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에 관하여

노무현은 스스로 구시대의 막차라고 했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3/12 [06:23]

노무현 정부에 관하여

노무현은 스스로 구시대의 막차라고 했다.

공헌배 | 입력 : 2019/03/12 [06:23]

 

2003225일 노무현 정부는 평화와 번영, 동북아 중심국가, 개혁과 통합이라는 슬로건 하에 참여정부를 출범시켰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북아 중심국가이다.

 

이 말은 우리가 오랫동안 변방의 역사를 안고 살아왔으나 이제는 그것을 극복하여 중심국가로 우뚝 서겠다는 구호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변방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을 상징하며, “중심이라는 말은 또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가?

 

단지 지역의 위치로만 말하기는 힘들 듯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위치로 한다면 동쪽에서 변방이다. 하지만 20세기 초·중반의 일본은 아시아의 중심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문제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변방이란 외세의 위협 가운데 있거나 힘이 약해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하는가? 그렇다면 그 점에 있어서 근세의 조선은 분명 변방이 맞다. 그런데 그리 따지면 조선만 변방이 아니라 중국 역시 변방이었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여론은 중국을 쉽게 변방으로 보지 않을 듯하다. 본고에서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논해 보려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우리나라는 사방의 열강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으며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항상 외세의 눈치를 보고 있어서 우리를 흔히 변방으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리 따지면 중국 역시 만만치 않은 변방이었다.

 

따져보면 북쪽의 흉노, 서쪽의 토번, 동북쪽의 고구려, 말갈, 동쪽의 백제, 명나라 때는 남쪽으로 쳐들어 온 왜() 등이 모두 중국의 적들이었다. 그러니까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나라이다.

 

그 뿐 아니라 중국은 100년 가량 몽고족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 세월이 지난 뒤 200년 이상 말갈족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라지지 아니하고 어김없이 중화의 넋을 되살려 내었다. 그것도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200년 이상 혹은 100년 이상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백제나 신라를 외세로 가정한다면, 그 세월들은 200년이 훨씬 넘는다. 그러나 신라나 백제를 우리의 역사로 해버리면 이것들은 지배가 아니게 된다.

 

남부여(백제)가 망했을 때 (남부여의)부흥운동을 왜()에서 일으켰고, 발해 또한 고구려의 영토 대부분을 회복했다고 보았을 때, 반드시 백제나 고구려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고구려나 백제는 재기되지 못했다. 일시적으로는 그 지역에서 일어났지만 발해는 거란에게 망하였다. 그렇다면 그 차이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쉽게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까? 아니, 일어났다가도 왜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까?

 

고구려의 후계로 자처하는 고려 역시 여지없이 신라의 전통들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흔히 우리는 왕건의 책임이라 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 보지 않는다. 신라가 그 많은 유죄들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신라를 다시 이을 수밖에 없는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역사는 우연히 그 어떤 당위성에 의해 움직이기 보다는 너무도 강력한 힘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라가 별 볼 일 없었다면 그것을 계승하라 해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공격했다. 사실 고대사에서의 왜()는 한반도의 주적이 아니었다. ()라는 부족들은 주로 신라에게 적들이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적이었다. 또한 왜()는 백제에게나 고구려에게도 그리 심각한 적이 아니었다. 특히 왜는 백제에게는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후기신라시대 이후부터는 신라에게만 적이었던 그 왜가 한반도 전체의 적으로 둔갑했던 셈이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따르면, 남쪽에는 왜가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으며, 서쪽에는 백제가 있는 데, 이게 모두 신라의 적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신라는 사방이 적이다.

 

그런데 이게 아주 특이했다. 신라에게만 적들이었던 부족들이 나중에는 한반도 전체의 적들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선덕여왕 때는 더 많은 적들이 명시됐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황룡사 9층 목탑에 나타났다. 그래서 신라는 주변의 적들 때문에 너무도 고통스러워해야 했던 나라였다.

 

지구 데이터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에는 기후가 따뜻했지만 청동기시대부터는 추워진다. 그러다가 철기시대에는 더욱 더 추워진다. 그래서 철기시대에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가능했던 지역은 충청권과 전라권 정도였다.

 

우리는 흔히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공격했다는 역사의 기록물 정도로 추정해왔지만 역사의 기록물들이 다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다양한 요인들도 있다. 철기시대의 경상도 쪽은 정착생활이 불가능 했을 정도로 기후환경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모 고고학자의 설명으로 들은 적이 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신라를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신라의 유산들을 쉽게 버리지 않았던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게 뭘까?

 

왜 중국이나 신라는 마치 토인비(A. J. Toynbee)의 표현처럼 죽지 않고 형태를 바꾸어가며 살아있는 문명의 형태로 계속해서 전승되어 내려 갈 수 있었을까? 그에 비해 고구려나 백제는 왜 다시금 부흥하지 못했을까?(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이 차이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을 한 번 보자,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황제가 된 사람은 진()의 시황제이다. 하지만 진이 통치한 기간은 불과 15년이다. 그 후 중국은 3국으로 혹은 516국으로 분열되었다가 통일 되고 끝내는 몽고에게 망하였지만 약 100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일어났다.

 

근세에는 200년 이상 지배를 받고 그 가운데 서양열강과 일본의 침략까지 받았지만 그들은 견디어 내고 다시 중화민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잠재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앨빈 토플러가 관심 갖는 권력의 유형으로 따져 본다면 중국은 황제가 다스렸지만 그 제위 기간이 길지 않고, 수많은 격변들을 겪었다. 이에 반해 몽고는 칸()을 중심으로 뭉쳐진 국가다.

 

여진족들은 근세까지도 추장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카리스마 있는 어떤 지도자에 의해 소위 국가 단위 같은 것이 성립 되었고, 이에 따라 단결하여 군사적 우월감으로 식민지를 넓혀갔다.

 

그리고 몽고의 경우는 가는 곳 마다 강간을 하며 말 타고 그 당시 지구의 절반가량을 정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몽고는 그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약한 국가가 되었지 않았는가? 그 후 몽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고, 다시 일어날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여진족들 역시 중국과 토번과 만주를 다 통치했던 큰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 그토록 허약한 청()나라가 된 것은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분명 일인독재(?)의 추장 시스템이나 어떤 카리스마적 추장(또는 칸)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는 아닌 듯하다. 뿐만 아니라 100년 또는 200년 이상 동안이나 이렇다 할 한족 식(漢族 式) 황통(皇統)이나 체제를 자체 내에서 가지지 못했고, 그냥 지배를 받았을 뿐인데도 그들은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는가?

 

쉽게 말해 완전히 망한 듯 하다가도 다시 일어 날 수 있었던 그 힘이 무엇인가? 중국의 재건은 분명 후금을 세운 아이신죠로 누루하치의 여진 재건의 국가 형성과는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말갈은 만주에서 사라지다 시피 되었는데 반해 중국은 오히려 되살아 나 버렸다.

 

우리는 이 현저한 차이가 무엇인지 분석해 내지 못한다면 동북아 중심을 지향하기 힘들 것이고, 또 일시적으로 이루어 내더라도 지속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구려나 백제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 것은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고, 기회가 없어서도 결코 아니었다. 반드시 중요한 그 무언가가 빠져서 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특성들은 무엇인가? 이게 좀 어렵다. 나의 정의(定意)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내 개똥철학에 의한 미셀러니를 지껄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특성은 포퓰리즘(민중선동)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을 상당히 특이하게 여겼다. 민중선동! 이와 같은 정책들이 가장 잘 통한 곳 중, 하나는 바로 차이나(China)였다!

 

고대의 당나라는 난으로 망했다. 그리고 명나라는 난으로 일어섰다. 20세기의 중국 역시 혁명(신해혁명)으로 일어섰다. 노무현을 보면, 왠지 오버랩되는 인물이 있는데, 모택동이다.

 

사실 선동가들 중에는 마르틴 루터 킹이 있다. 이 사람은 단순한 흑인이 아니다. 보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 D.)를 취득한 일리트다. 소비에트 연방의 레닌 역시 일리트적이다.

 

그의 문학 세계에서 민중, 농노, 혁명 등을 주제로 하는 레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귀족이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서울대 출신에, 독일의 명문대 하이델베르크까지 유학한 일리트다.

 

목사 문익환은 그 당시에 이미 미국으로의 유학까지 했던 일리트로 볼 수 있다. 해방신학의 대가 구스타보 구띠에레즈는 국립의대 출신의 신학자였다. 비록 그가 장애인이었을지라도 학벌만큼은 그랬다. 그러나 모택동은 진짜로 서민이었다.

 

노무현을 보자: 그는 서민에다 철저할 정도의 주변인 출신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듯하다. 논객 유시민의 주장에 의하면, 그 당시의 사람들은 노무현을 적대시 한 게 아니라 깔보았다고 했다. 즉 무시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당시의 정치풍토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경향이 강했다. 실지로 고 노무현은 집권 약 1년 만에 탄핵 당했다! 사람들은 안병무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안병무를 깔보지는 않는다. 문익환을 감옥에 보낼 수는 있어도 문익환을 무식하게 깔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은 대통령의 직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게 소외됐던 듯했다. 그리고는 국민에게 호소했다. 이게 통했다. 실지로 국민의 다수는 투표로 노무현을 밀어주었고, 상당히 성공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강력한 대항마가 있었는데, 박근혜였다. 탄핵정국이라는 특성 속에서도 상당히 선방한 사람이 박근혜였다. 그녀는 선거의 여왕이었다. 특히 노무현 정권 후기의 박근혜는 표몰이에 성공했다.

 

민심정치(民心政治)의 대가 노무현에게 아주 골치인 사람이 박근혜였을 것이다. 그래서 정책적 아젠다가 적지 않게 틀어져버렸다.

 

그렇다면 모택동과 비교해보자, 모택동은 서민출신이다. 그는 일리트와 같이 보이지 않는다. 장개석의 경우에는 먹물 든 일리트였지만 모택동은 달랐다. 모택동의 무기는 다름 아닌 민심(民心)’에 있었다. 모택동 집단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장개석보다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택동은 장개석에 비해, ()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한 편이다.

 

하지만 집권 후의 모택동은 매우 달랐다. 모택동의 정책은 인구조절정책이다. 실지로 모택동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만들었고, 산아제한 정책들을 썼다. 그런데 이 정책은 실패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인구가 더 늘어나버렸기 때문이다. 통제정책의 실패인 셈이다. 즉 모택동은 선동에 성공했고, 독립에도 성공했으며, 외세를 몰아내는 데도 성공했지만 정책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는 무엇을 지향했는가! 다시 그의 정책 아젠다들을 살펴보자:

 

평화와 번영, 동북아 중심국가, 개혁과 통합 그리고 지방분권, 즉 중심과 변방과의 소통정책이다. 그는 행정수도조차도 이동시켜, 서울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노무현 정부의 특성은 민중이 깨어 있어야 한다. 즉 민중에 의해 죽고, 민중에 의해 살 것 같은 정부였다. 이것은 특이하게도 고대의 플라톤이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는 철인정치론(哲人政治論)’과는 매우 다르다! 사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좋지 않게 여겼다.

 

민중은 우수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으며, 자각성 또한 매우 약하다.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의 버전으로 하면, 민중은 인식적 표준 예에 있어서 주체가 되기 힘들다. 즉 인식의 표준 예나 이성의 명증과 같은 것들은 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셈이다. 그리고 니이체 식 생철학이나 쇼펜하우어 식 금욕과도 별 상관없다. 민중은 불특정 다수이며, 분위기에 따라서는 오합지졸들처럼 될 수도 있을 계층이다. 여론은 바뀔 수도 있고, 민의도 유동적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와 같은 불특정 다수를 역사의 주체로 믿어보려 한 듯 했다. 마치 문익환이 연상될 정도로 말이다.

 

동아시아사()에서 민중에 의해 몰락하고, 민중혁명에 의해 일어 선 나라는 중국이다.

 

노무현이 중국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노무현의 행동 패턴이 모택동을 연상케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내가 관심 갖는 것은 추장정치(酋長政治)이다. 국가사회 이전의 단계에서나 나타날 법한 그 정치 말이다! 아프리카의 누어인 사회나 티벳 식 라다크와 같은 모델에 관심이 있다.

 

전에 나는 모 신약학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만일 예수께서 현대에 부활하신다면, 예수께서는 모택동과 달라이라마 중, 누구의 편을 들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신약학자 왈: 예수님은 달라이라마를 편들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아니, 달라이라마는 불교의 승려 아닙니까? 예수께서 그를 편든다구요?”라고 했더니, 그가 왈: , 모택동보다는 달라이라마를 편들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게 그 신약학자의 주장이었는데, 사실 관계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무현 정부는 주변도 존중하는 편인 듯 했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이 노무현은 구()시대의 막차였다.

 

문화적으로 하나 인종적으로 하나 이 시대의 진정한 약자들은 소수민족들이다. 노무현은 그런 정도까지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모택동을 보자, 모택동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치열한 투쟁들을 했다.

 

모택동의 정책들은 백화정책(?) 또는 하강정책이었다. 모택동의 하강정책이란, 교육받은 지식인들, 전문가들(전문인들) 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 등이 농어촌의 현장, 공장근로, 서민들의 낮은 자리 등으로 가서, 살아가거나 체험하는 것이었다. 즉 일리트들의 낮은 자리로의 진행이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중심부의 사람들이 변방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택동 정부는 진짜로 주변인들인 소수부족들에게는 너무도 위협적 존재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다수의 인구들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漢族)은 소수부족들의 해체자들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다수의 인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은 여자의 자궁으로 세계를 지배할 충분한 능력들을 갖고 있다. 실로 엄청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강력한 문명국가였으며, 수많은 인구들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타 문화를 흡수하거나 해체할 능력들이 충분하다. 중국인들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국가나 부족들 수 십 개쯤은 조용히 해체하거나 소멸시킬 능력들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대단히 민중적이었다! 그러나 그 노무현 정부에게는 소수부족이나 추장정치적(酋長政治的) 아이디어는 몹시 부족해보였다!

 

이 시대의 진정한 변방은 추장적 정치들이나 소수부족들 아닐까? 자연이나 땅들이 아닐까!

 

* J. J. 루소가 쓴 <에밀>이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였으나 인간의 간섭으로 악하게 되었다. 인간은 어떤 땅에 다른 땅의 산물을 생산하려 하고 어떤 나무에 다른 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려 한다. 인간은 모든 자연 상태를 뒤섞어 놓고, 개나 말이나 노예를 불구로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한국에서 교육철학의 책으로 소개되기도 했지만 사실 루소의 그 책은 사회비판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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