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특정인의 의지와 교인의 일반 의지

명성교회는 특정인의 의지와 교인들의 일반의지가 연합하여 실현되어 나가는 교회

황규학 | 기사입력 2019/02/10 [22:11]

명성교회, 특정인의 의지와 교인의 일반 의지

명성교회는 특정인의 의지와 교인들의 일반의지가 연합하여 실현되어 나가는 교회

황규학 | 입력 : 2019/02/10 [22:11]

일반의지와 사회계약론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강조한 사회계약론자 루소는 국민의 일반의지를 중시하였다. 국민의 일반의지는 보편의지 또는 총의(總意)라고도 하며 사회계약설의 기본 개념이기도 하다. 루소는 개인의 자유로운 계약으로 성립하는 국가가 가지는 단일한 의지를 일반의지라 불렀다. 국민들의 단일한 의지가 곧 국가이다.

 

루소는 모든 인간은 천부의 권리를 가지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이러한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 확실하지 않으므로 상호계약을 맺어 국가를 구성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국가에 위임하는 사회 계약설을 주창하였다. 

 

사회계약론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평등의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를 보다 잘 보장하기 위하여 서로 계약을 맺어 '법이 지배하는' 정치 사회(국가)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설치된 정치 기관을 행사하여 어떻게 개인의 자유와 생명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가를 제시한 사상이다. 국가란 국민들의 일반의지의 총합이다. 국민의 일반의지는 절대적이며 그르친다는 예외도 없고, 타인에게 양도나 분할도 불가하다. 따라서 주권 또한 절대적이다.

 

그래서 오늘날 국가라는 것은 국민개개인들이 상호 계약을 맺어 서로의 안전을 도모하고 개개인들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한 일반의지의 표현이다.

 

교인들의 일반의지와 신앙계약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유형의 교회는 교인들과 교단이 상호계약을 맺어 교단은 교인들의 신앙과 교리를 보전하고 교인들의 자유스러운 권리와 의지가 교단헌법안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단의 헌법안에서 벗어날 때 이는 계약을 위배한 만큼 교인들에 대한 권징을 행하고 있다. 이와같이 국민이 국가와 계약을 맺은 만큼 교인들도 교단과 신앙적 계약을 맺은 것이다.    

 

교회는 신도 개개인들이 신앙계약을 맺어 천국갈 때까지 영적인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교인들의 의지의 표현이다. 교회는 종교국가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교회는 교인들의 일반의지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운영되는 작은 하나님나라 영적 국가 이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보다 특정인의 의도가 강하게 나타날 때가 있다. 중세교회가 그랬다. 

 

명성교인들의 일반의지

 

중세에서는 교황의 의지가 일반의지 이고, 전근대국가에서는 왕의 의지가 일반의지 였다. 신의 의지는 없었다. 특정인들의 의지가 일반의지이다 보니 특정인이 요구하는대로 후임자의 승계가 가능했다. 교인들의 일반의지는 특정인의 의지에 일치되거나 종속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영락교회, 충현교회, 소망교회, 광성교회, 광림교회, 금란교회, 임마누엘교회, 사랑의 교회는 특정인의 의지가 곧 교인들의 일반의지 였다.  

 

그러는 의미에서 명성교회는 하나님의 의지와 김목사 의지와 교인들의 의지가 결합된 형태이다. 명성교회는 특정인의 의지가 강력하게 나타나지만 특정인의 의지가 교인들의 의지를 앞설 수는 없다. 교인들의 일반 의지는 특정인의 의지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맹목적이거나 종속적이지는 않다. 전근대시대의 리더십은 특정인의 리더십이 국가의 리더십이고 단체의 리더십이다. 한국의 이단정죄도 중세나 전근대사회에서나 가능했던 행위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여전히 전근대주의 시대의 유산물을 갖고있다. 

 

명성교인들의 의지는 일반의지 이고, 이러한 일반의지는 특정인의 의지에 종속당하지 않는다. 특정인의 의지가 교인의 일반의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정인의 의지가 강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인의 일반의지와 일치할 수는 없다. 그만큼  교인의 권리와 자유가 특정인의 권리와 자유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김삼환목사의 권리가 곧 교인의 권리와 자유를 압도할 수는 없다. 교인의 일반의지가 이미 특정인의 의지를  앞서기 때문이다. 

 

결국, 명성교회는 김삼환목사의 개인의 의지로 후임자를 결정할 수 있는 상항이 아니다. 아들이든, 비아들이든 교인들은 특정인의 의지를 중시하지만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특정인의 의지라기 보다는 교인들의 일반의지가 후임자를 선택했다. 물론 특정인의 의지가 주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특정인의 교회안에서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때 교인들의 일반의지는 그의 의지에 따르기 마련이다.  

 

이는 비단 명성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영락교회에서 한경직목사의 의지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충현교회에서 김창인목사의 의지를 막을 사람도 없었고, 소망교회에서 곽선희 목사의 의지를 막을 신도도 없었고, 사랑의 교회에서 옥한음 목사의 의지를 거부할 사람도 없었고, 광성교회에서 김창인목사의 의지를 막을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고, 순복음교회에서 조용기목사의 의지를 막을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왕성교회에서 길자연목사의 의지를 막을 사람은 없듯이 명성교회에서도 김삼환목사의 의지를 막을 사람은 별로 없다. 교인들의 일반의지는 특정인의 의지에 부합하지만 종속되지는 않는다.  

 

교인들은 명성교회와 신앙계약 맺어

 

교인들은 명성교회와 신앙계약을 맺었다. 교인들은 명성교회를 하나님의 국가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하나님국가 시민으로서 자신들의 권리와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고 보호받기 위하여 상호간 신앙적인 계약을 맺고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것이다. 종교리더자의 의지에 일치시키는 것은 교인들의 자유이다. 그것이 전근대적인 현상이든, 근대 민주적인 현상이든 각기 교회마다 문화가 다르다.

 

영락의 문화가 다르고 새문안의 문화가 다르고, 순복음의 문화가 다르고, 감리교의 문화가 다르고, 소망의 문화가 다르듯이 명성의 문화도 다르다. 교회마다 교인들마다 교인들의 일반의지가 다르다.  특정인에게 맞추는 일반의지가 있는 반면, 특정인과 달리하는 일반의지가 있다. 교황의 리더십이 있는 교회가 있고, 민주적인 리더십이 있는 교회가 있고, 평신도의 리더십이 있는 교회가 있고, 공동체의 리더십이 있는 교회가 있다. 모두 교인들의 일반의지가 다르다.

 

명성교회의 교인들의 일반의지는 특정인에게 일치시키는 의지

 

명성교회의 교인들의 일반의지는 특정인에게 일치시키는 의지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보편의지이다. 그들은 특정인의 의지보다는 단체의 의지를 무기명 비밀투표로 표현했다. 이것이 명성교회 교인들의 일반의지라고 볼 수 있다. 영락, 순복음, 충현, 광성, 소망, 광림, 금란교회 등이 걸어왔던 마지막 교회의 리더십은 전임자의 의지를 중시했다. 교인들이란 일반의지는 특정인의 의지에 일치시켰다. 명성교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한경직, 김창인, 곽선희, 옥한음, 조용기, 김국도, 김홍도 등이 걸어왔던 길을 명성교회가 마지막으로 가는 것이다.  특정인의 의지에 교인들의 의지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성교회 교인들이 특정인의 의지에 일치시킨 교인들의 일반 의지가 과연 영락, 소망, 충현, 사랑의 교회, 금란, 광림, 왕성, 순복음, 광성 교회 등을 보면서 잘 선택한 것인지, 잘못 선택한 것인지, 되새겨볼 필요성이 있다. 역사와 사회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사회는 특정인의 의지보다는 시민의 일반의지를 원했다.  그리고 특정인의 의지에 일치시키는 것보다 사회와 교단의 의지에 일치시키기를 원했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의 일반의지를 원했다. 명성교회 교인들은 사회와 교단의 의지보다는 교인 자신들의 의지를 더욱 선호했다. 사회와 교단의 의지에 일치시키는 것은 외형적으로 개혁으로 비춰질 수있지만 명성교회는 내면적으로는 교회분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명성의 일반의지대로 선택했다. 그들이 특정인의 의지를 중시하든, 하지않든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특정인의 의지는 드러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성교회에서 특정인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거나 무리하게 자신의 의지가 교인의 의지가 되도록 인위적으로 한 적이 없었다.   

 

김심의 의지일지라도 하나님의 의지는 실현되어 나갈 것

 

분명한 것은 명성교회 교인들이 특정인의 의지에 자신들의 의지를 일치시키는 것도 성숙하든, 미성숙하든, 상관없이 교인들의 일반의지일 것이고, 특정인의 의지와 독립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교인들의 일반의지일 것이다. 그들이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 선택의 시시비비는 역사와 시간이 지나면서 말해줄 것이다. 역사는 그의 이야기(history)이기 때문이다. 명성교회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김삼환 목사의 의지라기 보다는 교인들의 일반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김삼환목사의 의지가 곧 명성교회의 일반 의지는 아니다. 명성교회는 그의 특정 의지를 존중하지만 일반의지를 특정의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명성교인들의 일반 의지가 성숙하고 독립성을 띌 때까지 명성교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기도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공헌을 많이 한 김삼환 목사의 의지와 별도로 명성교인들의 일반의지가 특정인의 의지와 일치된다 하더라도  이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를 통한 일반의지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실현될 것이다. 신의 의지는 특정인의 의지, 교인들의 의지, 고난, 파국을 통하든 실현되어 나갈 것이다. 


명성교회는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달려가는 교회이다. 김삼환 목사가 명성교회를 떠나도 명성교회는 계속 한국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교회가 될 것이다. 명성교회가 앞으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특정인의 의지 보다는 교인들의 일반의지가 중요하다. 교인들의 일반의지는 곧 교단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교회처럼 명성교회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 명성교회는 특정인의 의지가 중심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의지는 특정인의 의지에 일치시키는 교인들의 일반의지를 통하여 조금씩 실현될 것이다. 하나님의 의지는 때에 따라 특정인의 의지를 통하여, 때에 따라서는 일반의지를 통하여 세상에 실현되어 나가는 것이다. 명성교회는 특정인의 의지와 교인들의 일반의지가 연합하여 실현되어 나가는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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