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韓美)동맹과 한국의 기독교들

한국기독교는 친미(親美)적이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2/22 [16:35]

한미(韓美)동맹과 한국의 기독교들

한국기독교는 친미(親美)적이다!

공헌배 | 입력 : 2019/02/22 [16:35]

 

명성황후는 죽었다. 그러나 명성황후와 초기 내한 개신교 선교사와는 각별한 관계였다. 많은 비판들을 받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종 황가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미국 선교사들의 손을 잡았다.

 

평안도의 금광채굴권을 주는가 하면, 땅을 허락하여 선교사업들을 하게 해주었고, 선교사에게 적지 않은 선물들도 주었다. 고종황가는 반일(反日친미적(親美的)이었다.

 

디 유나이티드 스테이트스 옵 어메리카와 한국의 개신교들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아주 밀접한 연관성들이 있다. 그렇다면 국가사회주의 무신론을 주장하는 북조선이나 중공에서는 기독교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까? 내가 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적으로 여길 듯하다.

 

그럼 한국의 신학계에서는 미국 식 기독교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을까? 좀 이상하게도 나는 이상한 선생님의 까리스마에 빠져, 석사과정을 선교신학으로 했다(사실 그 선생님은 정치학 하셨다: 내 지도교수를 가르친 분은 잉글랜드의 명문 서쎅스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과장을 지낸 분이다).

 

나의 신대원(M. Div.), 대학원(Th. M.)의 지도교수가 동일하다. 물론 그 학교에서는 한국교회사에 이점이 있던 교수님도 계셨는데, 지금은 은퇴하셨지 싶다.

 

잘 알지는 못하겠는데, 내가 배운 신학대로 해보면, 한국에서의 기독교란; 첫째, 피폐했던 조선사회에 들어왔던 기쁜 소식이요, 서양문명들의 유통경로였다. 둘째,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産物)들이었다. 셋째, 계몽주의 패러다임의 선교로서, 19세기 식 산물들로서, 하나님의 선교 이전의 패턴이었다 등. 주로 이런 식으로 요약됐다.

 

이와 같은 관점들은 별로 특이하지 않다. 서양에서 아주 자주 말하다시피 했던 발성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신학자들 대부분이 서양신학의 유통업자들과 같은 역할들을 잘 실행해주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서양신학의 정보들을 적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점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매우 다른 관점들을 취했다: 이걸 다루었다고 여길 수 있는 책이 있는 데, 공헌배 저, <한국기독교사상사>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신학자들에게도 주었고, 일부의 민속학자들에게도 주었다. 그런데 좀 특이하게도 나의 개인적 느낌인지는 모르겠는데, 민속학자들의 반응이 더 마음에 들었다(달리 말하면 민속학자가 더 호의적 반응을 나에게 보였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이 책을 출판 한 뒤, 나는 모 대학교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러 디트리히 본훼퍼의 박사논문 <성도의 교제>를 두고, “신학의 기적이라고 하던 데, 내 생각에는 <한국기독교사상사>가 더 기적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저 책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했더니, 그 교수는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더라!

 

그 책의 핵심을 읽고 싶은 사람은 제11강을 읽으면 된다. 보강으로는 2강도 좋다. 그러나 이 책의 접근 방법(연구 도구)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 안에서 교회 밖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지 아니하고, 한국사(韓國史)의 관점으로 교회의 선교상황을 조명하였다. 그러나 교회 특유의 주제도 다루어진다.

 

둘째, 한국고대사와 일제강점기라는 한국 특유의 상황을 감안하였다. 즉 일반적으로 알려진, 한국종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개신교는 어떤 위치에 있으며, 세계열강들의 다툼 가운데, 한반도가 처한 그 시대의 상황이나 특성을 역사적 관점으로 조명했다.

 

셋째, 본 저서에서는 대지(大地)를 염두에 두었다. 즉 한국 역사의 시원(始原)으로 알려진, 만주, 요동, 요서와 한반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정치사적이며,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려 했다.

 

이 책을 읽기는 아주 어렵다. 그 이유는 그 책을 출판할 당시, 돈이 없어서 한정판으로 밖에 찍어내지 못했다(실은 <목사들을 위한 변호>도 시골목사의 퇴직금을 일부 털어, 출판한 것이었다. 한국연구재단이나 소망학술상과 같은 기구들에서는 내 책에 관심 없다).

 

그러나 이 강의들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고맙게도 케리그마신학연구원에서 PDF파일 형식으로 그 강의들을 올려두었다. 그러나 나의 편집후기를 따르면, 그 인터넷 강의들이나 이미 출판된 책에는 더러 오타자들이 발견되었다(죄송^^).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개신교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점에서는 몹시 추상적이다!

 

그 책에서는 그 주장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지만 반성역사관(反省歷史觀)이다. 이게 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강력한 흐름이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가 망했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그리고 남()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게 망했다.

 

남 유다의 사람들은 70 여년의 포로기를 경험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는 데, 어쩔 수 없이 국가재건운동과 종교재건운동이 불가피했다. 그럼 한국사에서의 일제강점기는 무엇인가? 고려시대의 몽골의 지배기는 어떤 것인가?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질문들이 나와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가사회가 망한 이유에 대해, 계약의 파기들로 받아들였다. 즉 야훼하나님과의 계약들, 모세가 준 언약들 등을 파기하였기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한 듯 했다. 다시 말해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으로 그들은 받아들였다. 물론 객관적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그보다도 외교를 잘못한 탓에 망한 것으로 여기겠지만 성경은 신앙으로 쓰인 책이다.

 

그럼 한반도의 조선은 왜 망했는데?

 

망하기는 망했는데, 그래서 무엇들을 깨달았는데?

 

나는 신학교 다닐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아주 단순한 생각이다.

 

우상이 무엇일까?”

 

우상은 가나안인들의 종교들로서 이방인들의 문화이기 때문에 따라서 우상들은 외세다. 고로 우상숭배를 반대한다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들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사를 아주 조금 공부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이 발생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민족주의라든가, 민족 서울대라든가, 민족을 위한 고려대라든가, 민족해방 모 지방 국립대라든가, 민족을 위한 모 지방 사립대등이 제법 유행하던 시절처럼 느껴졌다.

 

나한테는 이게 구약성경에 나오는 우상숭배 반대와 뭔가 연결고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고대사 관련 연구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무슨 역사연구 논문들이 그리도 답답하고, 재미도 없으며, 어려운지 모르겠다. 한 마디로 시원함이 없었다. 이럴 경우, 조심해야 하는 데, 사이비 역사학에 빠지거나 역사교 신자가 된다.

 

나는 사이비 역사학에 빠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가 게을러서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그래서 사이비든 강단사학이든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는 막연한 역사교 신자(환자)정도였다.

 

학자들의 책들이 별로 재미없어, 소위 일차자료라고 하는 고전(古典)들을 읽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들을 경험했다. 고전들에 의하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없더라! 고전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중국이 많이 나오더라!

 

이를테면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해왔는데, 이로 인하여 고조선이 밀려났다. ()나라의 장군 누구가 고조선으로 쳐들어 왔는데, 버티지 못하여 결국 망했다. 기자라는 중국인이 와서 나라를 세웠는데, 그게 고조선이다. 기자이후에는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와 변방에서 살다가 고조선 왕을 축출하고, 지가 왕이 됐는데, 그 왕의 후손이 한()나라하고 싸우다가 망했다 등. 뭐 주로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중국한테 뿔났다.

 

중국인들의 침공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고전들은 항상 중국한테 침공 받다가 망하거나 이기거나 이 두 가지밖에 없더라!

 

또 하나의 특성은 고전을 아무리 읽어도 일본이 고조선을 공격했다는 말이 없더라! 고전을 아무리 읽어도 일본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는 말도 없더라! 아무리 고전들을 읽어도, 미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에게 해를 끼친 기록은 흔적조차 없더라!

 

그럼 도대체 우리의 주적은 누구란 말인가? 이걸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성계의 패거리들이 세운 그 조선은 중국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더라! 나라이름이 조선이라 고조선과의 연관성이 뭐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왜 그 조선이 그토록 중국을 섬기다시피 했는가?

 

반면 일본과 말갈족은 왜 적으로 생각했는가?: 고전들을 따라 유추해보면, ()와 말갈(靺鞨)은 고대 한반도에도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역사의 기록물들과 조선 사람들의 행동들은 정반대처럼 여겨졌다.

 

이게 뭐지? 역사가들은 거짓말쟁이들인가 아니면 조선 사람들은 허위의 역사들을 진술했단 말인가? 아니, 조선 사람들은 허위의 역사적 고백들을 했단 말인가? 아니면 그 당시의 조선 사람들은 지식의 범위가 넓지 못하여, 역사의 자료들을 편협하게 읽은 탓일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조선은 망했다; 성경을 따르면, 이스라엘은 망한 이후에 중요한 깨달음들을 얻었다. 그럼 우린 무엇들을 깨달아야 하는 데?

 

내가 청년시절 때는 항일운동이나 항미운동하는 사람들이 마치 민족운동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 나야 무식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여겼다. 그러나 고전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과 미국과의 친밀감이 들었다. 일본이 우리의 적이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차라리 동포적 친밀감을 더 강하게 느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역사는 한반도 사람들의 집단무의식들을 충분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둘째, 역사는 한반도의 사태들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 것들이 아니라 주로 왕조중심으로 그들이 기록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했다.

 

그렇더라도 역사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국가정체성에 있어서 역사는 고백들을 가능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럼 고백해보자! 고전들은 중국이 끊임없이 우리의 조상들을 괴롭혀왔다는 것을 너무도 잘 말해준다.

 

그럼 주적이 누군지는 잘 나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민족운동한다는 사람들이 항미운동을 하는가? 민족주의자들은 친미운동을 해야 한다.

 

고려시대를 기준으로 해보자: 몽고와 송나라와의 대립관계가 성립됐다. 그럼 고려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겠는가?: 몽고를 편들어야 한다.

 

조선시대 때 일본이 명나라로 침공 할 테니, 길 좀 열어달라고 했다. 그럼 조선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겠는가?: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마음 놓고 명나라를 두들겨 패도록 조선은 친절하게 일본인들에게 길 안내를 잘 해주면 된다. 이게 조선 사람들에게도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임진년으로부터 정유년의 전쟁이 끝난 뒤, 후금이 일어났다. 드디어 후금과 명나라와의 대립각이 섰다. 그럼 조선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편이 좋겠는가?: 당연히 후금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

 

근대 아편전쟁 때, 청나라가 영국한테 아작났다. 그럼 조선은 영국을 더 염두에 두어야 했겠는가 아니면 청나라를 더 염두에 두어야 했겠는가?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동학(東學)농민운동을 한다면서 서학(西學)을 반대 한단다! ∼∼∼

 

물론 이는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결과는 일본의 승리였다. 그럼 견적 나왔다. 그래도 여전히 조선 사람들은 일본이 싫었던 모양이다.

 

서재필을 비롯한 개화파들이 일본의 힘을 빌려, 개혁을 해보려 했다. 이게 갑신정변이던가? 삼일천하로 끝났다. 즉 해보지도 못하고 끝장났다. 그냥 해프닝으로 여겨도 된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이 짧은 친일적 행각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복수했다. 관련 가담자들을 모조리 숙청했고(그 사건 이후 서재필은 미국으로 떠났다). 한 명은 일본으로 도망했는데, 아마도 10년 동안이나 기다렸다가 중국으로 유인하여, 그 가담자(주도자)를 사살했다.

 

사실 그 친일파들의 힘은 무기력했고, 도망하여 해외에까지 갔는데, 그조차도 용납하지 못하여, 그를 속인 다음 끌어내어 사살했다.

 

무엇이 그리도 불안했을까? 이는 복수의 차원이 아니다. 나는 이를 정신질환으로 여긴다. 그 사람 하나 죽인다고 정세가 달라지나? 더군다나 해외로까지 도망한 그 망명자 하나가 뭐 그리 신경 쓰이는가?

 

그를 사살한 사건에 대해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 것 같은가? 불덩어리에다 기름을 끼얹듯 할 만 한 사건 아닐까?

 

그런 혼란한 시대에 미국의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왔다. 당연히 복음은 미국으로부터 왔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미국의 예수 그리스도여야 만 했다. 만일 아프리카 사람들이 기독교를 전해주었어도 한국인들이 예수를 믿었을까? 내가 아는 한, 한국인들은 그 정도의 관용성이 없다. 백인들이 들고 온 복음이기 때문에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당시의 한국인들이 예수 그 자체만을 믿었을 리 없다. 차라리 예수보다는 백인들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폴 틸릭의 유신론 비판이나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를 읽을 능력들이 있다면, 사람들이 신 그 자체를 믿을 리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아차릴 듯하다.

 

그래서 나는 한국기독교인들의 행태들을 조직신학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문화인류학의 도구가 훨씬 더 도움 될 듯하다.

 

그 당시의 미국 선교사들은 칼을 들고 온 게 아니다. 예수 믿으라고 협박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예수 믿겠다는 후보자들조차도 가려서 받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치리하거나 출교시켰다.

 

이게 어떻게 제국주의의 선교인가? 웃기지도 않을 소리다.

 

사람들은 더러 미국인들이 어메리카의 원주민들을 박해했다는 도덕적 우월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박해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더러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지배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지배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더러 미국이 중국을 압박한다고 불평할지 모르겠는데, 이는 중국의 소수민족들이나 우리나라에게는 좋은 일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더러 기독교를 미국의 종교처럼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는데, 그럼 우리는 그 기독교를 위해 더욱 더 전도에 열심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논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더라: 중국에서 기독교인 하나가 늘어나면 중국인 하나가 더 줄어든다! 그럼 우리는 더욱 더 기독교의 확산에 힘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이 몇 개 있다: 첫째, 변발, 둘째, 호복을 입는 것, 셋째, 만주어를 배우는 것 등.

 

나는 서양 백인들의 기독교가 너무 좋다. 그리고 공자는 쓰레기통으로 보내버렸다!

 

아래는 공헌배의 페이스북 대글 코멘트들이다:

 

공헌배 대글 달아 주신 장로님들에게는 고맙습니다^^ 하오나 위의 몸 글을 읽는 적지 않은 분들은 꽤나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조차도 그럴 듯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 엎는 듯한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생각 했습니다. 아마도 구약성경은 어쩌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들입니다. 즉 대중들에게 인기가 좋거나 여론으로 지지 받을 일이 아니라 엄청나게 불편하거나 듣기 싫을 만한 진술들일 수도 있습니다.

 

한 예로 예레미야서를 읽으면, 시드기야 왕이 얼마나 예레미야의 말을 듣기 싫어했는지 느낄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한국의 어느 구약학자가 예레미야서의 탄식현상 연구라는 박사 논문을 독일에서 썼던 것 같은데, 그 논문집이 아마도 2권인가 어떤가 잘 모르겠습니다. 얼핏 느끼기에는 천 페이지가 넘는가 싶기도 한, 박사학위 논문일 듯합니다.

 

분량으로는 미칠 정도로 많은 두꺼운 논문집일 수도 있습니다. 그 히브리 문헌학자, 즉 예레미야서라면 권위 있을 만한 그 구약학자조차도 어쩌면 저의 주장들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요새는 그분에게 여쭙지도 않았고, 만난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심정을 알지 못하지만 그 정도로 저의 글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공헌배 신약성경을 읽으면, 사도행전에 스데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 설교의 내용은 소위 구약의 요약사와 같이 느껴지는데, 그 내용이 그 당시 유태인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주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스데반의 설교는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구약이 길게 나옵니다. 거기서 저는 독특한 단어를 찾았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단어와 갈대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는데,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출신이라든가, 갈대아와의 연관이 있는 것처럼 진술되어 있습니다(한글 성경에는 그렇습니다).

 

물론 시대상의 층위로 하면 매우 큰 차이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갈대아라는 고유명사는 유태인들에게는 상당히 거리낄만한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유태인들은 바빌로니아인을 갈대아인으로 부릅니다. 당연히 유태인들의 조상들은 70 여 년이나 신바빌로니아에게 잡혀가 포로기를 경험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털어 가고, 유태의 지도층을 모조리 잡아 가 버렸던 제국이 신바빌로니아입니다. 하필 스데반은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면서 그냥 메소포타미아도 아니고, 갈대아라는 단어까지 쓸 게 뭡니까?

 

소위 스데반의 설교는 너희들(유태인들)의 조상들이 순종하지 않았던 소위 불순종의 민족이었다는 식으로 들리게 끔 한 설교 아니겠습니까? 스데반의 진술을 들은 그 당시의 유태인들은 스데반의 설교가 듣기 싫어, 귀를 막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는 사울이라는 사람 앞에 옷을 두고(아마도 보증 선 걸 까요?) 돌로 스데반을 쳐 죽입니다. 만일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가 조선말에 나타났다면, 돌로 쳐 죽이지 않았지 싶습니다. 삼일천하로 끝났던 그 갑신정변조차도 과도할 정도로 처형 했는데, 어찌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을 듣겠습니까?

 

그나마 시드기야나 되니까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았지, 조선 사람 같았으면 예레미야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감온도들과는 달리, 무엇인가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만한 진술들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위의 제 글도 어떤 분들에게는 매우 불편할 만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나 성경이 어떤 점에서는 대단히 듣기 싫은, 불편한 진술일 수 있습니다.

 

공헌배 고려 시대 때, 고려는 대략 40년 정도 씩이나 몽고와 전쟁했습니다. 얼마나 몽고가 싫었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뭔가를 주장하면서, 경주의 천마도는 중앙아시아 식이라든가, 그 천마도의 제질이 중앙아시아 산 나무라는 식으로 누군가가 밝혔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고 경주의 천마총에서 발견 된 어떤 금허리띠(?)가 스키타이 계통인지 뭔지를 누군가가 주장했다고 한다면, 소중화주의에 빠져 있던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 것 같습니까? 물론 조선은 기록문화에 길들여 져, 고고학을 거의 몰랐습니다.

 

그랬기에 망정이지, 만일 경주의 유물들이 북방식이라든가, 신라라는 국가사회의 이전 단계인 사로국이 흉노나 몽고와의 연관이 섯낟이라도 있다고 누가 설교하면 조선인들이 그 선지자를 가만 두겠습니까?

 

그리고 백제의 유적지에서 나온 백제 왕(?)의 관이 금송(소나무)제질 인데, 그 소나무는 한반도에는 없고, 일본에서 자라는 소나무라고 한다면, 소중화주의에 빠졌던 조선 사람들이 그 선지자를 용서하겠습니까?

 

공헌배 조선 사회에서 아주 강력한 관습은 조상제사였습니다. 그 조상제사를 반대한다는 것은 조선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그걸 실행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리고 리승용(리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생활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즉 조선왕조에게 반기를 든, 일종의 반역자였습니다. 그분 말로는 양녕대군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실질적 사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쳐 보십시다. 조선의 왕손이 서양 종교로 개종하는 일 역시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부친은 공자의 후손인데, 조상제사를 버리고, 10 여 년의 회개생활과 결국은 목사로서의 길을 갔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서양 사람들은 대원군의 조상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했으며, 강화도에서의 전투를 생각할 때, 조선인이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정신적 개벽과도 닮은 듯합니다.

 

그 조선의 입장에서 기독교는 편할 만한 종교가 아닙니다. 중국을 섬기고,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며, 소중화주의를 수백 년 씩이나 했던 그 조선 사회에서의 기독교란 무엇일까요?

 

공헌배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강연을 따르면,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서는 가담자들을 처형했는데, 삼족을 멸한다나 뭐한다면서 한 여인을 관기(노예)로 팔아버리겠다고 하니, 그 여인이 치욕스러워, 독을 먹고 죽었는데, 그 여인에게는 아기가 있었던가 봅니다.

 

그 독을 마신 여인의 젖을 빨다가 그 아기도 죽습니다. 그게 서재필의 가족에게 있었던 일인 모양입니다. 물론 그 서재필은 미국으로 갔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닥터 서라고 주장하지만 서재필은 의대 출신이라 닥터이지, 박사라서 닥터인 것은 아닐 듯합니다. 서재필은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했지 싶습니다. 도올의 강연에 나옵니다.

 

공헌배 광산 김씨에, 의사의 아들이요, 기독교 집안 출신이며, 집안에 고려대 교수와 어쩌면 교육부 장관의 누님을 둔 수준 높은 가문이요, 하버드에서 철학을 한 그 학자께서는 기독교에 대해 그렇고, 그런 감상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곡부 공가로서 공자의 후손인 저는 유교이념을 반대합니다. 기독교로의 개종은 종교 간 대화의 차원이 아닙니다. 옛 세계로부터의 탈피요, 회개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회개의 과정들을 개인의 회심 차원에 머물지 않고, 역사의 차원으로까지 갔습니다.

 

선사시대와 고대사 그리고 고전들 연구에 신경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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