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애국심의 기준은 무엇인가?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3/12 [06:19]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애국심의 기준은 무엇인가?

공헌배 | 입력 : 2019/03/12 [06:19]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은 꽤나 일리 있게 여겨진다. 다름 아니라 생물들은 DNA의 설계를 따라 움직인다는 그 주장에 있어서는 그렇다. 물론 나는 도킨스의 무신론적 진화론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전자의 설계론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가령 동물들을 보자,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사냥을 하며, 이동도 할 뿐만 아니라 먹이도 구한다. 이는 교육효과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본능행동들 인 듯하다. DNA의 설계를 따른 행동들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인간들도 동물들이다. 따라서 인간들도 DNA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군집과 동물군집과의 현저한 차이는 어쩌면 심리에 있는 듯하다. 즉 의식과 무의식의 발상이다. 물론 조건반사의 기능은 동물이나 인간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애국심의 문제는 DNA의 명령이라기보다는 의식과 무의식들의 발현들이 아닐까 싶다.

 

2018년 한국기독교학회에서는 “3.1 정신과 교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모양이다. 그러나 그 일에 관하여는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3.1 정신은 항일(抗日)운동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항일운동의 정신 또는 항일 식 무의식들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항일해야 하는가? 항일운동을 해야 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하면, 제 정신 아닌 것처럼 여길 것이다. 바로 이런 사태를 두고 사회적 집단무의식으로 부른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 항일운동 해야 하는가? 그 항일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국인들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이성적으로 답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무의식적 반작용이 더 강하게 일어나 버리기 때문이다.

 

즉 엄청난 트라우마들이 불일 듯 일어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이성적 판단은 마비 돼 버리고 만다. 그래서 대화가 불가능해져 버린다. 매우 깊은 트라우마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접근을 좀 해보겠다. 더 큰 문제들을 없애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무의식은 어느 시점, 어느 공간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차이 난다. 가령 조선시대라는 기준에서의 일본은 적이다. 그러나 고대로 가거나 선사시대로 가버리면 문제는 180도로 달라질 수도 있다.

 

여러분은 고대의 가야를 적으로 생각하는가? 고대의 유적지 두 개만 소개해보면, 김해 양동리 유적에서는 북방 식 유물이 나왔다.

 

경남 사천 늑도의 집 자리 유적은 북방식이다. 물론 그 사천 늑도에서 북방 식 유물만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집 자리의 형태는 중요하다. 그곳은 한반도의 남쪽인데도 집 자리가 북방식이라면, 생태환경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이주민들일 가능성이 더 짙다. 그럼 오늘날의 경남 사람들은 북방인들이거나 북방인들의 후예들인가?

 

NO! 이런 주제는 생물인류학(형질인류학)의 문제이기 때문에 고고 유물들 몇 개로 단정할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역사학이란 기록 한, 지식인들의 자기투사(投射)이며, 글을 아는 일리트들의 데코레이션들이기 때문에 무조건 도외시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역사의 기록이 사회적 의식을 점유하고, 이게 심해지면 마치 종교처럼 집단화 된 신앙(믿음)의 행태를 낳기도 한다.

 

한반도의 남쪽지역을 일컬어 왜()로 불렀을 가능성이 짙다. 광개토대왕비(호태왕비)를 따르면, ()가 사로/신라를 괴롭혀, 고구려에서 지원을 간 적이 있었다. 한국사학계에서는 그 왜()를 가야로 추정하기도 한다.

 

실지로 나는 강단 고고학계의 한 학자가 그런 뉘앙스를 풍긴 것을 직접 듣기도 했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의 북()삼한 설을 받아들이면, ()를 한반도의 남부만으로 국한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조사하기에 따라, ()는 한반도의 곳곳에 산재해 있었을 수도 있다. 고대의 정황이 그렇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집단적 자아들은 왜()는 일본열도에 있으며, 이 왜()는 조선의 적으로서 조선을 강탈한 오랑캐이다. 이런 식으로 집단적 의식화 돼 있다. 물론 이는 세뇌이며, 국가이데올로기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그런 식으로 국민을 세뇌해야 했는가? 건국이념이 명(: China)나라에 대한 사대성(事大性)이기 때문이다.

 

역사이념이 고대사의 그 어떤 부분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역사이념이 지나(支那)사대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이념은 고대사를 제대로 읽을 수 없도록 세뇌하게 된다.

 

그렇다면 애국심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떤 역사관을 기준으로 국가관이나 애국심이나 국가건립의 도안을 세울 것인가? 바로 이것이 질문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이게 신학의 작업이기도 하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기준이다. 물론 구약성경은 다윗 왕가의 이야기들이 매우 많지만 신약은 다르다. 아브라함이 아주 인상적으로 부각된다. 특히 바울은 아주 여러 번 아브라함을 언급했다.

 

심지어는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설교할 때도 아브라함이 언급 됐다. 더 나아가 갈대아라든가 메소포타미아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고대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갈대아란 불편한 고유명사다. 유대인에게 있어서의 갈대아인은 바빌로니아인을 뜻한다. 또한 메소포타미아는 갈대아 지역으로서 선사시대의 아주 우수한 문명이 있었던 곳이고, 매우 일찍 도시문명사회가 건설됐던 곳으로 여겨진다(아마도 신석기 시대).

 

그 갈대아를 거론한 사람이 스데반이고, 그 곳 출신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공관복음서나 서신서에서 인용했다. 아브라함을 다시보자는 뜻이다. 다시 말해 성경은 이스라엘의 객관적 역사를 기술하는 책이 아니라 그 어떤 관점을 기준으로 반복하거나 복원하려는 책이다.

 

그러면 그 한 관점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잡을 것인가? 더 쉽게 설명 한다: 그 어떤 역사의 사태들을 기준으로 도안들을 그리고 세계관을 가지며, 통일에 대한 기준을 삼고, 국가이데올로기를 만들 것인가? 이게 신학의 작업이다.

 

그게 3.1 운동이어야 하는가? ?

 

3.1 운동은 항일운동으로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될 수도 있다. 만일 고대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렇게 된다. 어느 일본인 학자의 주장을 따르면, 인구폭발설이 있다.

 

쉽게 말하면: 일본열도의 인구는 매우 적었는데, 어느 시대에 급격하게 많아진다. 이는 정상적 번식에 의하여는 그리 될 수 없다고 한다. 즉 외부로부터 수많은 종족들이 유입됐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 종족들 중 한반도로부터의 이주민들은 없었는가? 아니다. 많다. 그렇다면 선사시대나 고대의 기준으로 할 때 왜()는 적국이 아니게 된다. 그 왜가 적국이 되려면 이씨 조선시대와 같은 국가이데올로기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씨 조선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적합한가? 한 예를 들어보자:

 

이들은 모두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 스스로 명호를 세우고 서로 침탈하였으니 비록 호칭한 것이 있다 손 치더라도 무슨 취할 게 있겠는가? 단 기자만은 주 무왕(周武王)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朝鮮侯)에 봉해졌다(鄭道傳, <三峰集>, 卷之十三, 朝鮮經國典 上, “國號.”;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삼봉집>, 2. (서울: , 1977), 232).

 

여기서 정도전이 말하는 이들은 단군, 기자, 위만, 신라, 백제, 후백제, 고구려, 후고구려(고려)를 일컫는 것으로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 있었던 나라들이다. 즉 조상들이 세운 모든 나라들이 지나의 명령 없이 세웠기 때문에 정당성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조선, 고구려, 신라, 백제 등 이런 나라들이 모두 지나의 명령을 받아야 세울 수 있던 나라였는가? 이런 인식이야 말로 노예근성이며, ‘친중사대적 모화관(親中事大的 母華觀)’의 극치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정도전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역사관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났다.

 

3.1 정신이 이와 같은 발상의 연장선상, 즉 조선과의 연장선상에서 결별 됐다는 보증이 있는가?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은 일본에 맞서기 위해 상해로 또는 지나의 곳곳으로 다니면서 선동했다. ? 일본에 맞서 싸우기 위해!

 

왜 그래야 하는 데?

 

반대로 일본과 한 편이 되어, 지나를 공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애국심의 기준을 어디에 잡을 것인가? 선사(先史)나 고대(古代)로 잡느냐? 조선시대의 이념으로 잡느냐에 따라 애국은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선시대보다 고대가 월등하게 우월했다. 사회나 국가의 위상이 그랬다. 그렇다면 후손들은 무엇을 다시 보아야 하겠는가? 삼일운동인가? 고대를 다시 생각할 수는 없을까? 성경은 아브라함을 다시 생각하지 않았는가?

 

이리 말하니까, 사람들은 또 단군을 연상한다. 실지로 일제시대에는 대종교도 있었지 싶다. 그러나 단군은 실증사학회에게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 좀 더 잘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고대의 위대한 그 무엇을 찾는 작업 또는 선사의 경이로울 만한 그 무엇을 찾는 작업, 바로 이것이 신학의 작업이어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일제시대를 사는 것도 아니고,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필요도 없는데, 도대체 그 이념을 다시 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도안들이 궁금하다! 뭘 하고 싶은 겐가?

 

* 사족: 흔히 신라(사로)금관들에서 발견되는 ()’자형 장신구들이 유명하다. 그간에는 그 사로의 금관들에 대해 이00 선생의 가설처럼(그 외에도 더 있겠지만):

 

북방 식이다’, ‘시베리아 식이다’, ‘중앙아시아 식이다’, ‘사슴뿔을 닮았다라는 등의 주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사로국의 금관들에는 곡옥이 매우 많이 붙어(달려)있다. 백제 금관에 견주어도 확실히 좀 많이 붙어 있는 편이다.

 

그렇다면 그 신라(사로)금관 곡옥의 재질이나 형식이 어디로부터 왔을까? 최근 어느 고고학자의 주장을 따르면; 일본이나 오키나와로부터 왔다고 한다! ∼∼∼

 

곡옥의 재질이 일본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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