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기미독립선언문

독립운동은 중국의 소수민족들에게 해당되어야 한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3/02 [11:28]

다시 읽는 기미독립선언문

독립운동은 중국의 소수민족들에게 해당되어야 한다

공헌배 | 입력 : 2019/03/02 [11:28]

 

해마다 3.1 절 기념행사를 한다. 그런데 이 3.1 운동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그저 형식적으로, 또는 세러머니의 하나로 지나치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 행사는 이미 100 여 년 전의 일이라 재해석 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삼일 운동의 선언문이었던 기미독립선언문에 나타난 철학을 살펴보려 한다.

 

먼저 우리가 주의 할 것부터 밝히겠다.

 

이 글은 191931일 정오에 발표된 글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해가 기미년이었기 때문에 기미독립 선언문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 할 것은 첫째, 종종 보면 사억만 중국 사람들이라고 이해하는 수가 있는데, 이는 의역으로 인한 오역(誤譯)이다. 그것의 원문을 보면 중국인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지나인(支那人)”이라고 했다. 이 표현은 아주 정확하다. 그 이유는 일본 사람들의 일용어이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뿌리를 생각할 때 아주 적합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 말이 타당한지 생각해 보자, 그 나라의 명칭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대로 “China”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China를 한자(漢字)로 옮기면 支那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차이나라는 말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고려해 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분분한 설()이 가능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Chin”에서 유래 했을 듯하다. 그러니까 차이나는 원래 만주, 내몽골, 티벳, 신장, 요동 등지와는 아무른 상관이 없는 나라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쌓은 (만리)장성을 보아도 뚜렷하다.

 

그러니까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나라 시대가 있었고, 그 주나라가 일곱 개(7)로 나누어졌다. 바로 그 일곱 개의 지방국을 통일한 나라가 ()”이다. 이라는 말을 영어로 옮기면 “Chin”이 되고, 거기에다가 “a”자를 붙이면 “China”가 된다. 이것을 다시 한자로 쓰면 지나(支那)”가 된다. 당연히 그 지나는 양자강의 남쪽지방을 충분히 통일하지 못했으며(그 남쪽에 나라가 존재했었다), 대체로 황하강을 중심으로 산동반도와 양자강 정도를 아우른 그런 나라였다.

 

그럼 우리가 中國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타당한가? 결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나인들이지, 우리가 그리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中國이라는 말은 가운데에 있는 나라라는 뜻인데, 이 말의 의미는 그네들은 중심(中心)”이고, 그밖에 다른 나라들은 변방 내지 오랑캐라는 무시의 말을 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이해는 지나인들이 갖고 있는 고서(古書)에서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똥고양이(穢貊), 오래된 멍청이(蒙古), 잘 익은 여자(숙여진), 덜 익은 여자(생여진) 하는 식으로 노골적인 무시를 해 왔던 것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우리가 중국이라는 말을 쓸 하등의 이유도 없다. 따라서 기미독립 선언문에 나타난 대로, 그리고 국제적 명칭을 따라 지나(支那)”라는 말을 사용함이 매우 타당하다.

 

기미독립 선언문을 보면, “사억만 지나인이라 돼 있다. 그 표현은 정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독립선언문인데, 내용을 살피면, 지나 사람들을 염려하고 있다. 이는 오지랖 넓은 망상으로 여겨진다. 특별히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지나 사람들은 동북(東北)공정, 서남(西南)공정, 서북(西北)공정이라는 터무니없는 일들을 해 대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동정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결코 타당하지 않다.

 

대관절 조선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 지나 사람들의 일까지 걱정을 해야 하는 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실지로 기미년에 쓰인 독립선언문을 보면, ‘지나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 때문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염려 했는데, 이것은 오지랖 넓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결코 조선인들은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다.

 

기미 독립 선언문을 보면, “이천만 민중의 성충을 합 하야라는 문장 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조선의 인구는 남북한 합하여 2천만 정도였고, 지나의 인구는 4억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지나 인구가 십억이 넘는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4억 가량 되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천만 이라고 했지만 실은 더 정확히 말하면 1800만 정도 됐다고 한다.

 

아무튼 몇 가지를 정정하면서 기미독립 선언문의 사상을 알아보자,

 

기미독립 선언문을 쓴 육당 최남선은 일찍이 신()문물에 대해 긍정하면서 우리 문학의 새로운 파라다임을 연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국문학사에서는 주목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나중에는 친일적 행각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흔히 서재필이 독립협회 창설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알지만 그가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킨 친일파라는 것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육당의 경우, 2차 대전이 끝난 뒤에 드러난 대로 그도 친일 행각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화여대 학장을 역임한 고 김활란 박사도 친일파이었으며,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친일파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친일 행위에 대해 비판을 한다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 손 치더라도 우리는 육당의 사상을 탐구 할 필요가 있다.

 

육당 최남선의 기미독립 선언문에는 몇 가지 심오한 사상이 들어 있다. 그것은 첫째, 우리 민족은 일찍이 찬란한 문화를 만들었던 문화민족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우수한 문화를 만들었던 민족이 제국주의라는 침략적이고, 도둑놈 같은 국가들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인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 선언문을 씀은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부터 반성을 하자는 데 있다고 했다.

 

셋째, 인류는 평등하다는 것이다. 원문에도 나오듯이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이다. 즉 인류는 평등하다는 심오한 철학이 담기어 있다.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실 평등은 인류의 큰 소망 가운데 하나이었지만 그것을 이룬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토록 평등을 부르짖었던 공산당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착취를 일삼았는가 하는 것은 지나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이 우리 민족에게 행한 만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수한 사회윤리학자(라인홀드 니부어)가 지적한대로 우리나라처럼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꽃피운 곳에서는 평등해 질 수 없는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매우 오래전부터 불평등한 사회였다. 그런 나라가 유독이 일본의 침략 앞에서만 평등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도 실은 형평성에 있어서는 옳지 않다.

 

우리나라 헌법의 서문에서 강조한 것이 “3.1운동의 정신인데, 그 삼일운동의 정신이 바로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그리하여 우리는 평등에 대해 살필 필요가 있다. 평등은 역사가들과 인류학자들이 증명하는 대로 미개한 사회일수록 행하여지기가 쉬운 제도이다. 하나 예를 들어 보자, 현대에 미국이 더 평등한가? 중세의 몽골 사회가 더 평등했겠는가?

 

그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철저한 계급사회다. 차별이 뚜렷한 곳이다. 어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 사회가 더 평등했겠는가? 백인들이 세운 미국이 더 평등했겠는가? 역시 두말할 나위 없다. 원주민 사회가 훨씬 더 계층이 약하고 공동체적이며, 가족적 친분이 잘 드러났다.

 

이리 따질 때 지나 사람들의 나라는 그야말로 차별그 자체인 사회다. 더러 지나의 사상가들 가운데에는 평등을 말한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에 그칠 뿐이었다.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 역시 철저한 계급사회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나라는 현대에 들어 평등을 많이 강조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학벌, 지연, 경제적 능력, 직업 등에 따른 차별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현실이 그렇다. 계급이 철저하다는 것은 차별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평등을 강조한 3.1 정신에는 맞지 않다. 이 점에 있어서 육당의 사상은 관념적이다. 그의 주장이 관념적이라는 것은 나중에 드러난 그의 친일 행각을 살피어도 알 수 있을 듯하다.

 

기미독립 선언문독립을 중요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 이미 우리는 적어도 국체(國體)에 있어서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완수했다. 일부 친일파들이 국권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독립된 분단국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관점에 있어서 이 독립이라는 것은 달리 생각해야 한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제국의 군홧발 아래 심하게 짓밟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바로 만주족, 티벳족, 신장족, 내몽골 족 등이 해당된다. 이들이야 말로 반드시 독립된 주체로, 그리고 독립된 국체로 서야 한다. 이것은 단지 평등이라는 가치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형식적 실체에 있어서도 그렇다. 즉 만주제국이 복원 되어야 하며, 만주어도 복원되어야 한다. 당연히 이주된 수많은 지나인들(漢族)은 그들의 본토인 진()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연히 티벳, 신장, 내몽골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다시 읽는 독립헌장은 이제 한국에서가 아니라 바로 소수민족(小數民族)”으로 일컬어지는 그 사람들에게서 외쳐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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