!

 

그러나 후대의 한반도 사람들은 친()중국적이었다.

 

이를 성경에 견주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친()애굽적 정책을 쓰겠다는 뜻과도 한편으로는 통한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이를 강하게 비판한 셈이다. 구약성경은 애굽에 대한 비판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럼 우리는 중국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가? 마치 성경이 애굽을 반대하듯 말이다!

 

사실 <사기> ‘조선열전이 전해주는 바에 의하면, 고조선은 중국()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후기의 신라는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모두 공격했고, 멸망시켰다!

 

위만조선은 중국에 맞섰지만 신라는 중국과 손잡았다!

 

그러나 만주신라()는 중국을 점령했다. 즉 중국()과 싸웠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황제를 사로잡고, 북송(北宋)을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근세의 후금(後金)은 아예 명나라 자체를 정복했다.

 

물론 만주의 여진족은 신라의 후손(아골타)에 의해 세워진 금나라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묘한 특징이 나타난다: 한반도에 거주하거나 한반도에서 나라를 운영했던 사람들은 친()중국적 정책들을 썼다.

 

왜 그랬을까?

 

왜 한반도의 사람들은 반()중국적 정책을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와 같은 한반도 사람들의 행태들을 구약성경에 견준다면 우상숭배적 양상으로 진단할 요인들은 없는가?

 

공헌배의 논문초록을 옮기며, 이 글을 맺는다:

 

공헌배. “심적외상을 통해 본 야훼종교와 진한의 이주민들: 프로이트의 인간모세와 유일신교를 중심으로.” <계명신학> 15 (2015. 6): 35-74.

 

본 연구의 목적은 성경에 나타난 출애굽과 진()나라의 노역을 괴로워하여 이동해 온 진한 유민들과의 공통성을 비교함으로써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신학적 한 단초를 찾는 데 있다.

 

출애굽 한 히브리인들과 진한(秦漢)의 이주민들 사이에는 두 가지의 공통성이 있다. 첫째, 제국의 노역을 괴로워하여 탈출했거나 망명했다. 둘째, 떠나온 나라(즉 탈출한 나라)에서의 고통을 망각했다. 가나안에 정착한 히브리인들은 야훼종교를 망각했고, ()나라에서 한국(韓國)으로 망명한 진한(秦漢)사람들의 후예들은 친()중국적 정책을 추진했다.

 

만일 진한은 신라이다라는 최치원의 말이 타당하다면 그런 셈이다. 왜냐하면 일연의 주석에 의하면 진한이 신라인 이유는 연()나라로부터 망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인데, 신라는 후기로 갈수록 친()중국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현상은 그 어떤 종류의 망각현상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다가 격동의 시대에는 심각한 심적외상(trauma)의 작용이 일어났다.

 

이 경우, 이스라엘에서는 야훼종교(프로이트가 말한 모세교)가 두드러졌고, 한국에서는 고대사(古朝鮮)나 만주의 역사(渤海史)를 아주 인상적으로 부활(혹은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반성역사관(反省歷史觀)’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반지나적(反支那的) 유목사관(遊牧史觀)’이나 신명기 역사관은 모두 반성역사관(反省歷史觀)이다.

 

A study on Yahwhism and Jinhan People: In reference to “Der Mann Moses und die monotheistische Religion (1939)”

 

 

Hun-Bai, Kong,

Research Professor

Academia Christiana of Korea

Seoul, Korea

 

The object of this study is to find a theological starting point for understanding Korean history by comparing the comparability between exodus in the Bible and Jinhan immigrant, suffered from China's forced labor.

 

Hebrew people escaped from Egypt and Jinhan people from China had two things in common. First, they escaped and exiled themselves from forced labor of Empire. Second, they forgot the pain in the country they left(fled the country). Hebrews settled in Canaan forgot Yahwhism. And descendants of Jinhan people fled Korea from China maintained pro-Chinese policies.

 

If Chi-Won, Choi,'s word; Jinhan is Silla' makes sense, that is true. According to Il-Yeon's annotation, the reason Jinhan is Silla was because they fled from Yeon(ancient China). Silla was a pro-Chinese as the years of Silla went by. And finally, this phenomenon can be regarded as some kind of forgetting. Then they experienced severe psychological trauma in turbulent generations.

 

In this case, Yahwhism(Moses's religion) showed marked improvement in Israel and ancient Korean History or History of Man-ju impressively revived in Korea. What can we learn from the Bible then? That is 'the Perspective of reflection's history'. I assume both the Perspective of anti Chinese history and the Perspective of Deuteronomy's history are the Perspective of reflection's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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