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비평

황규학 | 기사입력 2019/01/23 [14:12]

창조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비평

황규학 | 입력 : 2019/01/23 [14:12]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론 대신 정상 과학의 권좌에 오르기 위하여 과학적 실증과 도구를 최대한 이용해서 하나님에 대해 연구한다. 그러나 학문적 방법에서는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즉 과학은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과학 외의 영역을 실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첫째, 계획성과 목적성에 의한 하나님의 존재 증명을 알아보자.
 
창조과학자들은 초자연적 지성의 존재를 아퀴나스의 신 존재의 논증 방식을 사용하여 추론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우주론적인 논증 방법이다. 창조론자들은 자연법칙의 질서정연함과 우주의 신비함과 생명의 경외스러움을 볼 때 신의 의도와 목적, 그리고 계획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번째 계획성과 혹은 목적성에 의한 신 존재 증명 방식으로 자연세계나 인간들은 어떤 목적이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사물을 질서있게 계획하고 자신들의 목적으로 향하게 해주는 어떤 초자연적인 지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신(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계획성·목적성·인과론의 한계
 
근대에 들어와서는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가 그의 저서 자연신학에서 이 논증을 제기했다. 페일리는 시계에 관한 유추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사막의 한 가운데서 시계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우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 없고, 누군가 목적성과 계획성을 갖고 설계한 지적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계획성에 의한 논증을 오존층에까지 적용한다. 오존층이 강렬한 태양의 자외선을 걸러내어서 지상에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조정해주는 것을 볼 때, 오존 가스층이야말로 창조주의 존재를 입증해주는 유력한 재료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새의 날개는 공기에 맞도록 계획되었고, 지느러미는 물고기에 맞도록 설계되었고, 인간의 두뇌에는 수백만 개의 세포가 서로 협동하여 움직이고 있으며, 인간의 눈은 고도의 색 분별감을 가진 자동식 렌즈를 가진 영화 카메라처럼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연이나 자연의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지적 존재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신(하나님)은 존재한다.
 
데이비드흄의 비판
 
그러나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그의 저서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첫째,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설계된 것같이 보이게 마련이다. 안정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생물은 질서와 적응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와 같은 사실은 어떤 계획과 목적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게끔 된다는 것이다.
 
둘째, 흄은 세계를 시계나 집과 같은 하나의 인조물과 비교하는 것은 유추론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비록 이 세상을 창조한 설계자를 유추해낸다 하더라도 그 설계자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보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자연세계에 정밀한 어떤 질서와 법칙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식과 지혜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획성과 목적성에 의한 하나님의 존재 증명 방식에는 한계가 따르는 것이다.
 
둘째, 인과론에 의한 하나님의 존재증명 방법이 있다.
 
인과론에 의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증명의 두 번째 방식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이 방법을 가지고 자기들이 신뢰하는 과학의 구체적 예를 들어 인과론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를 밝히려고 한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의도는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존재 근거에 대해서 이 방법을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 구체적 예로 창조과학자들은 열역한 제1법칙을 증거자료로 내놓는다. 열역한 제1법칙은 총질량불변의 법칙을 말한다. 이것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즉 에너지는 그 자체의 형태는 변화될 수 있지만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 나무를 불로 태워 재밖에 안남더라도 태우기 전과 태운 뒤의 질량은 똑같다는 것이다.
 
자연계의 에너지는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총량은 항상 똑같다. 유명한 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에너지 보존 법칙에 대해서 "이 법칙은 과학자들이 이끌어낼 수 있는 법칙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인 것이다 그러나 왜 에너지가 보존되는지 근원적으로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창조과학자들은 결국 인과의 법칙으로 원인을 추적하면 근원적인 제1원인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열역한 제1법칙을 가능케 했던 에너지의 궁극적 출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창조론자들은 인과법칙에 따라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려 하고 있다. 인과론에는 생성인과론(generative theory of casuality)과 계기인과율(succession of casuality)이 있다. 생성인과율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과율로 원인은 결과를 발생케 하는 능력으로 간주되며 그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계기인과율은 원인은 보통 어떤 상태나 사건의 앞에 오는 것으로 그 뒤에 그런 결과가 오리라고 기대하는 심리학적 경향을 획득하는 까닭에 그것에 대한 원인이라고 불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생성인과율에서 보면 원인과 결과는 서로 독립적이 아니며 결과는 원인 없이 일어날 수 없다. 계기인과율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려는 것은 한 종류의 사건과 다른 종류의 사건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주로 전자를 지지한다. 그러나 생성인과율에는 몇 가지 약점이 있다.
 
신의 존재는 신앙의 영역
 
그것은 인과법칙을 이제는 단순히 통계적인 확률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과 둘째는 흄이 주장하듯이 인과법칙을 단순히 생성인과율로서만 보지 말고 계기인과율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에너지의 제1원이 하나님이란 것은 단순히 으레 그렇게 생각해 온 것으로 심리적 경향을 띠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인과율에 의한 하나님의 존재증명 방식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철학적으로 혹은 과학적인 실증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존재 증명 방법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증명 방법이 과학의 영역을 넘어 형이상학적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이라는 영역 자체가 과학이라기보다는 형이상학적 영역에 속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은 과학의 영역이 있고, 형이상학은 형이상학의 영역이 있고 신앙은 신앙의 영역이 있다. 하나님의 존재 증명은 성서의 주장을 믿는 우리의 신앙에 있기 때문에 과학적 실증 방법이나 철학의 형이상학적 방법으로도 그분의 존재 증명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창조과학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 글은 필자가 장로회신학대학원 재학 중 1993년 장신원보에 발표된 글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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