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과연 북방계인가?

고조선족(族)은 누구인가?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3/13 [23:36]

고조선은 과연 북방계인가?

고조선족(族)은 누구인가?

공헌배 | 입력 : 2019/03/13 [23:36]

 

필자의 오래 된 고민 중, 한 가지는 고조선족(), 즉 조선족(朝鮮族)이 누구냐는 것이다. 근세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하여 흔히 고조선으로 쓰기는 하지만 원래는 조선(朝鮮)’으로 불렀다.

 

사람들은 흔히 조선족(고조선족)을 명명할 때, 북방인(北方人), 알타이계의 민족들, 숙신족(肅愼族), 예맥족(濊貊族), 부여족(夫餘族) 등을 고려한다. 그런데 부여, 동호, 예맥, 숙신 등의 이름에서는 그 민족명을 조선족(朝鮮族)’으로 부르지 않는다. 부여는 부여족으로, 예맥은 예맥족으로, 숙신은 숙신족으로 불렀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적어도 문헌의 기록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면 조선족은 누구인가? 존재하지 않는가? ‘조선이라는 이름은 그저 국명으로서, 여러 민족들의 연맹을 뜻하는가라는 질의가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기록상으로는 조선족이 나오고, ‘조선은 나라이름으로 뿐만 아니라 인종의 이름으로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기록을 보자: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과 예맥(南與朝鮮·濊貊),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접하였다(<後漢書> 85, 東夷列傳, “高句驪.”; 윤내현, <고조선 연구>, (서울: 일지사, 1995), 183).

 

이를 따르면, 조선과 예맥이지, 예맥조선이 아니다. 즉 예맥과 조선은 구별해서 써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 시대 때까지도 조선(古朝鮮)이라는 실체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고조선이 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민족은 남아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고조선족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보다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여러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첫째를 알천 양산촌, 둘째를 돌산 고허촌, 셋째를 취산 진지촌-혹은 간지촌이라고도 한다-, 넷째를 무산 대수촌, 다섯째를 금산 가리촌, 여섯째를 명활산 고야촌이라 했다. 이들이 후에 6부가 된다.(중략) 이보다 앞서 국중 사람들이 진()나라의 난리를 괴로워하여 동으로 온 사람이 많았으며, 그 다수가 마한의 동쪽에 자리잡아 진한과 섞여 살아왔는데, 이 때에 이르러 점점 번성해지므로 마한이 이를 미워하여 책망한 것이었다(金富軾, <三國史記>, 卷第一, 新羅本紀 第一, “始祖赫居世居西干.”; 김부식/ 이재호 옮김, <삼국사기>, 1. (서울: 솔출판사, 1997), 33-36).

 

그래서 이를 따르면, 고조선의 유민은 진한(辰韓)에 살고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조선족은 인종명(학명)으로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흔히 고조선하면 알타이 계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고고학이나 문헌학적으로 납득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알타이 계의 유물들과 고조선 시대의 유물들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타이 계의 흉노나 동호족은 문헌상으로 예맥보다도 훨씬 더 후대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선후 관계를 보려면 예맥이나 고조선을 먼저 고려해야지 알타이를 염두에 두는 것은 문헌상으로 어렵게 된다. 즉 조선이 먼저인 것이지, 알타이가 먼저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조선이라는 실체가 있었는데, 후대에 알타이 계의 민족들이나 퉁구스 계의 민족들이 조선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지, ()으로 알타이 계가 조선인데 동()아시아로 들어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즉 원래 동아시아에 조선이라는 실체가 있었고, 알타이 계니, 퉁구스 계니 하는 민족들이 고조선으로 유입되었다는 뜻이다.

 

바로 이게 토착민 설이다. 이는 윤내현 박사께서 강력하게 주장하신 바이다. 그래서 필자도 윤내현 박사님과의 전화통화를 제법 오래 해 보았다. 그랬는데, 그 분의 주장을 따르면, 고조선의 출원부터 다르게 잡는다.

 

이를테면 저 멀리 어디에서부터 고조선이 발원하여 동쪽으로 이동해오다가 마침내 동아시아에 정착했다는 식의 이론들은 엉터리라는 것이 윤내현 박사님의 주장이다.

 

그러면 그분의 주장은 뭔가? 다름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발원한 고조선(아사달)이 영역을 확장하여, 요서지역까지 갔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조선의 출원은 동쪽인데, 점점 더 영역을 확장하여서 요서지역에까지도 미쳤다.

 

그러면 그 아사달 족(), 즉 조선족(朝鮮族)은 누구인가? 한 가지의 기록을 참고해 보자:

 

<鹽鐵論> 卷 八, 伐攻篇을 보면, ()이 동호(東胡)를 습격하여, 바깥으로 천 리나 물러나게 하였는데, 요동(遼東)을 지나, 동쪽으로 조선(朝鮮)공략하였다라고 한다.

 

<염철론>을 따르면, 요동의 동쪽에 조선이 있다. 이 경우에는 동호가 조선이 아니라 동호를 지나서 조선으로 갔다. 그런데 사실, 윤내현의 주장을 따르면 요동의 동쪽에는 마한(馬韓)이나 진국(辰國)이 있어야 한다. 고조선의 왕, 준이 망명한 곳도 동쪽의 마한이었을 듯하다.

 

그렇다면 한()이라는 정체성과 조선(朝鮮)이라는 정체성이 같은가 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마한(馬韓)이나 진국(辰國)이 북방계인가 하는 질문에는 토를 달아보아야 한다.

 

김부식의 기록을 따르면, 진한은 고조선의 유민들이라고 했는데, 이 고조선의 유민들은 아마도 마지막 고조선인 위만조선의 유민들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그 고조선은 누구인가? 일연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통전(通典)>에 이렇게 말했다. “조선의 유민은 모두 70여 나라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땅이 사방 백리이다.”(일연, <삼국유사>, 기이 제1, 칠십이국).

 

이는 마치 삼한 78국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이 삼한은 한반도가 아니라 한반도의 북부지방과 요동, 길림, 함경도 일대를 뜻할 듯하다. 그래서 한()은 곧 고조선족을 뜻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다시 고서를 살펴보자: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과 예맥(南與朝鮮·濊貊),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접하였다(<後漢書> 85, 東夷列傳, “高句驪.”; 윤내현, <고조선 연구>, (서울: 일지사, 1995), 183).

 

이를 따르면 고조선이 망한 후에도 조선족이 있었음을 명시한다. 즉 고구려가 세워진 이후에도 조선족이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이 고조선족(朝鮮族)은 누구란 말인가? 다시 말해, 예맥, 숙신, 부여라는 등의 인종명과 구별될 수 있는 그 조선족은 누구일까?

 

일연의 주장과 김부식의 기록을 유추해서 보면, 그 조선족은 마치 한()족 같다. 즉 한()이 조선족인 것처럼 보인다. 이리되면, ()=조선(朝鮮)인 것처럼 된다.

 

그러면 그 한족(韓族)은 누구인가? 알타이 계일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유물/유적 상으로 한족(韓族)은 알타이 계보다는 고대 중국의 것들과의 유사성들이 더 많이 나타날 듯하다.

 

특별히 고조선의 유물들은 주로 청동기 시대의 것들로 추정되는 수가 많은데, 이를 알타이 계와의 연관성으로 추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고대 고조선 지역에 알타이 계의 유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기록상의 정황으로 하면, 알타이 계는 상당히 후대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알타이 계의 등장 이전에 있었던 민족들은 누구인가?

 

오히려 선()주민들이 살고 있던 터에, 알타이 계도 유입된 것 아닐까? 물론 알타이 계도 나중에 조선에 유입됨으로써, 고조선의 일원이 될 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타이 계의 유입 이전에도 그 지역에는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고, 유적이나 유물들도 많이 나왔다. 이와 같은 유물들을 무시하고, 알타이 계에 우월성을 두어야 할 어떤 이유가 있는가?

 

서단산 문화에 주목해보자:

 

한편 길림성 서단산유적에서는 2구의 인골이 보고되었는데, 그 형질적 특징이 몽고인계의 특징을 보이는 비파형동검문화의 인골과는 달리 퉁구스계에 근접하고 있어, 우리민족과는 비교적 거리가 먼 것으로 보여진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1997), 30).

 

서단산문화는 길림·장춘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요령의 무순(撫順)까지 포함하는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주로 석관묘와 옹관묘(甕棺墓토광묘 등의 묘제를 보여주고 있다.(중략) 중국 학계의 경우 서단산문화를 숙신족과 연결 짓고 있으며 북한 학계에서는 부여와의 관련성을 언급하고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1997), 65).

 

이를 따르면, 청동기 시대 만주에 있던 유적인 서단산 문화는 알타이계로 보기 어렵다. 또한 부여족의 무덤 양식 역시 알타이계인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면, 부여보다 앞선 시기인 고조선의 무덤은 적석묘 내지 석관묘였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1997), 119-122). 그리고 부여의 무덤들은 적석목곽분이 아니라 토광목관묘였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 224-226). 즉 알타이계의 무덤으로 알려진, 적석목곽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서단산 문화에서의 무덤은 상당히 특이하다. 유골의 특성이 퉁구스 계와 같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서단산 문화의 무덤은 옹관이다.

 

즉 북방계가 아니라 남방계적 특성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즉 나주의 반남고분의 관들이 바로 옹관이다. 다시 말해 왜인(倭人)들의 무덤이 옹관이다. 물론 옹관은 대구에도 있고, 그 밖의 지역에서도 발견 된다.

 

사람들은 흔히 북방인(北方人), 남방인(南方人)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북방이라고 하여, 다 같은 북방인도 아니고, 남방이라고 하여 다 같은 남방도 아니다. 이를테면, 동남아시아 남방과 중국 양자강 유역의 남방은 다르다. 둘 다 남방계이지만 같은 남방계가 아니다.

 

그리고 남방계라고 하더라도 중국 황하 유역의 남방인과 월()의 남방계와도 다르다. 사실 황하 유역의 남방인들은 월()의 남방인들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북방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 황하 유역의 인종도 알타이 계에 비하면 남방인(南方人)이 된다. 그래서 남방인/북방인하는 말은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한족(韓族)은 누구일까? 과연 북방계일까? 알타이 계나 퉁구스 계에 비한다면 남방계에 속할 듯하다. 따라서 유물/ 인종상의 구별로 한다면 조선족(朝鮮族)은 북방계가 아니라 남방계 일 수도 있다.

 

한반도와 요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던 청동검은 그 양식이 특이하다. 이 동검은 중국의 문물과 비슷하다. 물론 손잡이 부분은 다르다. 하지만 이 청동검을 알타이 계, 즉 북방계의 유물로 여기기에는 그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겠다. 알기 어려운 유물들이다.

 

그래서 고조선이 반드시 북방 알타이 계로 단정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조선족은 남방계 농경민들일 수도 있다.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읽더라도 유목적 요소보다는 농경적 요소가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난다.

 

물론 고조선에는 북방 알타이 계도 있다. 그러나 이들 북방인들은 후대에 조선족들의 영역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마한의 정체가 북방 계 인지는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듯하다.

 

그러면 왜 고조선이나 삼국시대 하면서, 북방이나 퉁구스 계 또는 알타이 계라는 요소들이 중요하게 됐을까? 이는 아마도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을 듯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마한왕이 사신을 보내어 책망해서 말했다. “왕이 처음 강을 건너와서 발붙일 곳이 없기에 내가 동북 1백리의 땅을 내어주어 편히 살게 했으니”(金富軾, <三國史記>, 卷第二十三, 百濟本紀 第一, “始祖溫祚王.”)

 

이는 마한의 왕이 백제의 왕에게 땅을 내어주고, 통치권까지도 허락해 준 듯 여겨진다. 이뿐만 아니다. 마한은 진한의 유민들이 진()나라의 난리를 피해 피난 왔을 때에도 받아주었다.

 

나중에는 그 마한이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됐을 때에도 마한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즉 마한의 방편은 외부의 유입된 민족과의 전쟁을 치러, 자신들의 주권을 지키려는 생각보다는 공생의 길을 모색했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왕권도 줄 수 있고, 땅도 내 줄 수 있지만 문명만큼은 우리(韓族)에게로 동화되어야 한다는 특이한 방식의 문명적 우월감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체화(體化)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족의 영역에서 활보한 나라들을 꼽아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나라들이 아닐까? 여겨진다. 물론 당연히 고구려, 백제, 사로, 신라의 왕조들이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역사도 그들의 입장에서 서술됐을 듯하다.

 

그래서 심하면 알타이 계니, 퉁구스 계니 하는 민족들이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지만 기록의 내용대로 하면, 조선족은 고구려가 세워진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족은 예맥이 존재했을 때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맥, 부여, 고구려, 백제, 사로와 같은 주체들은 조선족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유입된 인종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조선족은 없었는가? 있었다. 바로 그 조선족이 고조선족이었을 듯한데, 그들은 알타이 계나 퉁구스 계에 비하면 남방인들로서 농경민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공들이 북방인들이 되는 바람에 조선족은 고조선(古朝鮮)’이란 이름만 남긴 채, 북방인들의 통치에 순응한 채로 남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들 조선민족(아사달족)에게는 한 가지의 끈질긴 생명력이 있었다. 그것은 문명이다. 이를테면, 상투, 한자(漢字), 농경문화 등.

 

그러나 북방인들의 통치를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유입된 북방인들은 강인한 민족으로서 외세(중국)의 공격으로부터 조선족을 보호해주는 데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북방인들도 나름대로는 우수한 문명을 갖고 유입됐다. 그래서 고조선 연방은 문화의 융합과 함께 발전한 나라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결국 북방인들은 남방 고조선족에게 동화되었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문명에 흡수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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