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 된 사과

공(公)교회가 되려면...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1/16 [16:48]

주객이 전도 된 사과

공(公)교회가 되려면...

공헌배 | 입력 : 2019/01/16 [16:48]

 누군가의 페이스북에 공유 된 글이 있는 데, 000 님이 올려놓은 어느 목사님의 새벽기도에 대한 글이다.

거기서 길게 말고 한 가지의 초점을 잡아보자;

 

어느 교역자의 돌 지난 딸아이가 아팠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공(公)교회일까? 시찰회는 즉각적으로 노회에 보고하고, 노회는 긴급구호금으로 아이의 치료비를 마련해주었어야 했다. 이 정도는 해주어야 공적(公的)교회로서의 책임을 조금이나마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목사님들의 영웅담이나 개척담들을 더러 들을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런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이 계신 줄 믿는다. 그러나 공(公)교회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시련을 이긴 분들이 놀랍기는 하지만 이와는 별 개로 노회나 총회나 시찰회 등이 왜 존재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어린 아이 하나를 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공(公)교회로서의 사명이다. 그러나 모 교단 총회는 그런 어려운 일을 당한 목사님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한 일 없다! 사과는커녕 갖은 비난들을 쏟아냈다.

 

어느 전도사님에게는 막내 딸이 있었는데, 어릴 적에 장티푸스를 앓았다. 당연히 그 전도사님은 가난하여 병원비를 마련하기에는 턱 없이 약했다. 교회건축 일 만으로도 죽을 지경인데, 입원비는 하루 하루 쌓여가고, 아이는 계속 아프고, 그래서 그 아이의 어머니(사모님)는 병원의 예배실에서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 아이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이 아이를 잃고 제가 어찌 살겠습니까? 이 아이의 오빠도 죽었는데, 이 아이마저 잃으면 제가 어찌 살겠습니까...”라는 애절한 기도들을 올렸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하면 살릴 수는 있는데, 문제는 돈이고 빚이다. 가난하고 빚 많은 교회의 힘 없는 전도사가 무슨 수로 그 비싼 병원 치료비를 대겠는가?

 

바로 이와 같은 때에 노회가 나서야 한다. 적어도 그래야 공(公)교회라고 작은 소리라도 내 볼 수 있다. 결국 살리기는 했지만 문제는 입원비였다. 그 전도사는 병원장을 찾아가 사정하여 병원비를 반(半)으로 낮추어, 퇴원할 수 있었고, 그 병원비 갚느라 그 뒤에도 계속 고생했을 일이 뻔했다. 그 때 살아난 딸아이는 훗 날 대한민국의 S대학교를 들어갔고, 대학원 석사는 유학하여 세계 100등 안에 드는 명문대에서 응용언어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 후 그녀는 미국유학을 결심했는데, GRE점수가 그 당시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의 평균보다 높게 나왔지만 그녀가 하버드를 간 것은 아니다. 사우스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그녀에게 오라고 강권했지만 그리로도 가지 않고, 모 주립대에 수석 입학하여, 풀 펀딩 장학생(수업료 내지 않고, 월급 받으며 공부하는 대학원생)으로 미국 연방정부의 펀드들을 잘 따내는 연구소에 근무하며, 미국에서 브레인들과 함께 ssci급 저널에 논문 등재해가면서 대학원 생활을 보냈고,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귀국했다.

 

만일 그 때 그녀의 어머니가 한 간절한 기도를 듣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그런 브레인 하나를 한국사회는 잃게 된다. 다행히도 그 기독교 병원의 병원장님이 그 연약한 전도사님 딸의 병원비라도 깍아 주심을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과거를 회상해 볼 때, 그 이름 없던 전도사의 딸이 아파 입원했을 때, 시찰회나 노회는 과연 공(公)교회로서의 역할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전도사는 노회원이 아니다! 그래서 노회에서는 방치했는가?

 

다시 기적을 일으킨 목사님의 일화로 가 보자;

 

노회에서는 분쟁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개(個)교회별로도 분쟁이 생길 수 있다. 그럼 노회는 그런 일들을 잘 처리할 능력들이 있겠는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모아 놓으면 적지 않은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모아놓으면 큰 일 낼 만 한 심각한 경향들을 보여 왔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교회가 공(公)교회라는 말을 당위적으로는 받아들이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에서 쫓겨났다. 갈 곳도 없었다. 막막하다. 결국 개척하셨다.

 

교회들을 개척하시는 일들은 목사님들이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노회나 시찰회들이 공적 임무를 잘 실행한다면, 굳이 개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그 목사님의 권익이 침해 된 일은 없는 지, 억울하게 교회에서 나온 일은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게 최소한의 노회 기능이어야 한다. 물론 노회는 목사들의 권익만 보호하는 곳은 아니다. 교인들의 권익이나 다른 직분 자들의 권익들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래서 노회는 대단히 중요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노회들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묻고 싶다.

 

보기 싫은 사람들끼리 계속 보고 사는 일은 서로에게 괴롭다. 그래서 갈라지고, 개척하며, 또 자기 소신 때문에라도 개척할 수 있다. 다 설득력 있다. 그러나 우리는 초기 한국장로파 교회가 추구해왔던 매뉴얼이나 그 연장선상에서 살필 필요성이 있다. 이를 따라서 볼 때, 과연 공(公)교회는 무엇일까?

 

적어도 돌 지난 딸아이의 병원비 정도는 해결해주어 그 아기를 살려주어야 한다.

백 미터도 못 걸을 정도로 고난당하는 교역자에게 심방하여 무엇이라도 도와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비록 교회의 구성원들 중 누군가가 목사님에게 나가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나갔다면, 그 목사님이 먹는 지, 굶는 지, 개척하신 교회의 월세는 어떻게 해결하시는 지 등 기본적으로 이 정도는 살폈어야 했다. 그런 일들 하라고 시찰회나 노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혹시 어느 교회의 목회자 계승에 관해 총회가 관여하고 싶은가? 그럼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총회에게 요청한다:

 

하나, 총회나 노회는 무관심하여 어느 이름 없던 교역자의 어린 딸이 병원치료도 못 받고 죽었는데, 그 딸을 살려내시라!

 

하나, 그 당시의 노회나 총회가 모 목사님의 개척 시에 쌀이나 돈이나 월세라도 도와 준 일들이 없다면 먼저 찾아가 공식적으로 그 목사님에게 사과하시라!

 

하나, 장신대는 그 고난 중에 있던 교역자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거나 그 어려운 교역자에게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 준 일들이 있는가? 만일 없다면 장신대는 공식적으로 그 목사님에게 사과하시고, 그 사과문을 게재하시라! 그런 후에 교수집단성명서들을 발표하시라!

 

요약한다: 모 교회를 향하여 무얼 하라고 요청할 일이 먼저가 아니라 사과 할 일들이 먼저다!

그것이 신학대가 되었던, 노회가 되었던, 총회가 되었던 만일 공(公)교회라는 말을 굳이 쓰고 싶다면 공식적 사과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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