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眞實)은 가혹(苛酷)하다

우리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3/13 [23:24]

진실(眞實)은 가혹(苛酷)하다

우리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

공헌배 | 입력 : 2019/03/13 [23:24]

 

진실(眞實)’이란 추상명사로서 뜻이 없다(nonsense). 그러나 사람들은 이실직고하라든가, ‘진실을 말하라!’고 한다. 이는 대체로 자신들의 사적경험에 대해 발성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적경험 식의 만족도는 인간집단 또는 개인들의 의지(意志)에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논리가 될 수 없다.

 

단지 의지들 간의 충돌을 일으킬 수는 있어도 물리학의 연관으로는 해석하기 어렵다. 단지 다음과 같은 것들은 가능하다: ‘저 사태들은 나의 의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라든가, ‘나는 저 사람들이 싫다라든가, ‘우리는 저 집단을 싫어한다라는 식의 주장들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야말로 의지들 간의 충돌 문제이지, ‘진실(眞實)’이라는 발성으로는 표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이전의 나라를 일컬어 조선(朝鮮)’으로 부른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옛 조선이라는 뜻으로 고조선(古朝鮮)이라는 발성이 있다. 그래서 고조선과 조선은 한자(漢字)로도 꼭 같고, 무엇인가의 연관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발성에 심각한 속임수가 숨어 있다.

 

조선이라는 발성의 유래에 대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무리 있는 가설들이 있다:

 

첫째, 조선은 숙신(肅愼)으로부터 왔다: 이 가설은 <만주원류고>나 김운회와 같은 류에서 좋아하는데, 윤내현에게 반박당한다. 왜냐하면 숙신이라는 말보다 조선이라는 말이 문헌에 먼저 등장하기 때문이다.

 

만일 숙신에게서 조선이 나왔다면 숙신이 먼저 등장해야 하는데, 조선이 먼저 나온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조선이라는 말들이 계속 쓰였을 때에도 여전히 숙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병도와 윤내현의 학설로서, 조선은 아사달로부터 유래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잘 모르겠다: 모호하고 애매하다. 윤내현의 주장은 고대의 국가 이름들은 민족이름이고, 그래서 아사달 족이 곧 고조선임을 설명했다.

 

즉 고조선은 처음부터 국가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 고을나라단계에서 나중에 국가의 단계를 갖추었다는 가설인데, 아사달이 도읍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사달이 민족명 또는 국가의 명칭 또는 고조선의 어원쯤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아사달이란 명칭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것으로서, 신화적 진술을 실증 화 한 무리(어려움)가 있다.

 

그 밖에도 몇 개의 가설들이 더 있지만 다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현대인의 시각이 아니라 고대인의 시각에서의 해석이다. 즉 고조선과 가장 가까운 시대, 즉 고대의 사가(史家)는 고조선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에 유념해보자는 뜻이다.

 

사기 조선전을 주석한 <사기집해>에서는 습수, 열수, 산수라는 세 개의 강들이 있는데, 이들이 합쳐져 열수가 되었으며, 낙랑과 조선이라는 명칭은 이 강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 같다고 했으며, <산해경>을 주석한 4세기 초의 곽박은 조선은 요동에 있던 낙랑과 동의어라고 하였다.

 

쉽게 말해 조선은 강들의 이름에서 나왔는데, 그 뜻이 낙랑이다. 이런 내용은 고려 시대 일연의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이와 같은 내용이 고조선 시기와 근접한 시기의 기록들이다.

 

그러면 낙랑을 찾으면 된다: 낙랑의 바다 가운데 왜인(倭人)이 있고, 그것이 나뉘어 백 여국이 있었다.”(<漢書> 28 <地理志> 8 ).

 

이와 같은 기록들이 그나마 고대와 연관 된 것들이다. 이를 도식 화 하면 다음과 같다: 朝鮮樂浪.

 

오늘날의 사람들이 무엇으로 해석 했던 간에 고대에는 그렇게 해석했다. 물론 고조선을 신화적 이념으로 받아들여, 단군을 부각하고, BCE 2천 여 년 전부터 존재했던 나라로 많이들 선전했겠지만 이는 실증사학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실증사학파에서는 고조선을 길게 잡으면 BCE 7세기 경부터 잡고, 짧게 잡으면 BCE 5-4세기 경부터 잡는다. 고조선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만한 진술들이다. 이와 같은 것들을 일컬어 역사적(실증사적)진술이라 한다. 이미 김운회도 지적했듯이 고조선 이념이란 고려 때 몽고에 맞서기 위한 민중이데올로기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조선(朝鮮)’이라는 단어가 어디로부터 왔느냐이다. 세 개의 강들로부터 왔는데, 그게 낙랑(樂浪)과 같은 단어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고조선과 아주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해석이었다.

 

그러면 낙랑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전한서(서한서): 漢書에 의하면 왜인(倭人)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주장이 있다. 근세 한반도의 조선에서는 일본을 일컬어 왜()로 불렀다. 그리고 그 왜()와는 미친 듯이 전쟁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고전(古典)들을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잘못 읽은 것 아닐까?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가리켜 왜놈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서의 기록은 왜와 조선을 동의어로 여겨도 될 만큼 유사하게 해석하지 않았는가? 정말, 일본을 왜()로 여겼다면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엄청나게 싸웠다. 이는 역사의 기록물들이 그 어떤 지역들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하지 못함을 뜻한다고도 할 수 있다.

 

어느 민속학자의 주장이 기억난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대략 다음과 같았다: 1950년 경을 기준으로 할 때, 중국에서 글자는 알던 사람들은 30만 정도였다. 즉 중국 인구의 0.1%정도만 글을 알았고, 나머지 99.9%는 글을 몰랐다고 한다.

 

역사는 글을 아는 일리트들의 산물이다. 특히 사초(史草)를 기록으로 쓸 만한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일리트 그룹에 들 정도였을 듯하다. 신약성경으로 말하면, ‘서기관급일 텐데, 이들이야 말로 일리트들이다.

 

그래서 역사로 도식화하여, 칼로 무 썰 듯이 재단해 봐도 뭔가 개운하지 않다.

 

그럼 고고학은 어떤가?

 

고고학 역시 민()의 삶을 반영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주목 받는 고분들은 주로 일리트 또는 왕족 또는 귀족 등과 같은 큰 고분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두머리 급 사람들의 무덤이라야 크지, 서민들은 발굴 대상에 포함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분이 남아 있기도 힘들다. 물론 패총(조개무덤)과 같은 곳이야 서민적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고분도 일리트 급이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일리트 급은 소수(少數)이다. 아니, 극소수이다. 그래서 인구비례로 할 때 우리는 극소수의 일리트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왔나를 매우 추상적으로 유추해 가며, 학문해 왔다. 그게 소위 역사학이고, 고고학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은 어떤 식의 진술들과 언어들을 써야 할까?

 

오늘날 한국의 신학자들은 천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적지 않은 사례들이 외국 신학의 유통업자들과 같이 느껴진다. 다시 말해 외국어 능력 좋은 사람들의 진술들이 강하다.

 

즉 한국어를 능가하여, 이제는 외국어까지 배워, 외국의 지식/정보들을 유통 시킬 만한 일리트들이 활동한다. 이는 고대의 사초를 기록했던 사람들보다 더 놀라운 능력들까지 겸비한 셈이다.

 

여기에 어떤 민중적 언어가 담길 수 있겠는가?

 

결국 그들의 언어들도 비()민중적이지 않을까?

 

내가 위에서 일부의 문헌 자료들로 짜 맞추어, 일본=고조선이라고 도식화 해보아도 사람들이 옳소, 우리 모두 친일합시다!” 이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즉 문헌과 삶들과의 괴리는 심각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본 받을 필요가 있다.

 

즉 글 권력을 가졌던 서기관들과 같이 하지 말고, 예수님의 방법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외국어 기득권으로 고액 연봉자들이 되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삶에 있어서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무의식들을 살필 수 있는 깊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신학계는 서기관들의 행태들을 너무 잘 따르려는 것 아닌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살필 것이 있다: ‘민중의 집단무의식은 지도층(일리트 그룹)의 의식과 공유될 수 있는가?’이다.

 

가령, 일본문제로 보자: 민중층이든 일리트 층이든 항일(抗日)에는 동의하는 면이 크다. 그렇다면 이는 집단적 경험에 의한 집단 무의식일까 아니면 교육효과에 의한 세뇌현상일까를 물어야 한다.

 

한반도에서는 집단의 경험에 의한 집단무의식처럼 느껴진다. 이 원인들에 대해서는 여기서 탐구하기 어렵다.

 

역사의 기록대로 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원수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상당한 원수가 돼 있다. 이에 대해 신학은 무엇을 주장할 수 있을까?

 

결국 이와 같은 문제를 신학자에게 묻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수 있다. 탁월한 정신분석가나 역사학과 인류학을 겸비했거나 고전이나 정신분석 연구에 탁월한 능력들을 가진 사람들에게 질문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리될 경우, 신학자들은 주요 아젠다를 놓치게 된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나 제사장들은 일리트들일 수도 있다. 서기관들은 고전어에 능통해야 했으며, 고전과 현 사태들과의 대화도 기대해 볼 법 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예수시대의 서기관들은 무능했다고 신약성경이 증언한다.

 

어쩌면 이게 오늘날의 신학자들일 수도 있다. 신학이 앵무새처럼 남의 나라, 남의 신학을 번역하거나 잘 유통하더라도 현대사회의 문제에 직면하여서는 답을 못할 수도 있다. 신약성경은 그런 부분을 너무 잘 지적한 셈이다.

 

한국기독교학회가 삼일운동을 주제로 잡았다. 한국기독교학술원에서도 그리 잡은 적 있다.

 

지금의 우리는 일제시대를 사는 것도 아니오, 삼일운동은 약 백 년 전의 사태였다. 그럼 우리는 지금도 일본과 싸워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다만 그 삼일운동을 오늘날에 재조명해보자는 뜻 같은데 왜 그래야 하는가?

 

차라리 아마테라스오미가미를 재조명하는 편이 더 신학적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아마테라스오미가미는 일본의 민속이거나 신()이거나 종교이기 때문이다.

 

삼일운동은 신을 주제로 한 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마테라스오미가미는 종교나 이데올로기나 신()을 주제로 한다.

 

가령, “아마테라스오미가미는 한반도에서의 우상숭배였다라는 식의 단답형은 별로 의미 없다. 당위적 주장을 나열하거나 당연한 이야기들을 나열한다면 이는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하겠다.

 

그게 우상인가 아닌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우상인가를 다루어야 한다. 세속의 사람들처럼 평범한 주장들보다는 뭔가 특수한 초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키에르케고오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사는, 그가 의사(그 일에 통한 사람)인 이상, 사람이 자신의 용태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만약 각 사람이 자신의 용태에 관하여 말하는 것(건강하다든가 앓고 있다든가 혹은 번뇌하고 있다든가 등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 사람은)의사로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의사는 단지 약을 처방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병을 진단해야 한다.”(<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의 보편성”): S. Kierkegaard/ 박병덕 옮김, <죽음에 이르는 병> (서울: 육문사, 1994), 57.

 

이를 따르면, 의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용태에 관해 하는 말들 만을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독도 문제라든가, 일본은 침략자들이라든가, 일본은 전범이라든가, 뉴라이트 교과서나 후쇼샤 교과서 등과 같은 말들에 이끌려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의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모름지기 의사란, 민족적 갈등과 분노의 원천이 무엇인지, 백제 멸망기에 일본의 지도층에서 느꼈을 슬픔과 증오 그리고 망각이 무엇이었는지, 일본인들은 어떤 분노의 감정들을 무의식의 세계로 가라앉혀 잠복기에 들어갔는지, 그들의 잠복기는 얼마나 길었는지, 그들을 충동시킨 심적외상(trauma)은 어떤 사태로부터 기인했는지 그리고 길고도 긴 잠복기 끝에 발산한 분노의 표출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등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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