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수님들에게

좀 더 현실적이면 좋겠습니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20/09/26 [10:38]

신학교수님들에게

좀 더 현실적이면 좋겠습니다

공헌배 | 입력 : 2020/09/26 [10:38]

 

나는 페이스북이나 기타의 선언들 그리고 경험에 의해 생각해 볼 때, 납득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문제들을 경험했는데, 교회들에 대한 글들이다.

 

내가 교회의 현장들을 가서 경험하거나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거나 논문을 썼을 때의 감상은 교회는 성경을 실천할 수 있는 충분한 곳들이 아니며, 날이면 날마다 회개기도와 자신들의 고백함들을 기도시간에 아뢰지만 여전히 그 행동 패턴들을 반복하는 특이한 곳이다.

 

이를테면 전도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기도하면서 전도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성경대로 살지 못해 죄송하다고 기도하면서 여전히 성경대로 살지 않는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설교를 듣지만 한번 꼬인 교인들끼리의 감정은 거의 평생을 가며, 행동 패턴에 별 다른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장로 인선이나 회게모니 쟁탈전에서의 치열함은 여전하다.

 

그게 큰 교회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교회일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며, 사람들 사는 곳이다!

 

여기에 대해 무슨 이상적 공동체라도 된 양 미화하고 싶은 모양인데, 납득되지 않는다.

 

아주 놀라운 글들은: 바울이 어떻고, 예수님이 어땠고 하는 발성들이다!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설마 자신들을 바울이나 예수님에 견주고 싶다는 뜻인가!

 

어떤 목사는 기존의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개척하여 자신의 스킬에 어울리는 교회를 개척하고 싶 단다.

 

그러면서 지금도 돈을 벌고 있으며, 돈이 모이면 개척하여 뭘 차리겠다고 한다! 그렇게 말한지가 몇 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평생의 꿈으로 간직할지, 아니면 60 넘어서야 조금 실행해 볼지 아니면 평생의 꿈만으로 남겨두면서 계속 핑계꺼리처럼 될지 알 수 없을 일이다.

 

모 법학박사가 쓴 예장 통합 교단의 정체성 카톨릭으로 가고 있다”(?)를 따르면; 관념 상의 교회, 형이상학적 교회, 현실적 문제와는 괴리가 있는 선언들 등을 잘 보여 준 셈이다. 그러면서 종교개혁은 그런 형이상학적 문제가 아니라 실생활의 문제로 돌아가야 함을 보여준 셈이다.

 

실지로는 신학 교수들도 되게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무슨 주장들을 할 때에는 추상적이며, 선언적일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기까지 하다(모 법학박사의 글 참고).

 

실질적인 교회의 모습들은: 임기 일년의 부목사들이 매년 돌아오는 연임청원에서 탈락할 것인가 연임 될 것인가?

 

담임목사의 임기가 3년인데, 더 연장될 것인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나갈 것인가?

 

교인들의 인기에 굶주린 목사들의 갖은 고민들 및 교인들 설득하기, 여론 달래기 등. 각 가지의 고민들이다.

 

실질적인 교인들의 고민들은 헌금을 얼마로 할까? 장로 투표에서 낙선하거나 권사 투표에서 낙선한 사람들의 실망감 등이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데 교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할까 봐 신경 쓰는 사람들, 그 사회조직 안에서 따돌림당하기 싫어, 뭐라도 해 보려는 사람들, 교회에 헌금을 하던 자선을 베풀던 기부를 하던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 등.

 

남모르게 봉사하던 드러내놓고 헌물 및 헌금을 하던 간에 교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중요한 사람들 또는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안 쓰면서 조용히 교회에 왔다가 조용히 교회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등 각 가지이다.

 

찬송으로는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하지만 실지로는 세상에서의 문제들이 너무도 중요한 사람들,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워도 승용차는 좋은 것을 타야 하는 사람들, 아무리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워도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면 견딜 수 없는 사람들 등.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그러나 어떤 페이스북의 글들은 교회를 향하여 회개하라느니, 욕심을 포기 하라느니, 자신은 좀 더 검소하게 산다느니 하면서 무슨 훈계라도 하듯 한 특이한 글도 경험했다.

 

정신 좀 차리면 좋겠다!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조선 말에 백인 미국인이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이 와서 꼭 같은 성경을 갖고, 꼭 같은 교리로 꼭 같은 복음을 전하였다면 과연 한국인들은 예수님을 믿었을까?

 

누군가는 말하기를 그럴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봤다. 조선 말의 한국인들은 백인 미국인들이 기독교를 들고 왔기 때문에 교회에 갔을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기적과 표적과 실적과 문명과 현상과 실증을 요구한다!

 

칼 바르트니, 폴 틸릭이니 하는 소리 등은 신학교 강단에서 듣기에는 제법 흥미롭다. 그러나 현장은 몹시 다른 듯하다!

 

적지 않은 교인들이 사회 현장에서 일을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직장 생활을 한다.

 

그들 앞에서 J. A. T. 로빈슨이니, 불트만이니, 우찌무라 간조니, 이성적 설명들이니, 신학적 사유니 등등을 말할 텐가?

 

내가 교인이라도 짜증 입빠이 날 듯하다!

 

물론 예외들도 있다: 어떤 신학교수는 대학에서 월급 받는데, 작은 교회를 맡고 있다. 어떤 목사는 부인의 직업이 교사였던 것 같은데, 좀 소신 있는 소릴 하고 다닌다.

 

더러 신학 교수 출신들 중에 대형교회에 가서 목양하던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요사이에는 시골에도 다소 신학적으로 계몽(?)된 듯한 자부심으로 교회를 맡는 목사들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교회들은 운영에 신경 써야 한다.

 

과연 교회는 신학자들에게 계몽 당해야 하는 곳인가? 과연 교회는 신학자들의 훈계들을 존중해야 하는가?

 

물론 신학의 지식들이 중요하다. 그러나 무얼 설명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어떻게 말씀을 현실 속에 육화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 것이 사실이다.

 

이점에 있어서 현지조사가 실행되면 좋을 듯하다.

 

어떤 정신분석가는 교회 현장조사에 대해 별 성과물이 없는 듯하다. 어떤 실천신학자의 글들은 되게 당위적이며 관념적인 듯하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교회에 다니는 것일까?

 

그리고 교회에서 무얼 하려 하는가?

 

이 근원적 질문부터 다시 함이 좋을 듯하다!

 

제발 현장조사들 좀 했으면 좋겠다!

 

그거 신학자들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선입견 갖지 말고, 신학교육의 경험들에도 천착하지 말고 그냥 마음을 텅 비우고 현장으로 가면 어떨까 싶다.

 

비록 관조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마음을 비워, 남을 계몽하거나 가치판단을 앞세우지 말며, 그냥 말 그대로 현장으로 가면 좋겠다.

 

신학자들의 이념주입에는 몸서리 난다!

 

제발 좀 낮은 마음으로 현지조사를 실행하여 그들의 무의식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일 생각들은 없는가?

 

제발 상아탑에 갇혀 있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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