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누가 하는가?

아무나 개혁을 말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1/30 [21:59]

개혁은 누가 하는가?

아무나 개혁을 말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헌배 | 입력 : 2019/01/30 [21:59]

 

제법 오래 된 일이다. 어디서 들었는데, 모 지방 신학대학에서 어떤 교수가 수업시간에 루터를 본받으시오! 또는 루터를 생각하시오! 또는 루터처럼 신 앞에 홀로 서시오!’라는 식의 주장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무슨 수로 루터씩이나 본받는다는 말인가? 무슨 능력들이 있어 루터씩이나 생각하겠는가? 그 교수는 그 신학교의 구성원들에 대해 그 정도로 큰 기대씩이나 가졌단 말인가? 황당하다!

 

오래 전 이영애씨가 주연한 모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에서 인상적 대사 하나가 기억난다: 너나, 잘 하세요!”

 

사실 그렇다! 우리는 주제파악 좀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위 세반연이던 예정연이던 우리는 이영애씨의 그 대사를 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에서는 종교개혁이라든가, 개혁의 주체라든가, 개혁의 대상이라는 식의 주장들을 더러 들을 법 한데, 나는 이와 같은 발성들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왕지사 나온 말들이니 여기서는 종교개혁가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단면들을 조금 살피겠다.

 

1. 종교개혁가들은 그 당시 사회의 기준들에서 볼 때 일리트들이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꼽히는 존 위클리프는 옥스퍼드대학교의 교수였다. 마르틴 루터는 공부를 매우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전집은 그 분량이 엄청나다. 엄청난 저술들과 함께 신학적 깊이와 활동적 적극성을 동반한 수도사였다. 울리히 츠빙글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부였고, 문헌학자였으며, 인문학자일 뿐만 아니라 성경번역작업을 했던 일리트였다.

 

장 칼뱅은 법과대학 출신의 목사였는데, 그 당시에는 문맹률이 높았기 때문에 칼뱅정도로 공부했다면 그는 일리트다. 장 칼뱅의 이력을 오늘날에 견준다면 하버드대학교 정도 나온 희귀한 케이스로 볼 만큼의 일리트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종교개혁사를 보면, 민중적 운동도 있다. 이를테면 독일 농민운동이라든가, 이름 없이 사라진 숨은 희생자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역사에 이름들을 남긴 개혁가들은 그 시대의 기준에서 볼 때 상당한 일리트들로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이름들을 남긴 신학자들은 종교개혁시대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는 국립의과대학 출신이며, 유럽에서 좋은 학교들을 몇 군데씩이나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농노를 말하며, 혁명이라든가, 민중이니 하는 문학의 세계로 알려진 레오 톨스토이는 어마어마한 저택에서 살았던 러시아의 귀족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교육받지 못했다고 주장한 안병무 선생께서는 서울대 출신이며,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하셨다. 타자를 위한 신학을 주장한 디트리히 본훼퍼는 대학교 교수의 아들이었으며, 가진 재산을 팔아 의미 있는 곳으로 써버린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재벌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아프리카로 간 알버트 쉬바이처는 박사학위만 4개라고 한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일단은 일리트들로 여길 수 있다.

 

그럼 왜 종교개혁의 주도자들이 일리트들이어야 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조금 틀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폴리테이아(政體)를 따르면, 철인정치론(哲人政治論)이 나온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론(哲人政治論)은 철학자들이 하는 정치를 뜻하는 게 아닌 듯하다. 즉 철학자나 소피스트들이 모여, 하는 그런 정치의 차원으로 보기는 어렵다. 철인정치(哲人政治)란 일종의 이데아적일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고대 헬라스 사회에서 실행되기에는 불가능했거나 엽기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정치였을 듯하다. 이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요점을 잡으면, 독재는 최악의 정치다!

 

그럼 민주주의는 좋은 정치인가?

 

플라톤의 주장대로 하면, 민주주의도 쓰레기이다. 그럼 플라톤은 어떤 정치를 원했는가! 이게 정확할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플라톤의 정치 아젠다를 요사이 식으로 표현해본다면, 전문가들(현자들?)의 정치다.

 

즉 훈련되고 교육받은 우수한 인재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걸 뜻하는 데, 이는 요사이의 대한민국과 같이 명문대 출신들이 저마다 나 잘 났네하면서 등판 된 그런 정치유형이 전혀 아니다. 소위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란 정서에 호소하고, 국민여론에 호소하며, 저마다 나 잘 났네하여, 표몰이로 등판 된 사람들인데, 이런 스타일을 플라톤은 아주 나쁘게 여긴다.

 

플라톤의 책에 의하면, 국가의 구성원들에게는 저마다의 역할(포지션)이 있는 데, 이게 마치 음악의 화음처럼 잘 조화되어야 한다. 그럼 이 가운데에서 정치인들(국가의 수호자들)은 어떤 자들이어야 하는가? 이게 나한테는 좀 어렵게 읽혀졌는데, 내 이해가 옳은지 부족한지도 잘 모르겠는 데, 프로가 정치를 해야 한다. 어중이떠중이나 아마추어나 통빡 잘 굴리는 그런 류들이 정치하면 개판된다.

 

그럼 그 정치의 프로들은 기득권을 가졌기 때문에 특혜들을 누려야 하는가? 전혀 아니다! 바로 이와 같은 프로들에게 요구되는 덕목들이 절제이며, 이들에게는 마치 수도사들과 같은 금욕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세속과는 다소 격리되어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정치프로들의 엄격한 훈련들과 이로 인한 전문성들 그리고 세계를 보는 안목 등이 결합하여, 전체 국민들의 공익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 다수의 행복을 위해, 국가의 수호자들(정치인들)은 고난의 행군들을 감행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해야 하며, 격리되어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데이만토스는 정치인들이 결코 행복한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고 여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견줄 때 민중은 인식의 표준 예라든가, 세계사적 운행이라든가, 천체의 운행 등이나 자연과학적 질서에 있어서 볼 때 민중은 인식의 표준 예로는 적합한 우위를 갖지 못한다.

 

그럼 독재는 타당한가? 이야 말로 최악이다. 독재의 폐악들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에 견줄 때 왜 종교개혁가들이 일리트들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간접적 답변정도는 가능할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종교개혁가들이 플라톤이 말한 그런 종류의 철인(哲人)들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2. 자유주의자들

 

종교개혁 당시에 그 말이 자주 쓰였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당시 종교개혁가들의 행동들을 요사이의 개념에서 유추해본다면 어느 정도는 자유주의자들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하다.

 

마르틴 루터는 술을 많이 마셨다고 전해진다. 물론 바울 사도께서는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술을 많이 마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루터는 여자와 혼인했다. 그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에게 있어서 혼인은 금기다. 그러나 루터는 금기를 깨고 혼인했다.

 

사제출신의 개혁가로는 츠빙글리도 해당되는데, 츠빙글리 역시 혼인했다. 그는 과부와 혼인했다. 물론 장 칼뱅도 과부와 혼인했다. 사실 칼뱅정도의 이력이라면 처녀와 혼인해도 될 성 싶은데도 불구하고 칼뱅은 과부와 혼인했다.

 

종교개혁가들의 이와 같은 태도들은 당대의 터부들을 깨버린 듯하다.

 

터부, 금기이다. 금하는 이유들을 크게 두 가지인데 요약하면, 신성한 것들이나 부정한 것들에 해당한다. 즉 신성하든 부정하든 모두 금기시 된다. ‘터부에 관하여는 S. Freud/ 이윤기 옮김, “토템과 타부,” J. Strachey ed. <종교의 기원>(서울: 열린책들, 1997), 233-238을 참고하시오!

 

그래서 그 당시의 관습대로 하면 종교개혁가들 중 루터와 츠빙글리는 터부를 깬 셈이다. 그리고 종교개혁가들의 자유적 성향은 신학에서도 드러난다. 라인홀드 제베르크의 책에 의하면 츠빙글리에게는 자유주의적으로 여겨도 될 만큼의 신학사유들이 나타난다. 물론 그 당시의 사유들이 현대의 자유주의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빙글리의 시대에서 본다면 아마도 츠빙글리는 상당한 자유주의자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유명한 신학자들의 다소 자유로운 행동들은 현대사회에서도 있었다고 여겨야 한다.

 

유럽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칼 바르트는 키리쉬바움과의 그렇고 그런 사이 같았다는 것은 거의 정설에 가깝다. 그리고 디트리히 본훼퍼는 아마도 담배를 잘 피웠을 듯하다. 물론 칼 바르트는 골초였을 것이다. 미국에서 활동했던 폴 틸리히는 어땠는가? 그는 자신의 마누라를 잘 돌봤을까? 쇠렌 키에르케고오르는 어떻게 결혼 했고, 어떻게 이혼했으며, 그의 심리는 어땠을까? 그러나 이들 모두는 존경받던 사상가들 아니었는가?

 

의지박약으로 마치 식물인간들과 같다면 욕심이 없을 듯하다. 욕심이나 금욕으로 한다면 어찌 목사들이 불교의 스님들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차라리 불교의 승려들을 존경하시길 바란다! 그들은 목사들에 비해 월등하게 금욕적이다. 윤리적 철저함을 보고 싶다면, 고대의 바리새인들을 존경하는 편이 좋을 성 싶다. 그들은 오늘날의 목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했을 듯하다.

 

그래서 요약하면 종교개혁가들은 첫째, 일리트들이며, 둘째, 자유주의적 진보성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열린 마음들과 소통 가능한 태도들을 가졌을 듯하다.

 

이 글의 제목이 개혁은 누가 하는가?”인데, 이를 역사에 견주어 개혁은 누가했는가?”라는 질문으로 환원하면; 첫째, 일리트. 둘째, 자유주의적 성향의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서두에서 문제제기 하길: “소위 세반연이던 예정연이던 우리는 이영애씨의 그 대사를 새길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세반연은 필자가 잘 모르니, 예정연에 대해 문제제기 하겠다.

 

최근의 기사들(기독공보 201914, 교회법률신문 201918): 기독공보와 교회법률신문 등을 따르면, 예정연의 어느 임원에 대해 썼다. 그 내용은 예정연의 모 임원이 단체를 속이고, 공증증서원본부실기재죄, 문서위조, 명의도용 등에 연관 될 법한 기사들이 있었다.

 

이에 대한 그 임원의 입장은 초기에는 가짜뉴스라고 했는데, 그게 가짜뉴스라는 증거를 밝히지 못하면서 자신 스스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4”(2019. 1. 23)에서 준법인 고유번호 (중략) 단독정관 단독 만들고 약칭-예정연으로 정함이라고 시인해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는 단체에게 정식으로 사과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는 자기변명 식으로 말할 일이 아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단체에게 피해를 주었으므로 단체 앞에 공식적 사과를 하든지, 아니면 해명을 하든지, 공기관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아, 고치겠다고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임원은 같은 단체 안의 모 임원들이 있는 카톡방에서 여러 번에 걸쳐, 협박성 멘트들을 올렸다.

 

이와 같은 태도들은 예장통합교단의 정체성과 교회수호를 위해 결성 된 연대에 속한 그 임원의 태도로는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교단을 개혁하겠다는 사람이 스스로 모순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즉 교단을 개혁하기 전에, 자신부터 개혁하란 소릴 듣기에 딱 좋기 때문이다.

 

그 연대에 속한 모 임원은 다음과 같이 느낀다고 했다:

 

000목사는 마치 외곬과 같다. 그는 무언가에 콱 틀어박혀서 1밀리미터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사과할 생각도 다른 임원들에 대해 배려할 생각도 없는 듯하다.

 

만일 이와 같은 사람이 개혁자인 것처럼 자칭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동의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수 백 년 전의 개혁가들과 동질적일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시대도 다르고, 체감온도도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구성원들로서 타인들에 대한 배려들이나 자신들을 돌아볼 정도의 도덕성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유시민 전()장관이 박근혜 정부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대로 꼭 같이 축어적으로 옮기지는 못하겠는데, 유시민 작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적폐를 청산하자고 하는데, 이는 () 자신을 포함하는 말이어야 한다. 자신은 빼고 적폐를 청산하는 게 아니라 () 자신도 () 적폐의 하나임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해설: 자신부터 적폐의 하나인데, 왜 자신을 빼는 유체이탈 식 화법을 썼느냐는 주장처럼 들렸는데, 나는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다. 여러분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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