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측 신학자들의 주장들에 대한 딴죽

전문가들의 거짓말들을 일반인들이 알아내기란 어렵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3/09 [16:22]

통합 측 신학자들의 주장들에 대한 딴죽

전문가들의 거짓말들을 일반인들이 알아내기란 어렵다!

공헌배 | 입력 : 2019/03/09 [16:22]

 

역사를 다룰 때에 통용되는 기본 상식이 있다. 그 기본 상식은 일차자료의 인용과 혹시 2차 자료를 인용하였더라도 신뢰성 있는 자료인가의 문제에 있다.

 

뿐만 아니라 첨예한 어떤 분야에 있어서 의견이 다르거나 동일한 사태에 대한 자료상의 이견(異見)일 경우, 비판적 검증이나 해석상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사는 대부분 현대사이다. 그러니까 사태를 파악함에 있어서 그다지 첨예할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힘든 내용들이 있는 듯하여, 몇 줄 적는다.

 

우선 크게 두 가지의 내용부터 지적하고 싶다. 첫째, 전문가들의 거짓말들을 가려낼 만한 일반인들은 많지 않다. 그 전문가들 중에는 신학교수들도 포함된다.

 

신학 교수들의 거짓말들이나 신학 교수들이 하는 상식 밖의 주장들에 대해 진위를 가려낼만한 일반인들은 흔하지 않을 듯하다.

 

둘째, 업무 영역 몰아주기다. 이를테면 명성 있는 교수에게 업무를 몰아주거나 메이저 급 학교의 교수들에게 업무를 몰아주는 경향이 있다. 이리 될 경우, 메이저 급 학자들의 피곤이 더해지며, 일을 소홀히 하거나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지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될 수도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천명 넘는 신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업무를 한 곳에 몰아주지 말고, 형평성 있게 나눌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전임 교수자리를 얻지 못한 강사급이라도 실력 있는 학자들에게 업무를 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 연관하여, 자료집 하나를 소개한다: 2016년 통합 측에서 발행한 <총회 창립100주년 기념 백서>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는 특이한 오류 및 바람직하지 않은 듯한 내용들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교회사 부분과 박형용에 대한 견해다.

 

이 두 분야를 다룬 학자는 이름 대면 알만한 메이저급이시며, 통합 측의 대표적 학교에 재직하셨던 분들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분들이 총회 백서에 출판하신 글에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여기서 납득하기 힘들다는 뜻은 견해의 차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신학적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사실의 차이이다. 당연히 신학적 의견들은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차이나 통계 자료의 차이 같은 것들은 역사왜곡일 수 있다.

 

그러니까 의견의 차이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통계 자료의 문제 또는 역사왜곡의 문제와 같은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는데, 명성이 있는데다 학교의 보직도 있어, 바빠 죽을 만한 학자들에게는 그만 찾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분들은 년봉도 충분하게 높고, 굳이 글을 의뢰하지 않아도, 학교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분들일 테니까 학문적 글들은 좀 더 잘 할 만 한 분들에게 의뢰하심이 좋을 듯하다.

 

학교에서의 직책이 높다고 하여, 그분의 학문성이 우수하다는 보증은 없다. 이런 문제는 논리가 아니다. 물론 학교에서 직책이 높은 분들 중에는 학문성이 우수한 분들도 계신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런 분들은 보나 마나 바쁘실 테니까 일감을 다른 분들(상대적으로 한가한 분들)에게로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

 

통합 측 총회 백서에 나온 세 분 교수님들의 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총회백서발간위원회 편, <개혁하고 꿈꾸는 100년의 신학>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6)46-47쪽에서는 12신조(초기 대한장로교회 신경)의 구원론을 소개하면서 만인구원 신앙(만인구원설)’까지 거론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팩트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12신조에 대해서는 관련 논문들이 있으며, 한 학자는 미국까지 가서 12신조의 원문을 찾았고, 발제하였으며, 그 신조를 깊게 연구하여 논문들을 게재 했다. 그런 학자의 글을 읽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47-61쪽에서는 21세기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앙고백서(2003)를 다루는데, 이 신앙고백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논문이 해외 저널에 게재되어 있다. 혹시 장신대 명예교수님께서는 그 논문을 읽으셨을까? 좀 궁금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국교회사를 다룬 65쪽에는 교인수 통계가 나오는데, 아주 특이하게도 2차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내가 확인한 자료인 초기 내한 선교사 곽안련의 자료와는 차이가 크다.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하신 교회사가께서는 총회의 회의록 자료의 통계를 참고 하시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67쪽에서는 스트롱에 대해 나온다. 그분은 스트롱의 <조직신학>이라는 책을 기록했다. 그런데 과연 그분이 스트롱의 조직신학의 목차를 읽으셨을까? 그리고 가옥명과 이눌서의 자료와 스트롱의 책과의 비교가 제대로 된 것일까?

 

왜냐하면 스트롱은 그의 책 <조직신학>이 있고, 스트롱의 신학을 응용한 중국의 가옥명이 있으며, 이를 다시 조선의 평양신학교에서 소개한 평양신학교의 교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서 첨삭 된 부분들은 없는지 그리고 과연 스트롱이 제대로 소개 된 것인지를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67쪽의 각주 5번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분은 A. A. Hodge와 스트롱과의 관계에 대해 썼는데, 부자(父子)관계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둘은 부자(父子)관계가 될 수 없다.

 

미국 식 이름에서는 패밀리 네임이 뒤에 간다. 즉 성과 이름의 나열 순서가 한국과는 반대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성()이 같다. 그래서 이는 신학을 전혀 몰라도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기초상식 밖의 주장을 그 학자가 책에서 했다.

 

그리고 89쪽부터는 박형용을 다루었는데, 사실 합동측이야 말로 통합과는 형제교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박형용에 대해 그런 식으로 글을 써도 되는지 좀 궁금하다.

 

그 학자의 주장을 직접 들은 적도 있었는데, 마치 메이첸-박형용-근본주의하는 식으로 도식처럼 쓴다. 그런데 이런 도식이 타당할까? 그분은 과연 박형용의 글 몇 편을 읽으셨을까?

 

박형용은 침례교 계통의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95쪽부터는 박형용의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을 다루었는데, 이런 부분도 선행연구를 좀 하셔야 좋을 듯하다. 이미 국내에서도 박형용의 종말론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이 있다:

 

정태진, “박형용의 전천년설 연구: 찰스 핫지의 후천년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계명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1).

 

이 박사학위 논문에 의하면 박형용이 미국에서 배워 온 신학은 전()천년주의가 아니라 후()천년주의 신학이다. 물론 박형용이 한국에서는 전()천년주의를 했다고 하지만 그 주제로 박사논문 쓴 사람의 의견도 참고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 외에도 여러 주장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소회는 교단 백서라기보다는 교단 대변서와 같은 인상을 받는다. 즉 자기교단의 당위성을 변호하기 위한 책인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는 뜻이다.

 

통합 교단은 에큐메니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교단 백서에도 그 단어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2016년 총회를 가 보았더니, 아주 인상적이더라! 몇 교단에서 교단장들이 총회를 축하하시러 방문하셨다.

 

그런데 합동 측과 고려파와 호헌 측 같은 교단들에서는 오지 않았더라! 그러면 어디에서 왔을까? 감리교와 대한기독교 복음교단에서 왔더라! 그런데 역사적 뿌리를 보면 통합 측과 가장 가까워야 할 교단은 합동 측이다. 그런데 왠지 가장 먼 것 같다. 그러면 합동 측과 통합 측과의 거리를 그토록 멀게 만든 사태가 무엇인가?

 

통합 교단의 어떤 신학자들은 로마 가톨릭과도 대화하려 했고, 더러는 열린 신학을 주장했으며, NCCK에도 가장 많은 기부를 한다. 그러나 정작 통합 측은 합동이나 고려파와 같은 교단과는 많이 대화하지 않는 것 같다.

 

교단백서가 교단대변서와 같은 방향으로 갈 경우, 생길 수 있는 우려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왜곡, 둘째, 신학적 오해이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정당성에 매몰되어 그 반대급부로 생성된 신학을 헤아리지 못하는 약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분파적일 텐데, 아주 놀랍게도 통합 측에서는 에큐메니컬을 주장한다는 이중성이 내재하게 된다.

 

쉽게 말해 공유된 뿌리에 대해 깊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과 공유된 뿌리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끌고 가려는 아전인수의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정도를 넘으면, 그걸 일컬어 역사왜곡이라 한다.

 

보다 더 온전한 교회사를 배우려면 뿌리 연구를 다시 해야 한다. 물론 그 책에서는 타 교단 신학자의 책도 인용되어 있다(박용규 교수의 글을 인용했더라). 그러나 타 교단 신학자의 글을 인용했다고 하여, 그게 곧 뿌리 연구에 충실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아주 취약한 분야가 있는데, ‘교회정치. 이 부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지만 총회의 실정성에서는 가장 많이 다루었어야 했다.

 

그러나 통합 교단에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부족한지, 그런 문제는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다(‘교단백서에서 그랬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칼뱅주의 교회정치를 함에 있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취약점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다시 말해 가장 아픈 부분을 간과했다.

 

필자는 통합 측 목사들을 만나면 종종 묻는 질문이 있었다: ‘장 칼뱅은 목사입니까 장로입니까?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해, 칼뱅이 장로였다는 대답이 월등하게 많이 나왔다.

 

다시 말해 과거 통합교단 신학교들에서는 칼뱅주의 교회정치의 원리에 있어서 기초상식조차도 가르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역사의 사실로 하면, 칼뱅은 목사로서, 제네바 목사회의 의장이었다.

 

2016년 통합 측 총회에서는 모 노회가 총대들을 파송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원미달의 총회로서 개회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목사안수와 목사임직에 있었다. 이 문제는 수년 전에도 붉어졌던 일이다. 그러나 그때도 그게 거론된 것 보니, 통합교단의 신학자들은 뭘 잘 몰랐거나 책임을 회피했거나 일 것이다.

 

즉 교회현장과 노회 현장의 고통들에 대해 신학자들은 중립이거나 몸조심하듯 했던 모양이다.

 

이미 1970년대에 발행된 박사학위 논문에 목사안수 문제가 나온다. 네덜란드에서 나왔던 논문이며, 목사 안수식에서 안수기도를 누가 해야 하느냐의 논쟁은 미국에서 수 십 년 된 것이었다.

 

한국교회는 미국 북()장로회의 전통을 더 강하게 받아들였는데, 당연히 북장로회의 전통에 의하면 장로는 목사의 임직식에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분야를 보다 더 명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1645년 판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를 읽었다. 그 결과 장로가 목사의 임직식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다른 교파에서는 상상조차도 하지 않을 일들이 유독 통합 측에서는 그토록 심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일들에 있어서 통합 교단의 신학자들은 무책임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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