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정치 제28조 6항에 대한 소고

법리적 모순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2/14 [22:41]

헌법 정치 제28조 6항에 대한 소고

법리적 모순

공헌배 | 입력 : 2019/02/14 [22:41]

 

앞 뒤가 맞지 않거나 불공정한 조항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흔히 모순으로 여긴다.

 

M교회를 겨냥한 목사청빙 제한규정은 그 법의 조문을 떠나, 그 입법취지에 모순 내지 불공정성이 있다. 이를 논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법의 내용을 보자:

 

교단 헌법 제2편 제286-1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해당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 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해 교회의 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

 

쉽게 설명하면 목사 패밀리가 같은 교회에서 시무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런 것을 일컬어 불공정 헌법이라 한다. 즉 목사패밀리나 장로의 패밀리는 그 교회에 목사로 가면 안 된다는 주장인데, 납득되지 않는다.

 

이게 보다 더 공정하게 되려면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 안수집사, 권사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즉 목사의 아들이 해()교회에서 목사를 할 수 없다면, 장로의 아들도 그 교회에서 장로를 하지 말아야 하며, 집사의 아들도 그 교회에서 집사를 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권사의 딸도 그 교회에서 권사를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교단의 헌법을 따르면: 교회의 직원들로 목사만 명기한 게 아니라 장로, 집사, 권사 모두 교회의 직원들로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라도 기득권을 인정하기 싫다면, 장로 아들이 그 교회에서 장로의 직을 대물림 하면 안 된다. 권사의 딸이 그 교회에서 권사를 해도 안 된다. 집사의 아들이 그 교회에서 집사를 해도 안 된다.

 

왜냐하면 교회 사역지의 대물림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그 입법취지가 공정할 텐데, 왜 하필 목사만 안 된다고 하는가? 그렇다면 목사만 교회의 직원이고, 장로나 집사나 권사는 교회의 직원들이 아니란 말인가? 장로는 당회나 제직회에 참석하지 않는가?

 

목사가 그 교회에서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목사만은 안 된단 말인가? 그럼 장로나 집사나 권사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없단 말인가? 장로나 집사는 제직회에 참석하지 않는가?

 

굳이 대물림이 싫어, 소위 세습방지법을 만들고 싶었다면 다음과 같았어야 했다: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모두 그 자녀들은 해 교회에서 부모의 직분을 갖지 못한다.

 

이렇게 해야 공정한 법 개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헌법은 이상하게도 목사에게만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 아니겠는가?무슨 법이 이토록 불공정한가?

 

다시 성문화 된 그 법을 보자, 그 법은 완료 형(이미 은퇴한)이 아니라 진행형(은퇴하는 또는 은퇴를 앞 둔 목사)으로 되어 있다는 종교법학회의 토론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던데, 조문이 어떻게 됐던, 관계없이 그 입법취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럼 그 입법취지는 무엇인가? 이는 당신들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은가?: 김하나 목사님은 명성교회의 위임목사가 될 수 없다. 이거 아니겠는가? 즉 명성교회 하나 때문에 교단의 헌법마저도 수정해야 할 정도로 대형교회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깔린, 소위 게릴라 식의 긴박한 헌법개정이 아니었는가? 이 입법 취지를 존중하라고 했던가! 이런 식의 법 개정 작업은 공정하지 못하다.

 

통합교단 신학교육 기관에서의 커리큘럼들을 감안할 때 오랫동안 가르쳤을 법한 칼뱅주의 교회정치에 대한 교육 내용들에 비해 그 교단은 지나칠 정도로 많은 법 개정작업들을 해 온 듯하다. 특히 통합 측의 법 개정 작업들은 잦은 편이다.

 

통합 측 총회의 헌의안들이나 법 개정 안들에는 납득하기 힘든 오류들이 있어 보이는데 이는 여론을 조성하여, 다수결로 통과시키면 정당하다고 여기는 데 있는 듯하다.그러나 이와 같은 행태들은 전통의 격률들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칼자루를 쥐어 준 상태에서 표몰이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정당성이 부여된다.

 

이와 같은 행태들은 전통 개혁교회의 교회론들에 견줄 때 많이 부실하다.

 

통합교단에서는 유달리 권징조례의 부분들을 많이 고친 듯하고, 이는 사회법(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과 닮은 듯 느껴진다. 다시 말해 사회법 공부한 분들에 의해 교단의 헌법들이 난도질 된 듯한 인상이다. 쉽게 말해 역사자료 연구의 부재이며, 신학의 부재로 여겨진다.

 

예를들어보자, 교단의 치리가 재판인가?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칼뱅시대의 컨시스토리의 판례록이나 초기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치리 사례들을 찾아보았는가? 과연 초기 한국장로파 교회의 목사님들이 법리 훈련들을 잘 받았거나 법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셔서 과거에 그토록 많은 치리들을 실행했을 것 같은가?

 

한 전문가의 이론을 따르면, 칼뱅시대의 컨시스토리의 판례록은 16세기의 프랑스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서기가 필기체로 써 둔 비교적 깨끗하게 읽힐만한 신뢰성 있는 자료이다.

 

그럼 답 나왔다. 이걸 읽고 싶으면 16세기의 프랑스어를 필기체로 읽으면 된다. 그러나 이게 좀 어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20세기의 프랑스어로 된(번역 된?) 자료도 있다.

 

그런데 과거에 독일어로 옮긴 컨시스토리의 판례록은 그다지 보존상태나 번역의 내용이 신뢰할만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상당히 후대에 로버트 M. 킹던 교수 팀에서 컨시스토리의 판례록을 번역하기로 했다.그런데 이게 좀 놀랍다.

 

킹던은 신학자가 아니다. 서양 역사학자였다. 이 작업이 실행되어 영어로 옮겨 진 판례록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2,000년도였다. 즉 칼뱅시대로부터 거의 5백년 쯤 지나서야 번역됐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교회에서 치리를 한다구?

 

이걸 믿으란 말인가! 우리는 좀 더 겸손해 질 필요가 있으며, 주제파악 좀 해야 한다. 서로 잘 모르는 가운데, 씨름하면서 교회에서 고생했으면, 서로 격려하고 도와야지, 남을 깍아 내리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칼뱅시대의 목양방식은 공동목양의 방식이었다. 쉽게 말해 크리스텐돔으로 여기면 된다. 그래서 그 당시의 구빈원의 재정구조나 복지의 구조 그리고 헌금의 수납 및 사용의 방식 등을 연구할 필요가 있을 텐데, 대한민국의 신학자들 중에, 이런 거 연구할 수 있는 학자들은 희귀해 보인다.

 

소위 한국의 저명하신 학자들 중에, 그분들의 자료들을 탐독할 때, 과연 여러분들은 자료적 예리함을 읽어낼 수 있겠는가? 한국의 신학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다시피 한 책은 기독교 강요였고, 좀 더 해본 사람은 칼뱅의 설교나 주석자료 정도였다. 주로 이정도였다. 칼뱅의 사적 편지나 컨시스토리의 판례록 자료나 목사회의 회의록을 그 연구의 자료로 쓴 학자들이 한국에는 많지 않다.

 

사태가 이런데도 과연 한국이 칼뱅주의에 충실했을 것으로 생각하시는가?

 

20세기 중반 경에, 칼뱅시대의 목사회의 회의록을 영어로 옮긴 책이 있었다.

 

이 책 역시 통합 측 신학교육기관들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았으며, 당연히 한국어로 번역 된 바도 없다.

 

그렇다면 곽안련 선교사께서 옮기신 <교회정치문답조례>는 구하기 쉬운가? 전혀 아니다!

 

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서는 1967년 이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용하기로 했(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52회 보고서>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1967), 82).

 

한국에서는 주로 세 가지의 웨스트민스터 문서를 채택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문서는 3 가지가 아니라 5개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와 예배지침서는 헌법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신학계조차도 이와 같은 실정인데, 무슨 수로 총회가 칼뱅주의 교회정치를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결국 그분들에게 남은 과제들이 다수결에 의한, 여론선동에 의한 정당성 말고 무엇을 기대하면 좋겠는가!

 

즉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역사가 짧은 편이며, 전통들을 정확하게 배우지 못한 가운데 건너뛰듯이 와 버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헌법 정치 제286항과 같은 규정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의 원리에는 없다.

 

즉 이 입법은 어느 특정교회에 대해 정서적 반감을 가진 표적입법인 셈이다.

 

한국장로파 교회의 모법(母法)1922년 판, 1934년 판, 1954년 판 어디를 찾아도 이와 같은 규정은 없다.

 

192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의 제1장 원리는 총 8가지인데: 양심의 자유, 교회의 자유권, 교회의 직원과 그 직임, 진리와 행위와의 관계, 직원의 자격, 직원의 선거권, 치리권, 권징 등이다(신학박사 전재홍, “한국 장로교회에서의 헌법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초기 한국장로교회의 성립과정 및 신학> (서울: 한들출판사, 2010), 105).

 

보시다시피 여기에는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권이 있다. 그래서 초기 한국장로파 교회의 헌법원리에 견주어도 통합 교단 정치 286항은 위헌이다.왜냐하면 교회의 자유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통합 교단이 헌법개정을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상위(上位)원리인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교리)과 초기 한국장로파 교회가 채택한 기본원리에 따라 개정해야 한다.

 

무작정 여론몰이로 결의했다고 하여, 정당성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만일 그런 식으로 여론몰이에 의해써만 헌법 개정을 하고 싶다면,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

 

헌법개정에도 상/하위의 원리가 있다. 제일 먼저는 교리(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교리문답) 그 다음이 정치다. 즉 정치와 권징은 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실행방침으로 여겨야 한다.

 

당연히 정치와 권징에도 시행세칙이 따른다. 그래서 쉽게 말하면: 시행세칙은 헌법 정치보다 아래에 있다. 즉 헌법의 정치를 실행하기 위한 방편이 시행세칙이어야 하므로 헌법의 정치도 교리의 원리에 앞서지 못한다. 다시 말해 교회정치는 교리보다 아래에 있어야 한다.

 

즉 정치는 교리의 정신을 행정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물론 헌법에 이를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순서가 그리된다. 웨스트민스터 표준서를 따라도 교회정치지침서는 신앙고백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그리고 헌법에도 원리가 있는데, 시행세칙이나 교회정치의 각 장은 원리보다 하위(下位). 그래서 원리에 어긋나는 정치조항은 재개정하거나 삭제함이 마땅하다.

 

나는 헌법 정치 제286항의 삭제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286항은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