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족은 알타이 계인가?

예맥족에게만 집중할 일이 아니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4/12 [08:37]

예맥족은 알타이 계인가?

예맥족에게만 집중할 일이 아니다

공헌배 | 입력 : 2019/04/12 [08:37]

 

흔히 고조선(古朝鮮)하면 예맥(穢貊)족을 꼽는다. 그런데 문헌에 의하면 조선(朝鮮)이라는 말보다는 예맥(穢貊)이라는 말이 먼저 나타난다. 그러면 예맥이라는 말과 조선이라는 말이 동의어 일 수 있을까? 한 예를 들어보자: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과 예맥(南與朝鮮·濊貊),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접하였다(<後漢書> 85, 東夷列傳, “高句驪.”; 윤내현, <고조선 연구>, (서울: 일지사, 1995), 183).

 

이를 따르면, 조선과 예맥이지, 예맥조선이 아니다. 즉 예맥과 조선은 구별해서 써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시대 때까지도 조선(古朝鮮)이라는 실체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고조선이 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민족은 남아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고조선족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보다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여러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첫째를 알천 양산촌, 둘째를 돌산 고허촌, 셋째를 취산 진지촌-혹은 간지촌이라고도 한다-, 넷째를 무산 대수촌, 다섯째를 금산 가리촌, 여섯째를 명활산 고야촌이라 했다. 이들이 후에 6부가 된다.(중략) 이보다 앞서 국중 사람들이 진()나라의 난리를 괴로워하여 동으로 온 사람이 많았으며, 그 다수가 마한의 동쪽에 자리잡아 진한과 섞여 살아왔는데, 이 때에 이르러 점점 번성해지므로 마한이 이를 미워하여 책망한 것이었다(金富軾, <三國史記>, 卷第一, 新羅本紀 第一, “始祖赫居世居西干.”; 김부식/ 이재호 옮김, <삼국사기>, 1. (서울: 솔출판사, 1997), 33-36).

 

그래서 이를 따르면, 고조선의 유민은 진한(辰韓)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진한은 필자가 논문 쓴 바에 의하면 오늘날의 함경북도 지방이나 길림성 일대에 있었다. 다시 말해 만주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기준으로 하여, 그 곳에서 나온 유적이나 유물들 중, 알타이계로 단정 지을 만한 것이 있는가? 잘 모른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청동기 시대 만주지역의 유적을 살펴보자. 한국의 고고학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편 길림성 서단산유적에서는 2구의 인골이 보고되었는데, 그 형질적 특징이 몽고인계의 특징을 보이는 비파형동검문화의 인골과는 달리 퉁구스계에 근접하고 있어, 우리민족과는 비교적 거리가 먼 것으로 보여진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1997), 30).

 

서단산문화는 길림·장춘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요령의 무순(撫順)까지 포함하는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주로 석관묘와 옹관묘(甕棺墓토광묘 등의 묘제를 보여주고 있다.(중략) 중국 학계의 경우 서단산문화를 숙신족과 연결 짓고 있으며 북한 학계에서는 부여와의 관련성을 언급하고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1997), 65).

 

이를 따르면, 청동기 시대 만주에 있던 유적인 서단산 문화는 알타이계로 보기 어렵다. 또한 부여족의 무덤 양식 역시 알타이계인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면, 부여보다 앞선 시기인 고조선의 무덤은 적석묘 내지 석관묘였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1997), 119-122). 그리고 부여의 무덤들은 적석목곽분이 아니라 토광목관묘였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 224-226). 즉 알타이계의 무덤으로 알려진, 적석목곽분이 아니다.

 

강원대학교의 주채혁 교수는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를 근거로 하는 부리야트 족의 일부가 부여(夫餘)라고 했지만 보통 부리야트는 몽골계로 분류된다. 그런데 부여의 무덤양식은 몽골계와는 달라 보인다. 부여·고구려 계의 문화가 알타이 계와 이질적인 이유는 그 뿐만 아니다. 문자(文字)에서 드러난다.

 

고구려는 한자(漢字)를 썼다. 하지만 몽고인들은 한자를 쓰지 않았다. 중세 때 위구르 문자를 빌려 쓰다가 현대에는 러시아 문자를 썼다. 물론 일부에서는 고구려 계의 설화와 알타이 계의 설화 사이에 유사성이 있어, 동일 계열 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설화 상의 유사성은 부여-알타이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관심 기울려 볼 것은 부여계의 형질과 몽골계의 형질이 같으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체질인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부여 계통과 몽골인들은 다른 듯하다. 벽화나 불상(佛像) 등에서 유추해 낼 수 있는 부여계의 형질들을 고려할 때 몽골 계통과는 달라 보인다.

 

다시 예맥과 고조선과의 연관성을 논해 보자.

 

예맥과 부여·고구려 계가 동일계라는 주장이 있고, 고서에서도 그런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 주제는 일단 차치하고, 예맥이 알타이 계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유 엠 부찐은 김정학의 주장을 고려하여, 고조선을 알타이 계의 단일종족으로 여긴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고조선은 단일종족이 아니라 다()인종 사회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정학 식으로 하면, 고조선은 다인종 사회라고 하더라도 알타이 계로 묶어질 수 있어야 할 텐데, 고조선이 알타이 계라는 하나의 계통으로 묶여진다는 보증이 어디 있는가? 나는 그런 식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고조선과 알타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이로는 김운회도 꼽을 수 있다. 김운회는 진수의 <삼국지(三國志)>와 사마천의 흉노열전(<史記> 卷 百十, 列傳 五十, “匈奴”) 그리고 염철론(<鹽鐵論> 卷 八, 伐攻篇)의 기록을 빌려, 고조선=동호(東胡)’라는 도식을 제시했다. 이는 기록적 정황을 따른 것인데, 그렇다면 기록의 정황으로는 다음과 같은 주장도 가능하다: 고조선=()’이다.

 

예를 들어보자. <삼국지> 30, 위서 30, 오환선비동이전 30, ‘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後漢 建安 년간(196-219)에 공손강이 둔유현 이남에 帶方郡을 설치하고(중략) 韓濊를 토벌하였다.(중략) 이후 倭漢은 대방군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되었다.

 

고조선의 거수국인 대방 안에는 왜인들도 살았으므로 왜인들도 고조선인들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기록의 정황만으로 모든 것들을 단정할 수는 없게 된다.

 

예맥이 알타이 계라는 주장에는 적어도 두 가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인류학적 검증, 둘째, 고고학적 검증이다.

 

예맥의 유적 유물이 알타이계의 무슨 종족하고 유사한가? 둘째, 예맥족의 형질은 알타이 계의 무슨 종족과 유사한가?

 

한반도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당연히 그 시대는 고조선 시대가 아니다. 물론 신석기 시대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그런데 보통 고조선 하면, 청동기 시대의 유적 유물들을 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고조선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많이 나타났던 무덤들은 고인돌이다. 매우 많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알타이 계의 무덤들인가? 알타이 계로 납득될 만한 증거들이 부족할 것이다.

 

경주 지역을 예로 들어보자. 고대에는 경주지역에도 타 지역과 비슷하게 고인돌 무덤들이 있었다. 한국의 고고학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청동기 시대의 묘제를 대표하는 지석묘(고인돌무덤)는 기원전 7-2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생각되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경주분지도 예외는 아니다. 지석묘 다음으로 경주에 등장한 묘제는 土壙墓인데, 시기의 선후에 따라 土壙木棺墓土壙木槨墓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토광묘 다음으로는 積石木槨墳이 나타난다. 이 묘제들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새로운 지배층의 등장과 관련지어서 생각할 수 있다.(중략) 원주민과 북방으로부터의 유이민의 결합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본다면 그 연대는 아무래도 철기문화의 도입 이후가 될 것이며, 그들의 묘제는 청동기 시대의 전통적인 묘제인 지석묘와는 다른 묘제가 등장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7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1997), 35).

 

따라서 북방 유목 계통의 이주민들 이전에 이미 고인돌 무덤들이 한반도에는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 고인돌 무덤들의 주인공들이 알타이 계 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전승들을 갖고 있다. 이 중 어떤 전승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가 중요한데, 어디에 맞추면 좋겠는가?

 

가령, 고구려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언어철학으로 하면 고구려는 이해될 수 없는 나라다. 그래서 언어철학으로는 하지 않고, 심리로 하겠다. 고구려는 문명도 있었고, 한자(漢字)도 썼으며, 왕정도 했다. 그리고 전쟁에서도 크게 이겼다. 그리고는 망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고구려는 매우 중요한 나라일 테지만 망했다. 반면 몽고는 어땠는가? 몽고는 중국을 지배했다. 여진족 역시 중국을 지배했다. 고구려는 쳐들어오는 중국인들을 물리쳐 승리한 정도였지만 몽고나 여진족은 아예 중국을 지배했다.

 

섬에서 살던 일본인들도 중국을 침공하려 했고, 20세기에는 실지로 침공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의 초점만을 선호할 필요는 없다. 구석기 시대도 있고, 신석기 시대도 있으며, 고조선도 있고, 고구려, 백제, 사로, 신라도 있고, ()도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잠재성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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