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기준들

자연과학적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3/15 [14:04]

통일의 기준들

자연과학적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공헌배 | 입력 : 2019/03/15 [14:04]

 

요사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남북대화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남북대화를 민간 차원에서 물꼬를 튼 사람으로 사실은 문익환목사를 꼽는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도 문 씨다. 남북대화! 이거 중요하다.

 

그런데 무얼로 대화할 것인가? 여기에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적어도 아마추어처럼 하지는 않길 바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는 데, 민족(국가)정체성이다. 통일문제를 논하든, 주변 정세를 논하든 이 주제는 중요하다.

 

그럼 일단 민족(국가)정체성에 주목해보자!

 

이 문제를 풀기에 아주 중요한 연구의 도구는 생물(형질)인류학이다. 가장 과학적 접근이요, 아주 기초적 접근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역사의 기록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나 버린다. 사실 생물인류학은 고고학보다도 더 정밀한 정체성 탐구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고고 유물들이란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발견되더라도 여기, 저기 산발해 있으므로 실질적 사태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고고학은 인류의 누적 된 문화양태들을 추적하게 해 준다. 이 점에서 고고학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역사학이란 글을 아는 지식인들의 데코레이션들이다. 그래서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고고학의 흔적들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 진술들을 해 준다. 그게 기록물의 강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게 궁금하여 나는 전라도에서 5년을 살았고, 5년의 생활 후, “한국인의 주체성이란 논문을 썼다(Conciliatio Theologiae4).

 

그러나 이 논문은 너무 역사적 방법에 몰입한 데다, 그 당시의 내 역사적 지식이 일천하여, 엉터리 가설로 여겨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나로서는 문제제기와 전라도 생활 5년 만에 내놓은 나의 연구 업적물이었다. 물론 지금 읽어보면 형편없지만 그 당시로서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쓴 글이었다.

 

대한민국에서의 형질인류학은 극 소수의 학자들에게 국한 된 셈이다. 인류학회 자체가 작은 데다, 특히 형질인류학은 소수의 학자들이 다룬다. 게다가 이 연구는 인류학자들만의 주제도 아닌 셈이다. 왜냐하면 이 연구는 의과대학 식 해부학이나 분자생물학의 응용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인문과학자들 만으로는 한계가 생겨 버릴 수밖에 없다. 고고학에서도 생물고고학은 팀이 따로 꾸려져 있을 정도의 특수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방식 중 민족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는 이게 가장 과학적인 연구방법이며, 가장 기초적인 연구방법이다. 북한에서는 소위 민족주체성을 주장해왔지만 생물인류학이나 고고학이 배제된 그 주장들은 공허하며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도 관찰을 실행했다. 거의 30년 동안! 무슨 인상이나 형질연구가들처럼 혼자서 인간들 쳐다보기 하면서 살았다. 마치 김정호처럼 이 지역, 저 지역을 옮겨다니면서 지역별로 인종 형질상의 차이가 없는가?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말갈족이며,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남방계이며, 한반도에 중국인들처럼 생긴 인간들은 주로 어느 지역에 분포하는 지 등. 미친놈처럼 돌아다니며 관찰했다. ? 이게 나의 신학이니까!

 

아쉬운 것은 정식으로 생물인류학을 배우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분수에 어울리도록, 질러가지 못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그 분야로는 논문 한편도 못 쓰고, 그냥 야인처럼 혼자 속으로 가슴앓이만 끙끙대는 촌놈신학자일 뿐이다!

 

신학교에 오랫동안 등록금들을 넣다 보니, 논문을 써도 신학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심적외상을 통해 본 출애굽과 진한의 이주민들, 회귀본능을 통해 본 역대기 역사서와 한일관계와의 조명 등.

 

물론 이와 같은 논문들은 등재지에 게재되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이 심사할 수 없다고 통보 왔더라, 일견 이해된다. 신학자들이 그 논문들의 가치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냥 학회에서 발표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발표로써 근거만 남겨두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따져보자: 불트만의 문헌학이 윤00박사보다 더 뛰어난가? 보증할 수 없다. 하이델베르크의 귄터 보른캄이 정00교수보다 더 훌륭한가? 역시 장담할 수 없다. 00교수는 국내 토기연구의 탑 권에 드는 고고학자다.

 

한국의 어느 신학자를 두고 세계적 신학자이네, 마네 하시는 말씀들을 나는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다.

 

이제는 신학자들도 신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지 말고,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신학대학교 출신이 아니라 법과대학 출신의 목사다.

 

지동설의 영웅으로 유명한 코페르니쿠스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부였다. 근대 유전학의 아버지로도 불릴 만한 멘델은 수도사였다.

 

그리고 <한국어와 드라비다어 비교 연구>를 쓴 호머 B. 헐버트는 내한 개신교 선교사였으며, 거북선을 복원한 것으로도 알려진 언더우드 역시 내한 개신교 선교사였다.

 

그리고 작곡가 비발디 역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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