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박물관을 다녀 와서...

무녕왕릉의 발굴 반(半)세기가 지나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20/11/13 [10:04]

공주박물관을 다녀 와서...

무녕왕릉의 발굴 반(半)세기가 지나다...

공헌배 | 입력 : 2020/11/13 [10:04]

 

무령왕릉: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라는 주제로 국립공주박물관에서 학회가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이 참석하지 못하며, 인원의 제한을 두었기 때문에 예약제로 참석자들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학회였으며, 촬영 나온 카메라의 대수가 꽤 많았다. , 주목받는 학회처럼 느껴졌다.

 

이 학회는 국제학회라 중국학자와 일본학자도 화상회의 방식으로 참석했다.

 

그럼 이 학회에서의 주요 쟁점들 몇 가지를 살펴보자:

 

무령왕릉에 대한 그 간의 학설은 무령왕릉의 형태가 중국 남조의 전실묘 스타일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는데, 그에 더 하여 이 학회에서는 무령왕릉에서의 대방이나 낙랑 문화와의 연관성을 소개했다.

 

무령왕릉에서 중국 계 토기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태토나 다른 요소들을 고려할 때, 중국에서 제작한 것은 아니고, 중국 기술로써 백제에서 자체 생산한 것이다.

 

기록문헌에 의하면, 백제와 고구려에는 이 있었다.

 

빈이란, 무덤이 완공 될 때까지 시신을 임시(?)로 보관하다가 무덤이 완공되면 본 무덤으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빈의 기간은 3년 정도인데, 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전() 주에 있었던 한국고고학회 때문인데, 그 때 체질(형질)인류학적 견해도 소개됐기 때문이다.

 

, 시신의 부패정도를 헤아려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무녕왕릉에 묻힌 그 시신이 3년이나 썩혀서 묻은 것인가? 이것이 가능한가?

 

신라 고분의 착장 위신재(시신 위에 놓여 진 부장품들)들과 백제 고분에 놓인 착장 위신재는 그 스타일 자체가 다르다.

 

일본으로 전해 진 칼(?)은 가야에서 제작 된 것이다라는 일본 학자의 견해가 있었고, 이에 대한 한국 모 고고학자의 견해는 아니다, 백제에서 간 것이다’, 이에 대한 일본학자의 반론: 설령 백제의 기술로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가야에서 갔다. 그래서 가야산으로 여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무령왕릉의 관재(목관의 재료)는 일본산 금송(소나무)이며, 금송의 서식지는 일본이 유일할 정도여서 그 관재는 일본산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며, 그 관재의 이동경로 등은 연구 주제이다.

 

백제의 무령왕은 일본과 매우 긴밀한 관계였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 같다는 의미도 소개 된 듯하다.

 

이와 같은 주제들은 흥미로우며, 고고학자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사태들을 추론하는지를 알 만한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고고학자는 식물학, 자연과학, 역사학, 동물학, 심지어 민속학까지도 고려하는 상당히 포괄적이면서도 우수한 학문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전문성이나 권위가 강한 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귀족들이나 할 법한 학문이지만 대한민국이 계몽 된 바람에 요새는 서민들도 학계로 많이 진출한다.

 

사실 중세 때의 대학교육은 귀족이나 부자들의 자녀들을 위해 실행되었다고 여겨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고 유적지를 발굴한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의 대통령이었고, 우르 유적지구를 발굴한 그 고고학자는 아마도 영국에서 학술원 정회원에, 기사의 작위까지 받았지 싶다.

 

이런 놀라운 학문의 영역이 보잘 것 없는 공 모씨에게까지 허락된 데 대하여 감읍한다.

 

사실 고고학을 공부한 지 오래되지 않은 나는 신학을 섯낟이라도 공부해 본 탓에 백제를 신학적으로 조명했다.

 

고고학자들은 저토록 예리하고도 정밀하게 백제의 특수한 면모들을 조명했는데, 신학 했던 나는 과거에 백제를 어떻게 조명했을까?

 

나는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조명할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과거에는 그랬다. 물론 앞으로는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면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신학이념 방식의 백제는 무엇인가?

 

아래는 전에 내가 썼던 논문의 국문초록 및 영문초록이다:

 

공헌배. “회귀본능을 통해 본 역대기 역사서와 한일관계와의 조명: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의 비전으로 바라본 한국교회와 한국사회> 12회 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 논문자료집 (2017. 4): 162-191.

 

회귀(回歸) 본능을 통해 본 역대기 역사서와

한일(韓日)관계와의 조명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본 연구의 목적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집단무의식 이론과 회귀(回歸)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여 이스라엘의 재건운동과 일본의 한반도 진출에 대해 논하려 한다.

 

역대기 역사서와 한일 관계사에는 공통성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회귀 본능(回歸本能)’이다.

 

역대기 역사서의 관점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의 유다 귀향민들이 가졌던 개혁의지를 보여주고, 20세기의 일본은 고대로부터 상속받은 집단무의식을 강력하게 발현했다. 유다의 귀향민들은 유대풍속(風俗)을 야훼종교로 회귀(回歸)시키려 했고,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의식(意識)을 고대의 백제국민으로 회귀(回歸)시키려 했다. 구약성경 역대기 역사서의 관점은 야훼종교로의 회귀(回歸)에 있고, 20세기 일본의 정책은 백제로의 회귀(回歸), 귀소 본능(歸所本能)’에 있다. 20세기 일본의 행태는 강력한 백제적 집단무의식의 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A Study on History of Chronicles and History of Korea-Japan: Focusing on Freud's psychoanalysis

 

 

Kong, Hun-Bai

Research Professor

Academia Christiana of Korea

Seoul, Korea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uss Israel's reconstruction movement and Japanese Reform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focusing on S. Freud's collective unconsciousness and instinct to return.

 

History of chronicles and Korea Japan relationship have a common element; that is 'instinct to return.' Within the framework of history of chronicles Juda's homecomers from captivity under the Babylonians showed reform will, while Japanese in the 20th century revealed strongly collective unconsciousness inherited from the ancient times. While Juda's homecomers wanted to return Juda's custom into Yahwhism,

 

Japanese wanted to return awareness of Chosun people into Baekje people in the ancient times. While views of history of chronicles of the Old Testament are to return to Yahwhism, Japanese policy is to return to Baekje; that is 'instinct to return.' Japanese behaviors in the 20th century are construed as meaning of powerful collective unconsciousness to return to Baekje period.

 

물론 이는 신학 이념을 따른 간 한문의 융합적 연구와 비슷하다. 그러나 필자의 전공 영역이 선사고고학인 만큼 앞으로는 백제를 연구할 일이 잘 없을 듯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백제를 잘 모른다. 신학 한 촌놈이 겁 없이 백제를 거론한 데 대해, 죄송한 맘을 가지기도 한다.

 

단지 신학의 입장에서 살필 때, 20세기의 일제 강점기가 단순한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해 보고 싶었다.

 

과연 그 식민지 시절의 강력한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줄 만한 신학적 역사이념은 없는가? 등이 관심이었지만 신학계에서 천대(?)받던 내가 무얼 더 말하리오!

 

나도 앞으로는 주제 파악 좀 해야 할 듯하다.

 

갈 길이 멀다!

 

고고학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귀한 관점들을 제공해 주신 한국고고학자님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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