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시대의 기도는 위선이나 키치가 아니다

존 녹스의 기도문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2/08 [09:50]

종교개혁시대의 기도는 위선이나 키치가 아니다

존 녹스의 기도문

공헌배 | 입력 : 2019/02/08 [09:50]

 

아래의 기도문은 16세기의 영어로 된 것으로서 번역상의 어려움들이 많았습니다^^ 이 기도문을 책으로 출판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여기에 올립니다. 이 귀한 기도문을 올린 이유는 제가 마르틴 루터를 공부할 때, 모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교훈 때문이기도 합니다:

 

귀중한 것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즉 고귀한 성경일수록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뜻과도 통합니다. 즉 성경이 너무 귀했기 때문에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백성에게로 읽히게 했던 루터의 그 고귀한 뜻을 본 받아, 아직 책으로 출판하지 않았음에도 신실하게 살기 원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 자료를 옮겼습니다. 이 자료를 무단으로 배포하거나 출판할 때에는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제목: 존 녹스의 기도문(1556)

 

출처: Selected by Bard Thompson, Liturgies of the Western Church (New York: The William Collins and World Publishing Company, 1962), 295-305.

 

옮긴이들(번역한 이들): 황재범/공헌배

소속: 계명대학교 정교수, 한국기독교학술원 연구교수

 

유명하고도 신실한 지성인 요한 칼빈이 제네바에 있는 영국인들의 모임에서 승인한 기도의 형식과 성례들의 직무(제네바 1556)

 

예언, 성경의 해석

 

매주 한번 씩, 질서에 따라 성경의 몇 부분이 조화롭게 설교되는 것을 듣기 위하여 회중을 소집하여야 한다. 그 회집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감동이 되어 하나님께로 마음이 향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목사가 선정한 성경의 본문은 경멸하지 않아야 한다.

 

선정된 (성경의)본문은 논쟁꺼리가 되기보다는 유익을 주는 것이어야 하므로 경멸받을 만한 본문을 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논쟁이 일어난다면 정해진 중재자(사회자 혹은 인도자)가 이해당사자들을 만족시키거나 화해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침묵을 지키도록 권고하되, 그에 대한 판단을 목사와 장로들에게 이관하여 컨시스토리나 목사회의 판정을 받아야 한다.

 

기도들

 

정해진 시간에 회중의 모임이 있었다. 목사들은 두 개의 신앙고백(죄의 고백과 신앙고백) 중 하나를 쓴다: (목사들은) 근면한 사람들에게 권고하고, 그들을 시험하며, 그들이 말씀의 방침(방향)을 따르도록 인도한다.

 

우리의 죄들의 고백, 구조

 

, 전능하시고 경외(敬畏)로우신(두려우신) 주 하나님,

계약을 지키시며,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당신이시여!

당신의 계명들을 지키시옵소서:

 

우리는 죄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진노의 자식입니다.

우리는 사악함과 완고함(완악함)에서 당신의 율법과 교훈으로 돌이킵니다.

우리는 나약하여

당신의 종이요, 당신의 이름으로 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따르지 못하였나이다.

 

우리의 왕들과 신하들,

우리의 부모들과 우리의 땅에 거주하는

그 모든 사람들이 그리하였나이다.

 

, 정의(공의)로우신 주님, 우리는 당신의 것이니이다.

우리의 완악함을 제거하셨지만 우리는 (여전히)수치 가운데 있나이다.

이날, 우리의 수치와 완악을 물리치시고,

우리의 가련한 조국 잉글랜드(영국),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조국의 모든 백성이나

가까운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나

뿔뿔이 흩어진 이들 가운데 있는 죄(불법)들을 용서()하시며

우리가 주님께 반항한 죄를 용서()하소서:

 

당신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와 형벌을 우리가 받게 하시어

주님께서 우리와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에게 경고하셨던 그 말씀을

우리에게 행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쌓아올린 죄들에 대하여

뉘우치지 아니하여 자신들의 죄로 나아가나이다.

이전에 복음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지금은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여

가증스런 우상숭배에 빠졌나이다.

 

오호라, 지금 저희들은 과거의 사악함에 대하여

오늘까지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고 있나이다.

또한 저희들은 주님을 불쾌하게 해드린 것의 중함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나이다.

 

오 주님,

주님께서는 죄 하나하나와 사람을

주님의 의도에 따라 벌하심으로써

죄의 끝이 없어질 것입니다.

 

당신의 할량 없으신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 주님,

우리를 회개시켜주시면

우리가 회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주님의 할량 없는 은혜로 기도를 드리기 때문이니이다.

 

비록 우리는 눈이 멀고, 실수를 저지르는 가운데 있사오나

당신의 각별한 자비를 우리에게 신속히 행하소서.

너무 많이 지체하지 마소서.

 

우리는 부끄럽게도 주님의 사역자(예언자)들의 권고보다는

우리 자신의 탐욕과 감정을 따르는 가운데

복음이 주는 자유의 달콤함을 남용하였나이다:

 

하오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비옵나니,

주님께서 주시는 자비를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베푸소서:

 

주님의 귀를 기울이시며

주님의 눈을 여시어

 

우리나라의 중한 전염병과

병중에 있으며, 추방되어 신음하는 우리 형제들의 계속되는 슬픔들을 살피시옵소서.

 

우리가 정당하게 받고 있는 이 형벌과 고난이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흩어진 백성이 있는 그 나라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주님의 거룩한 복음을 따르게 하시어:

 

더 나쁜 전염병이 그들 위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심으로써 오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오 주님, 우리를 용서하시옵소서.

 

오 주님, 우리를 생각하시어 지체하지 마소서.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리 하심으로써

 

오직 주님께서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이시므로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이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전()세계에 알리소서.

 

또 하나의 신앙고백

상용(常用)기도문

 

, 영원하신 하나님,

가장 자비로우신 아버지여!

우리는 당신의 거룩하신 존전에 있나이다.

우리는 비참한 죄 가운데 있으며,

우리는 죄에서 잉태되어 태어났으므로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고 시인하나이다.

우리는 육을 따라 하나님의 영에 항상 반항함으로써

주님의 거룩한 율법을 지속적으로 범함으로

우리는 주님의 심판과 죽음과 저주를 받아 마땅하니이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우리가 주님께 대하여 죄를 지음으로

그 죄 때문에 우리 자신과 불화하고 있는 것만큼

이에 대하여 우리가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께 비옵나이다.

 

주님의 자비를 우리에게 베푸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당신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증가하게 하소서:

그리하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마음의 밑바닥으로부터

진심으로 우리의 불의를 인정하여

 

이제부터는 우리의 죄로 가득 찬 탐욕과 감정을

죽이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가장 복된 뜻에 따라 생기는 열매들을

그들의 가치로 인하여서가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주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하여

그 열매들을 맺게 하소서:

 

우리가 당신에게 속함으로써

우리의 속죄가 확정되었으며

당신에 의해 우리의 부정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따름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나이다.

우리의 양심은 당신의 영에 의해 보증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여,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의 아들이신 그 분을 통하여

당신의 하늘의 은혜와 자비를 우리에게 베푸소서:

세상 끝날까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에

모든 존귀와 영광을 돌리나이다.

이제와 영원히.

 

모두 함께 시편찬송을 부르고, 기도송으로 마친다.

목사는 회중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설교로 나아간다.

이와 같은 기도의 형식은 설교 이후에도 쓸 수 있다.

 

교회의 모든 기관들을 위한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가장 자비로우신 아버지,

심히 비천한 우리는 자신을 낮추어 주님의 존전에 엎드려 진심으로 간구하옵나이다.

 

지금 주님께서 뿌리신 이 말씀의 씨앗이 깊게 뿌리를 내려

핍박의 뜨거운 열(혹독한 박해)에도 당신의 말씀의 씨앗이 마르지 않게 하시며,

 

또한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염려가 그것을 질식시키지 않을 정도로

깊게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다만 그 씨앗이 옥토에 뿌려진 씨처럼 열매를 맺게 하시어

주님의 영원한 지혜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이 있게 하소서.

 

왜냐하면 우리가 당신의 손길로부터 오는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갈망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히 비옵기는

(,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허락해 주시고,

우리의 간구가 주님의 가장 복된 뜻에 합당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는 연약하여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아시고:

또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고 큰 시험과

(우리가)어떤 시험을 당하는지 아시는 것처럼

우리는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님의 능력으로

연약한 우리를 지탱시켜 주시어

우리가 은혜의 주님의 능력으로 보호 받아

(우는 사자와 같이)지속적으로 우리를 노리고 있는 사탄의 모든 기습으로부터 우리를 보존 시키시옵소서:

 

오 자비로우신 아버지,

언제라도 우리가 주눅 들지 않게 하시어

주님의 거룩한 말씀을 가지고 맹세(?: 해석불능)하지 않게 하시며,

당신의 모든 계명을 주의 깊게 지킴으로써

우리 안에서 희망과 사랑이 싹트게 하소서:

 

굳은 마음과 위선과 눈들의 호색과

이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지키시어

우리를 주님께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지금 가장 위험한 때에 살고 있사오니

주님의 부성애(父性愛)로 충만한 섭리로써

우리를 사방에서 공격할 기회를 찾고 있는

우리의 모든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 하소서: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인 로마 가톨릭의 우상의 사악한 분노로부터 우리를 지키시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사도들에 의하여

우리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아직 드러나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것,

무지몽매한 것이 오히려 주님의 영원한 진리에 대하여

아는 것으로 바뀌게 하소서:

 

우리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우리의 유일하신 하나님과 유일하신 구세주인 당신을 예배하게 하소서.

당신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말씀을 맡겨주시어

 

주님의 선택된 백성을 지도하게 해 주신 모든 목사들과 사역자들이

그들의 삶과 교리에 있어서 신실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그들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옵소서:

그들이 방황하고 흩어져 있지만

모든 양들을 주님의 목장으로 모으시옵소서.

 

왜냐하면 주님의 섭리에 따라 주님께서 권력을 주신 지도자들의 마음이

주님의 손 안에 있게 하시므로

우리가 주님께 간절하게 비옵기는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왕들과 신하들과 관리들을

인도해 주시고 다스려 주시옵소서:

 

우리는 또한 주님께 기도합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우리 도시의 명예로운 기관들,

곧 행정부, 사법부, 우리 정부의 모든 거룩한 단체들을 지키시옵소서.

주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시어

그들은 그들의 직무를 실행하게 하시며

그들의 종교가 순수하게 보존되고, 개혁되며

 

또한 당신의 거룩한 말씀을 따라 처벌이 되도록(다스려 지도록)

그들이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신비한 몸에 지체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전쟁과 전염병과 기근과 병과 가난과

투옥과 박해와 추방이나 주님의 채찍을 맞은 것과 같은

모든 종류의 십자가와 고난을 받는 사람을 위하여 간구하나이다:

전쟁과 전염병과 기근과 병과 가난과 투옥과

박해와 추방이나 주님의 채찍을 맞은 것과 같은

모든 종류의 십자가와 고난을 받는 이것들이

육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이와 같은 십자가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옵나니,

 

저들에게 주님의 완전한 구원을 받기 전까지 끝까지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과 친족과 친구들과

우리나라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주님께 겸손하게 비옵기는

가련한 우리의 조국 잉글랜드(영국)를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우리나라가 한 때는 주님의 자비로운 자유를 허락받았지만

지금은 저들과 우리의 죄로 인하여 가장 악독한 국교회의 속박과

바빌론 포로의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니이다.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주님의 양떼를 먹어치우는

모든 으르렁거리는 늑대들을 뿌리 뽑아 주시옵소서.

 

지금 박해를 받고 있으며, 투옥되어 있고, 매일 죽음에 처해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 주님의 진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주님의 위대한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그리고 저들이 사람들의 도움은 전혀 받을 수 없지만

주님의 달콤한 위로가 결코 저들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시며:

그들의 마음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당신의 지혜가 허락하는 대로 용감하게 그리고 즐겁게

그와 같은 시련을 이기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마침내 저들이 죽을 때와 같이 살아있어서도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시며

그 빛이 전 세계에 퍼지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간구를 당신께 드리오니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드리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옵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옵고,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

 

전능하시고 언제나 살아계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께 비옵나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살아계심을 지속하므로 자라며

우리가 나날이 성숙함으로 우리가 온전하게 성장할 때까지

우리가 주님의 살아있는 신앙에 거하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로써 우리는 신앙을 고백하오니,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시편송을 하나 부르고, 목사는 축복기도 중 하나를 함으로써 마치며, 회중은 귀가 한다.

 

(축도)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하심이 당신에게

그리고 주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의 얼굴을 여러분에게 비추시고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의 얼굴을 여러분에게 돌려주시고

그의 평화를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성령의 감화하심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길:

 

이제와 영원히.

 

목사가 일상적으로 사역함에 있어 앞에서 언급된 모두를 반복할 필요는 없고 신앙고백 한두 개로 시작하여 설교로 나아가되, 이 설교는 기도문을 사용하거나 기도문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하는 대로 직접 기도함으로써 설교를 마친다:

이와 같은 틀, 시간과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성령이 감화하는 대로 직접 기도함으로 마친다. 만약에 어떤 때나 하나님의 분노에 분명한 징조로 보이는 현존하는 환란, 기근, 질병, 전쟁 혹은 그와 같은 일이 있다면:

 

(이 진노의 원인은 우리의 죄 때문임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므로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에 정해진 대로 슬퍼하고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없애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속하여야 한다. 목사는 저와 같은 때에는 회중을 권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정해져 있는 몇 가지의 기도의 형식을 사용해야만 한다. 기도시간에 대해서는 몇 일(몇 주간)에 걸쳐 설교 후에 수행할 수 있다.

 

성만찬 성례전(주의 만찬의 방식)

 

매월 한 번씩 주님의 성찬이 시행되는 날 혹은 회중이 성찬을 시행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날에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시작한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 바울이 고전 11장에 말씀하신 대로 성찬을 제정하신 것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성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내가 너희에게 전하노니,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취하시어 감사를 드리시고는 말씀하시기를 받아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나누어 주는 나의 몸이다: 너희가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 빵을 찢으셨습니다. 또한 잔을 취하시고는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나의 몸 안에 있는 새로운 유언이거나 새 언약이니;

 

너희가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선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받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매번 모든 이들이 그 자신을 살펴보고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부당하게 이 빵과 이 잔을 먹고 마시는 자는 그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 이것은 주님의 몸을 고려하지 않고 주님의 피를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제정사를 한 후, 목사는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주님 안에서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거룩한 성찬식을 하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먼저 성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들으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시기 전에, 그 자신들을 부지런히 시험해 보는(반성하는)것을 살펴보십시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회개하는 마음과 살아있는 믿음으로 이 거룩한 성찬을 받는다면 그 혜택은 엄청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영적으로 먹고, 그의 피를 영적으로 마시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거함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는 우리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위험도 엄청난 것인데, 만일 우리가 성찬을 부당하게 받으면 우리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하여 죄를 범함으로, 다시 말하면 주님의 몸을 헤아리지 못하여:

 

우리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질병과 여러 가지 종류의 죽음으로 재앙을 내리시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그 분의 말씀을 막거나 중상(中傷)하게 되거나 간음하거나 악의(惡意)를 갖거나 질투하거나 다른 중죄들을 저질렀다면, 여러분의 죄에 대하여 슬퍼하면서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성찬을 준 후에 악마가 유다에게 들어간 것처럼여러분에게 들어가서 여러분이 온갖 악으로 가득 차게 되어 여러분의 몸과 영혼을 파멸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을 판단함으로, 여러분이 주님으로부터 판단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과거의 죄에 대하여 참으로 회개하고, 생동력이 있으며, 다만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의 공로로 여러분이 구원받았음을 믿어 평생 동안 가족적 사랑과 경건한 대화 가운데 살아가려는 목적으로 충만하여 모든 악행과 논란을 잊어버리면서 우리 구주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가십시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아주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인데,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완전하지 못하며,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타락된 본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헌신하지 않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불타는 열정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적 욕망에 반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심으로써 그의 복음을 우리의 마음에 각인시킴으로써 우리가 절망과 불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존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와 그 명령의 준수를 갈망하게 해주심으로써 우리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의지와 욕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저와 같은 결정들과 여러 가지의 불완전함이 우리 자신을 대항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의 영적인 식탁(성찬)에 초대받을 수 있는 가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십니다. 식탁으로 가는 목적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올바르고, 의롭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는 분노와 저주의 자녀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과 완성을 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이 성찬식이 모든 불쌍하고 병든 피조물들을 위한 유일한 치료약이요, 또한 연약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수단이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능함과 불완전함을 솔직하게 인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공로와 가장 위로가 되는 혜택(참으로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들을 가치 있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찬에 몸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찾기 위하여 우리가 성찬에 사용하고 있는 보이고, 부패할 수 있는 것들(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으로서의 빵과 포도주)을 생각하는 데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에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혹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화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현존하는 것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영의 유일한 양식이시며 구원이신 그의 실체(살과 피)가 생동함으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우리가 천국의 백성이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는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완전한 사람이신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아버지의 무한하신 영광 안에서 모든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하나님께 이제와 영원히 아멘.

 

이와 같은 권고를 마치고 나면, 목사는 강단으로부터 내려와 성찬상에 앉고, 모든 남녀는 자리를 잡아 가능한 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남녀가 이와 같이 자리를 잡아, 그 후에 목사는 빵을 들어 축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거나 사실 상 이와 유사하게 감사의 말을 한다.

 

자비로우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을 알고 당신에게 고백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자와 주로서 감찰하시는 분이시여!

 

우리는 주님의 솜씨와 주님의 신적인 장엄함을 항상 두려워하여 경외(敬畏)하나이다.

 

그것은 먼저, 주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나이다:

 

주님은 우리를 영원한 죽음과 저주로부터 구원하셨나이다.

그 죽음과 저주는 사탄이 인류의 죄를 수단으로 삼아 그 영원한 죽음과 저주로 이끌었나이다:

 

(어떤 인간이나 천사도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없었던) 결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나이다).

 

(오 주님) 자비가 풍성하시며,

한 없이 선하신 주님은 유일하시고,

사랑받는 아들 안에 서도록 우리를 구속하셨나이다:

주님께서는 매우 사랑하시는 그 분을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시어

주님의 정의를 만족시키는 그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그가 몸으로 받게 하셨나이다.

그 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사망의 쏘는 것을 파괴하셨고,

아담의 후손 모두는 정당하게도 유배되어 있었던 세상에 다시 생명을 가져오셨나이다.

 

오 주님, 우리는 어떤 피조물도 주님의 탁월한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알 수 없음을 인정하나이다.

 

아무도 그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는 곳에서 자비를 보여주셨나이다:

 

그 사랑은 죽음이 승리하는 곳에서 생명을 약속하시고, 생명을 부여하셨나이다:

 

그 사랑은 우리가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주님의 정의에 반항할 때에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하셨나이다.

 

오 주님,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너무나 맹목적이고, 둔감하여

그토록 고생을 하고도 주님의 지극히 충만한 은혜로 가지 못하였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우리는 세상에 선포하고, 증언하기 위하여

 

그 분의(이 식탁은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음을 기억하도록 남겨 두신 것입니다) 식탁에 참여 하나이다.

 

오직 그 분에 의하여 우리는 자유와 생명을 얻었나이다:

 

오직 그 분에 의해서만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자녀요,

상속자로 인정하시나이다:

 

오직 그 분에 의하여만 우리는 주님의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나이다:

 

오직 그 분에 의해서만 우리는 그 분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영적인 왕궁을 소유하나이다:

 

우리는 지금 하늘에 있는 그 분과 대화를 나누며,

그 분에 의하여 우리의 몸은 흙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즐거운 곳에서 그 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오 자비의 아버지) 주님은 세상의 기초가 준비되기도 전에,

주님의 택자를 위하여 그 영원한 즐거움을 준비하셨나이다.

사랑받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님의 자유로우신 자비와 은혜를 받는다는 이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우리가 인정하고 고백하나이다.

 

그러므로 성령에 의하여 움직이는 회중은 모든 감사와 기도와 영광을 주님께 영원히 돌리나이다.

 

이와 같이 기도를 한 후, 목사는 빵을 떼고 사람들에게 전해 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끼리 동일한 것()을 나누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라 한다. 이 같이 잔을 돌린다.

 

그 때(빵과 잔을 돌리는 동안)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생하게 진술하는 성경의 몇몇 구절을 읽는다.

 

우리의 눈과 감각은 보이는 말씀으로 불리는: 빵과 포도주라는 외적 표징에 사로 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또한 이러한 성례에 의하여 나타나는 주님의 죽음에 대한 명상에 완전히 고정된다. 그리고 이렇게 한 후,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감사드린다.

 

가장 자비로우신 아버지,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감사와 영광을 돌리나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 가엾은 죄인들에게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와 교제로

우리를 받아주시는 너무나 탁월한 선물과 보물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죽음으로 넘겨주셨고,

영생을 위하여 필요한 음식과 영양분으로 그 분을 우리에게 주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비옵기는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는 너무도 가혹하게 되시어,

그토록 가치 있는 은혜를 잊어버리실 정도로

우리를 결코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이 요청을 허락하시옵소서:

그 은혜를 우리의 마음에 분명하게 각인시키시어 붙잡아 매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참된 믿음 안에서 날마다, 점점 더 자라고 성장하게 하소서.

 

오 주님, 이 믿음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모든 선한 사역 안에 실행되며,

이 위험한 시대에 사탄의 분노 아래에서도 우리를 굳게 하나이다.

우리는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찬양 받으시는 영광의 성취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고백을 끊임없이 계속할 것입니다.

 

이제와 영원히.

 

이렇게 한 후, 교인들은 시편 103(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또는 다른 감사송을 찬송합니다.

 

이것이 끝나면, 멘시온(mencionede: 해석불능) 앞에서 축복 문 중 하나를 낭독하고, 식탁을 떠나 흩어집니다.

 

독자에게

 

어떤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우리가 왜 이러한 순서를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면, 이 성례의 집례에 있어서 어떤 다른 순서를 따라야 하는지를 궁금해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교황주의자들의 오류를 완전하게 배격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각인시켜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성례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자리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식탁에 대한 말씀에 관하여는 다시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황주의자들의 잘못 된 믿음, 즉 주님의 식탁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는 그들(교황주의자들)을 반대합니다. 그들은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변화되어 반복적 희생제사가 성례를 만든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식탁에 관한 말씀들은 읽히고, 선포되어 우리로 하여금 성례를 할 때,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성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 관하여 증거 해주시고, 그 분은 우리가 영적으로 활용하여 위안을 얻도록 이 표징을 제정하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 바울의 규범을 따르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살피고, 이토록 놀라운 신비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후에 빵을 받고,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가르치셨듯이 우리는 감사하며, 빵을 떼고 나눕니다. 마지막으로 집례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감사를 드립니다. 그 이유는 그 분의 말씀과 보증이 없다면 이 거룩한 일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시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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