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했을까?

우리도 신을 죽였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3/02 [11:33]

초기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했을까?

우리도 신을 죽였다!

공헌배 | 입력 : 2019/03/02 [11:33]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의하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면 그 사유는 별 볼일 없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이므로 이 주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미셀러니를 발성하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 식의 분석으로 하면 표현될 수는 있어도 말해질 수는 없는 사례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는 제 사고의 한계를 발성()으로 표현함을 양해 바랍니다.

 

어쩌다 제가 이신건 교수님의 글에 대글을 달았고, 이에 따른 코멘트가 페이스북에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귀한 정보와 좋은 몸글을 달아주시어(2016326), 저도 어쩔 수 없이 발성해야 함을 느낍니다. 물론 이 역시 제 개인의 느낌일 뿐이기 때문에 논리적 정당성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저의 개똥철학에 의한 미셀러니를 몇 줄 써 보겠습니다^^

 

이것은 이씨 조선시대에 대한 저의 회상(回想)입니다.

 

전에 문창극 교수님께서, 온누리 교회에서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 간증으로도 조선시대의 시대상에 대해 상상은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 분의 간증은 저에게 흥미로웠습니다. 언론에 공개된 하나님의 뜻논쟁 말고, 전체 간증을 다 듣고 나면 특이한 초점들도 잡힐 줄 믿습니다.

 

그만큼 조선시대는 특이했고, 사람들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뿐만 아니라 찬론, 반론 및 여러 가지로 견해들이 오고 갈 수 있는 특이한 시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씨 조선시대에 대해 매우 부정적입니다.

 

우선 몇 가지의 사례로부터 출발합니다. 물론 이는 경험에 의한 정당화이므로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한 <철학적 탐구>에서의 주장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저는 마틴 하이덱거를 길러 낸 독일 사회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사태들은 사람들을 길러내거나 활용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문제들이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예를 들면 후기 신라시대의 최치원은 변방을 돌아다니다가 여생을 마쳤고, 조선시대의 허균은 능지처참으로 죽었으며, 여류 문학가 허난설헌은 호된 시집살이로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은 유배되었지요. 그리고 죽을 고생을 해가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던 김정호는 감옥행이었습니다.

 

김정호는 근대 사람이었습니다. 그 김정호를 조선은 감옥으로 보냈어요. 일설에 의하면 이순신은 자살했습니다. 그만큼 이씨 조선의 벽이 두터웠습니다. 흔히 칼 바르트가 위대하다고 하는데, 저는 게르만 인종이 위대하다고 합니다.

 

칼 바르트를 전공한 모 교수님에게 들었는데, 바르트는 골목대장으로 패싸움 잘하던 문제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게르만 사회는 패싸움 하던 문제아를 세계적 신학자로 받아 줄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씨 조선은 어지간한 우수 인재도 자살하거나 소외되거나 유배가거나 변방을 떠돌아다니게 만드는 특이한 은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조선 사회는 부모 하나 잘 만나면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모 철학자가 쓴 마틴 하이덱거에 관한 논문을 따르면, 현대 문명사회는 밤인 듯 여겨집니다. 이 깊어가는 밤에 존재를 망각하여 허무주의가 엄습해 온 듯 여겨지는데, 오늘날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사회의 부속품들처럼 살아갑니다. 사유를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를 다닐 만한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이 시점에 하루 3교대씩 하면서 8시간 동안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사람들, 대체로 이와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이 사회에서 마틴 하이덱거는 어떤 의미입니까?

 

존재를 망각하였기 때문에 그토록 빡세게 사는 것입니까? 반대로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불교를 많이 따랐습니다. 고승들도 제법 많이 나왔을 것입니다. 하이덱거가 읽었다던 그 <장자>라는 책을 한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접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대의 사유가 어떠했을 것으로 여기십니까?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는 구원 받았습니까? 장자 공부를 덜하거나 도덕경을 덜 읽어 고려가 그 모양 그 지경이 됐다고 여기십니까?

 

사상적으로 하면 천재에 반열에 들지도 모를 이율곡이 어떤 역사 인식을 가졌는지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격몽요결>인가 뭔가 하는 그 책을 저술한 이율곡이 강릉에서 살았던 모양입니다. 이씨 조선 사회는 그런 공부를 한 자들이 관직에 나아갔고, 그런 종류의 인문학 시험으로 공무원을 등용했던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씨 조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 줄 아십니까? 돐 지난 아이에게 병역세를 매기고(황구첨정), 죽어 무덤에 가 있던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한 나라였습니다(백골징포). 후기 신라시대 이후부터 한반도 사회는 철학이 종교화 되거나 철학으로 무장한 자들이 고위직에 올랐고, 조선은 아예 철학자가 혁명으로 세운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가 어찌 됐습니까?

 

그 논문을 따르면, 하이덱거는 과학문명이 존재를 망각함으로 밤이 점점 더 깊어진다고 주장한 듯한데, 일견 동의할 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다 하나 더 보태겠습니다: 철학을 존중한 한반도 사회는 점점 더 밤이 깊어졌다. 그 암흑이 고조에 달했을 때 고려나 조선은 망했다.”

 

인문학 좋아하던 이씨 조선은 양반 중에서도 문관을 우대했는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사람들 같이 답답한자들이 어디 있을까 싶네요.

 

조선 말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형상들을 훼손하고,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불만들이 많았지요? 그런 가요? 그런데 그거 선교사들이 굳이 시킨 일 아닙니다. 전택부 선생의 책에 의하면, 어떤 선교사는 우상을 때려 부수려는 조선인을 말렸습니다. 그런데 왜 조선인들 스스로 그런 짓들을 했을까요? 무식해서? 교리가 독단적이어서? 아니면 근본주의자들이어서? 저는 달리 해석합니다.

 

그들의 무의식이 이씨 조선을 죽여 버리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무능하고 부패하며 바보 같았던 그 전통에 대해 분노하여 조선인들 스스로 이씨 조선을 사형시켜 버린 게 아닌가 궁금합니다. 물론 이는 저의 개똥철학에 의한 분석입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이체와의 공통성 중 한 가지는 인도의 전통, 다시 말해 흰두이즘과 불교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그토록 안티 크라이스트 하였던 니이체가 그의 책 <서광>에서 인도에게서 배우자!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좀 특이했습니다. 쇼펜하우어와 니이체는 모두 임마누엘 칸트를 비판했습니다. 그 정도의 대가들인데도 그 둘(니이체와 쇼펜하우어)은 이상하리 만치 칸트에게 비판합니다. 그러면서도 인도 식 철학에는 긍정적입니다.

 

그러면 따져 보십시다. 그 인도의 불교이즘이나 흰두이즘 비슷한 사조가 한반도에 도래 한지 어느 정도였습니까? 천년 넘습니다. 그 불교에 몸서리치던 삼봉 정도전은 <불씨잡변>으로 불교 비판서를 냈습니다. 그 정도로 한반도에서는 불교에 대한 경험이 많습니다. 불행스럽게도 니이체와 쇼펜하우어가 모두 존중하였던 불교, 바로 그것을 국교화 하고, 체화했던 사회가 한반도입니다.

 

그런데 그 한반도가 어쨌냐는 겁니다. 불교를 해석한 니이체 이후, 독일은 흥기를 맞이했지만 정도전은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수록 나라가 빨리 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게 철학의 문제일까요? 인종의 문제일까요? 혹시 게르만 인종들의 DNA가 우수하여 그들은 불교를 받아들여도 세계를 지배하고, 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여도 세계를 지배할 만한 우수 DNA가 있어서 아닐까요?

 

반면 후기 신라시대 이후부터는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당나라에 대한 사대화가 극대화 되고, 불교가 국교화 되어, 공부하라고 절도 주고, 집도 주며, 존경까지 해주었는데도 고려는 위기를 예측도 못하고 대안도 없고, 그러다가 망했습니다.

 

불교에 별로 관심 없어 보였던 훈족이 게르만 족을 벌벌 떨게 만든 것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게 게르만 족들의 이동을 유발시킨 역사의 큰 변동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한반도에 정착한 사로(신라)는 조막만하고, 당나라에 대해서는 무슨 빚을 졌는지 죽어라고 사대하고, 일본 사람들한테도 실컷 당하다가 결국 망했습지요. 바로 이게 그 위대하다는 인도 식 불교이즘이 한반도의 신라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인가요?

 

물론 불교를 받아들인 신라가 한시적으로는 성공했습니다. 왕권도 강화하고, 가야도 접수했으며, 일본도 박살냈습니다. 그리고는 당나라에게 납작 엎드려 개와 말의 성의로 조알 했습니다(최치원의 기록에 의존했음).

 

이게 한시적으로는 효과를 보았는지 모르겠는데, 고려 때에는 엄청난 침략을 받았고, 그래도 정신 못 차린 조선은 아작 났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도대체 후기 신라시대가 우리에게 물려 준 게 뭐죠? 쇼펜하우어는 흰두이즘을 말하고, 니이체는 불교를 말했다굽쇼? 현대 한국어의 뿌리가 바로 드라비아어입니다. 그만큼 한국과 인도와는 고대 때부터 교류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인도이즘의 종말이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조선인들은 드디어 들고 일어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장승, 단지, 서낭당 등을 스스로 때려 부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하던데 저는 견해를 달리 합니다. 마틴 하이덱거의 해석에 의하면 니이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할 때의 그 죽음이란 근대 이전의 서양인들은 죽었다라는 뜻이지요?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근대 조선이전의 신들을 죽였습니다.

 

고트 이스트 토트? 조선시대 이전의 신들을 죽인 것 같습니다. 조선 말()에 개신교를 받아들인다는 뜻은 일종의 정신적 개벽인데, 조선말()의 조선인들은 이씨 조선의 신들을 죽였습니다.

 

초기 한국개신교회는 조선 근대 이전의 신들을 죽였고, 이는 오컬트의 파괴로 여겨집니다.

 

불교를 해석한 도이칠란트는 세계적 사상가들을 줄줄이 생성해 낼지 몰라도 근대 이전의 신들을 죽인 조선인들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7위의 국방력을 갖춘 나라가 됐습니다. 북한하고 합치면 한반도의 군사력은 세계 3-4위를 다툴 겁니다. 거기에다가 미국까지 우리와 동맹을 해준다면 한국의 군사력만 하더라도 세계 최강일 겁니다.

 

다시 말해 불교나 장자에 매료된 독일의 그 위대한 사상가들이 유럽을 깨어나게 해 줄지 모르겠는데, 우리 한반도는 기독교의 수용 이래, 단군 이래 이만큼 잘 살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견적이 좀 나오네요.

 

독일 사람들은 열심히 장자와 노자와 불교를 배우고, 우리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중세에서 근대까지 꽃 피운 기독교를 배우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민족을 잠에서 깨운 종교는 불교나 유교가 아니라 기독교 아닐까요? 한국인들이 역사적으로 경험한 기독교란 아마테라스오미가미조차도 이겨 버린 신들 중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칼뱅주의 개신교는 신들 중의 챔피언이었습니다. 바로 이게 조선인들의 경험입니다.

 

한국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정도전과 조선시대의 사태들의 한 현상을 소개합니다. 조선 사회에 있어서 이념적 토대를 놓은 삼봉 정도전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석씨(釋氏)의 지옥설은 다 낮은 근기(下根)의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겁나는 지옥설을 만들어 착한 일을 하게 할 뿐이다.” 한다. 정자(程子)는 이에 이르기를, “지극한 정성이 천지를 관통하여도 오히려 사람이 감화되지 못하는데, 어찌 거짓된 가르침에 사람이 감화 될 수 있겠느냐?”(중략) 옛날에 어떤 중이 나에게 묻기를, “만일 지옥이 없다면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 악한 짓을 안 하겠느냐?” 하기에 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은,(중략) 모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이라도 악명(惡名)이 있게 되면 그 마음에 부끄러워하기를 마치 시장에서 종아리를 맞은 듯이 여기나니, 어찌 지옥설 때문에 악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느냐?” 하였더니, 그 중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鄭道傳, <三峰集>, 卷之五, 佛氏雜辨, “불씨 지옥의 변.”;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삼봉집>, 1. (서울: , 1977), 327).

 

이 말대로 한다면 인간 도덕의 잣대가 내세관보다 위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선사회의 모습은 위대하지 못했습니다. 관료주의 사회를 비판했던 김삿갓의 시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日出猿生原(일출원생원)

猫過鼠盡死(묘과서진사)

黃昏蚊簷至(황혼문첨지)

夜出蚤席射(야출조석사)

金炳淵/ 권영한 역, <김삿갓 시> (서울: 전원문화사, 2008), 107).

 

해가 뜨니 원숭이가 들에 나오고

고양이가 지나가니 쥐는 모두 죽더라.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서 기어 나오고

밤에는 벼룩이 자리에 나와 쏘아대네(Ibid., 107).

 

이에 대해 이건호는 다음과 같이 논하였습니다:

 

<원생원>은 표면적으로는 원숭이, 고양이, 모기, 벼룩이 등장하는 별 뜻 없는 시이다. 그러나 으로 읽어보면 김병연의 숨은 의도가 드러난다. 지방 토호들이 모여 술을 먹으면서 서로 원생원(元生員), 문첨지, 서진사, 조석사(趙碩士) 하면서 서로 뽐내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한 수 지어 그들을 조롱한 것이다. 성씨 원, , , 조에 벼슬이름 생원, 진사, 첨지, 석사를 결합하여 원생원, 서진사, 문첨지, 조석사가 되는 이들의 음()에 열등한 동물을 빗대어 표현하였다. 즉 원생원을 원숭이, 서진사를 쥐, 문첨지를 모기, 조석사를 벼룩으로 빗대어 표현하였다. 김병연은 지방 토호들이 자랑삼아 부르는 호칭을 모두 사람의 피와 재물을 빨아먹고 사는 고양이, 모기, , 벼룩 등에 비유하여 그들을 조롱하였다. 표면의 거짓의미와 내면의 진실적 의미를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를 활용하여 이중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적 아이러니의 정형화 된 시이다(이건호, “김병연 시연구” (조선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4), 122).

 

이를 따라서 볼 때 김삿갓은 그의 시를 통해 사회를 풍자했는데, 조선말의 관료들이 어떤 식으로 백성을 괴롭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조선말의 사회적 모순을 보여준 글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습니다:

 

내가 전해들은 정보가 틀리지 않다면 한국의 관직을 맡은 관리들에게는 정해진 급여가 없었다고 한다.(중략) 이들은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견딜 수 없는 방법으로 백성들을 쥐어짜지만오로지 오랫동안 견디어 온 한국인만이 이 쥐어짜기를 견딜 수 있다(차종순, “이기풍 목사의 생애와 사역,” <신학이해> 15 (1997. 9): 217).

 

이를 따른다면 아무래도 인간의 의지는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집단적으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조선의 관료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삼봉 정도전이 주장한 인간 도덕성의 낙관론은 믿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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