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회피하던 신학교수들

대책 없는 듯 했는데, 온갖 좋은 말씀들을 열거하심...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2/03 [07:48]

대화를 회피하던 신학교수들

대책 없는 듯 했는데, 온갖 좋은 말씀들을 열거하심...

공헌배 | 입력 : 2019/02/03 [07:48]

 

<신학이 있는 묵상>이라든가, <예언과 목회>라든가, 그 밖에 모든 사람들에게라든가 또는 국민일보에 연재 된 컬럼들 등

 

나는 한국사회에서 존경받는 분들에게 약간의 관심들이 있어, 몇 번씩 지켜봤었다!

 

그 결과 나는 상당하게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여전히 찬사들을 받았다는 데 있었다. 그런 찬사들이 예의인지, 분위기인지, 그 학자들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들 일들이었다.

 

왜 한국교회는 가방끈 좋은 신학교수들에게는 그리도 관대하고, 힘없고 불쌍한 목사들에게는 그리도 야박한가?

 

아래는 공헌배, <목사들을 위한 변호> (파주: 한국학술정보, 2012), 12-15쪽에 있는 일부의 내용이다:

 

이른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다. 약간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전화를 받았다.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함께 신학대학원(M. Div)을 다녔던 목사였다. 나에게 전화를 했던 그 목사는 느닷없이 이른 아침에 나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이 다음과 같았다:

 

, 신이 살아있어? 도대체 형이 생각하는 신은 뭐야?”였다.

 

이런 생뚱맞은 질문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신이 살아 있냐니? 그게 어디 목사가 할 질문인가? 그의 질문을 언뜻 들으면 신학이론으로서 신의 존재증명이나 신의 특성 등을 묻는 것 같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질문은 나도 신학대학 다닐 시절에 해 보았는데, 그 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교수님에게) 칼빈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 때 교수님은 나에게 좋은 문제의식을 가졌다며 칭찬을 해 주었지만 돌이키어 생각해 보니 동문서답(東問西答)이었다.

(중략)

 

그 교수님의 대답은 너무 원론적인데다가 당위적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 칼빈이 쓴 교회의 법령 (1541)”을 읽어 보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 정도만 읽었어도 최소한 질문자가 억울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 교수는 나에게 뜬구름 잡는 식의 답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전화 했던)그 친구는 왜 잠도 이루지 못하고, 이른 아침에 나에게 그토록 애타게 전화를 했을까? 정말 내가 설명하는 신 존재 증명이나 좋은 이론서에 대해 듣고 싶었던 것일까? 그게 그에게 그토록 중요했을까?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신 말고, 형이 생각하는 신에 대해 솔직하게 답해 주세요!” 이 질문을 받은 나는 더 당황스러웠다. 대체 이 친구는 나에게 무얼 요구하는 거지? 그런데 나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속으로 교수님에게 말하기를, “교수님, 신이 죽었다고 말씀하셔도 좋으니 제발 제게는 숨기지 마시고 진실을 말씀해 주세요!”였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질문들은 단지 피상적으로만 들었을 때에는 문제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그 학생의 상태나 그 학생이 처한 삶의 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답변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당시에 그런 고민에 빠졌던 것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 학생시절에 내가 교수님에게 교수님, 신이 죽었다고 말씀하셔도 좋으니 제발 제게는 숨기지 마시고 진실을 말씀해 주세요!”라고 하는 요청은 단지 그 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듣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정말 신이 어떤 분이신지 교수가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공허했을 것이다. (중략)

 

나에게 전화를 한 그 친구 목사는 무엇 때문에 나에게 신이 살아 있냐?”고 전화를 했을까? 나는 조금 더 길게 통화함으로 그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의 목양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일이 사정을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몇 마디만을 듣고도 그의 고민에 공감이 되었다. 그럼 그렇지! 이유가 있었다. (중략) 그러면서 그는 목사직을 그만 두고 직업을 바꾸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할 만한 일은 있냐고 물었는데, 그 친구 목사는 나에게 말하기를 그런 것은 묻지 말고, “, 형이 생각하는 신에 대해서만 말 해 줘!라고 했다. 전화상의 통화였지만 나는 그의 심각한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중략)

 

그러나 신학대학의 교수들이나 동료 목사들의 답변은 어떠한가? 그에게 만약 기도하시오!”라고 답을 한다면 그는 되물을 것이다. 과연 그 목사는 기도를 게을리 했을까? 더러 경험담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받은)은사로 교인들을 통제하시오!”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가 교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내리시는 특권일까? 여전히 시원찮은 답변이었거나 개인 특유의 경험으로 상대의 상황조차도 자신의 경험에 의해 답을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중략)

 

다시 그의 질문을 상기해 보자. 신이 살아있어? 도대체 형이 생각하는 신은 뭐야?”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직접적으로는 답을 할 수 없다. 아니, 답을 해 준다고 한들 과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다만 내가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이제, 당신이 믿는 그 신이 당신을 긍휼히 여기시어, 당신이 고생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목양의 길을 접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보다 더 행복하고도 즐겁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라는 정도가 적합할 것으로 여겨진다.

<목사들을 위한 변호> 중에서

 

이 두 개의 케이스는 전화한 사람과 전화 받은 사람의 사태였다. 거기서 전화 받은 사람은 필자다.

 

내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나는 20대 때에 몹시 다급하던 사태에서 어느 교수님을 만난 적 있었다:

 

그분은 가방끈 좋고, 많은 학생들로부터 존경받으며, 해외 유학까지 다녀 온 명문대 출신이신데, 나는 그분을 만난 적 있었다. 그 당시의 사태들은 아래와 같았다:

 

교회에서 패거리를 만들어 아버지를 힘들게 했다. 심하면 교회가 둘로 쪼개지는 게 아닌가 할 정도의 위기까지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군대를 전역한 후, 신학교에 복학한 상태였는데, 하도 힘들어 답답한 나머지 모 조직신학 교수를 찾았다. 그리고는 그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칼빈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답하길: “좋은 질문이오!”

 

이야말로 동문서답(東問西答)아닌가?

 

내가 칼빈에 대해 궁금했던 것은 저들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칼빈이 만든 제도가 무엇이길래 교회를 이토록이나 힘들게 만드나?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이런 심각한 고뇌 앞에 그 교수의 답은 너무 원론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한국의 장로파 교회들은 칼빈시대의 격률에서 많이 어긋나 있다.

 

 

그 때 발생했던 문제는 결국 당회장이 교인들 앞에 사과하고, 부목사는 사임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돌이켜 보니, 이는 절차상의 문제 같았다. 즉 부목사의 인기가 날로 높아 가는데, 교회는 당회장 파와 부목사 파로 갈라지게 될 형편이었다.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부목사를 내보내지 않으면 힘들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부목사에게 사임을 권유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단했다. 당회의 장로들은 왜 당회의 권위를 무시하여 독단으로 처리했느냐?’였다. 그들의 선동 구호는 간단했다. ‘당회의 권위를 무시했다.’ ‘목사가 독재 한다.’ 바로 이거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생각으로 부목사는 당회장을 보필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당회장의 권한으로 부목사에게 사임을 권유할 수 있다는 거였고, 당회의 장로 중 일부는 당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거였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일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당회장이 회의를 소집하여 장로님 여러분, 교단의 헌법 상 부목사의 임기는 일 년이며, 매년 연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회장으로서 현재의 부목사가 불편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부목사에게 사임을 권유하려 합니다.”라고 했다면 문제가 훨씬 더 작아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설령 당회에서의 찬반 논쟁이 일어나더라도 표결에 붙이면 아버지가 이겼을 것이다. 물론 불만이 나왔겠지만 그렇게까지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차를 정상적으로 밟는 것이 우선에는 번거로워 보여도 실은 그게 가장 빠르고 수월한 길이다.

 

이와 같은 답을 찾는 데, 20년 정도 걸렸다. 그 때 그 교수를 만난 뒤, 20년 쯤 지나서 <목사들을 위한 변호>라는 책을 썼으니, 그런 셈이다.

 

그 교수님은 그 문제만 걸렸던 게 아니다.

 

한번은 진로상담을 하러 갔더니, 귀찮았는지, 바빴는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신의 아버지와 상의 하시오!”

 

아버지에게 답 있으면 당연히 아버지와 상의하지 뭐 하러 교수씩이나 찾겠는가?

 

이것은 몇 개의 예들에 불과하다!

 

단지 신학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판정은 점수놀이(학점매기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는 무언가 고민들이 있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무엇인가의 답을 찾아야 하는 데, 문제는 학생들의 경우, 명료한 질문들을 할 능력들이 없다. 즉 질문이 예리하거나 정확해야 교수에게서 그나마 답을 들을 수 있는데, 학생들은 그런 질문을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는 학생의 질문을 명료화하여, 예리하고 쓸모 있는 질문이 될 수 있도록 산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해 소크라테스처럼 산파의 역할을 하여, 그가 좀 더 정확하고 예리한 질문을 하여, 인생에 좀 더 보람 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신학교수를 단 한 명도 만난 일이 없었다. 그들은 주로 자신들의 투사(投射)를 학생들에게로 한다. 논문주제, 학문의 경향성, 삶의 방향들 모두.

 

그래서 상담들이 별 의미 없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신학교수는 나르시시즘 환자였다.

 

자신이 가진 신학정보들 외에는 나에게 별로 덕 될 게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나한테는 별로 쓸모없는 정보들도 많았다.

 

예를들어보자: 칼 바르트와 디트리히 본훼퍼의 ()종교적 그리스도론이라는 게 있다. 이 두 신학자들의 내용들은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 신학에서는 이분법 식 사유를 하지 말자는 뜻과 같이 들렸다.

 

즉 교회 안과 세상 또는 종교와 세속을 분리하지 말자는 뜻처럼 들렸다.

 

그럼 왜 목사를 해야 하는 데? ?

 

왜 하필 신대원을 가야 하냐구?

 

목사 하지 말고, 세속으로 가서 신앙적으로 살면 된다. 그런데 왜 목사를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그분의 신학내용과 그분이 했던 진로상담은 연결점을 찾기 힘들었다.

 

공허한 메아리와 같았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종교적 그리스도론을 배운 사람이 아니다. 고로 그 학생은 아버지와 상의해봐야 겉돌아가듯 한다. 즉 자신이 수업에서 강의 한 바와 그 학생의 진로문제는 연결되지 못한다.

 

문제는 그 학생에게도 있었는데, 학생은 머리 속에 온갖 심각한 고민들로 잡동사니처럼 되어 있었다. 무슨 질문들이 어떤 식으로, 우발적으로 튀어나올지 모를 상황인데, 교수로서는 그런 학생들 귀찮고, 관심 없을 가능성이 짙다.

 

다시 말해 교수가 학생에게 , 뭐하고 싶은데?”라고 물으면 학생은 자신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 단지 신학교 생활에 불만이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학문의 분야에 있어서는 정직한 답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럴 경우, 교수는 겸손해지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 학생을 괜찮은 상담사에게로 인도해주면 된다. 어쩌면 전화 한/두통으로도 답이 나왔을 법 했던 문제였다. 교수는 바로 그 간단한 수고를 소홀히 한 탓에 20년이 넘도록 그 학생은 시간을 허비한 점들이 있었고, 결국 그 교수를 원망한다.

 

 

30년 가량 쯤 지난 뒤, 그 학생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 교수를 찾느니, 차라리 점장이를 찾겠다!”

 

옳던/틀렸던 적어도 점장이는 답을 해준다. 그러나 그 교수는 빨리 자기 방에서 나가 주길 원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는 늘 인기 좋은 학자로 자리매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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