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종교(神祀宗敎)에 대한 소고

일방적 주장들을 들어 왔다!

공헌배 | 기사입력 2020/08/11 [08:24]

신사종교(神祀宗敎)에 대한 소고

일방적 주장들을 들어 왔다!

공헌배 | 입력 : 2020/08/11 [08:24]

 일제 시대의 신사참배(神祀參拜)!

 

이는 한국교회사를 논할 때 자주 들었을 법한 주장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왠지 신뢰스럽지 못하거나 단조로운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신사참배에 대한 생각들은 너무 단조롭다. 한국의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에게 흔하게 나타났던 패턴들은 예를 들어 누가 뭘 했고, 총회가 어떻게 했으며, 선교사들의 방침들은 이랬고, 성결교단은 그랬다 등. 다 합쳐도 전(全)국민의 2%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 신흥 소종파 기독교 안에서의 내부 갈등 상황 위주로 진술들을 해 왔던 것 같다.

 

신사참배에 대한 주장 중 아주 일반적 내용은 그것이 ‘우상숭배’라는 데 있다.

 

그럼 일단 선교사의 주장을 아주 조금 들어보자:

 

여기에서 조선의 종교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불교(佛敎), 유교(儒敎), 그리고 도교(道敎)가 이 나라를 지배했지만, 점차 그들이 한때나마 가졌던 영향력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다. 논리의 단순한 철학 체계인 유교는 조상숭배를 요구하는 원칙 때문에 사람들을 강하게 끌고 있다. 조선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만연된 미신을 야기하는 이러한 관습은 강철보다 더 강하게 그들을 구속하고 있다. 아주 사소한 규칙에 관한 것이라도 격식을 차려 조상을 숭배하지 않으면 성나고 무시된 영혼의 분노로 무서운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강제된 노역이 힘들고 피곤하지만,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만일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예식을 수행하지 않는 가엾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재난을 겪게 된다.

 

여자든 남자든 그 사람은 가장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반역자 이상으로 취급 된다. 불교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는 승려들이 도시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 되었다. 그들의 사회적 서열은 조선에서 가장 하층 계급인 백정 다음이다.(중략)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 그리고 특히 무지한 사람들은 아직도 어느 정도 불교를 숭배하고 믿는다. 또한 이 계층들은 모든 종류의 수많은 악신들, 즉, 땅, 하늘과 바다에 몰려드는 신 또는 악마, 여러 질병의 신, 직업의 신을 경배하고 두려워한다. 대체로 악마인 이들은 북을 치고 종을 울리며 또 언급할 수도 없는 무수한 다른 의식을 행하며 기도자와 헌신 자(獻身者)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그들이 믿는 신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은 현세의 신들의 화신(化神)인 하늘인데, 그것을 우리가 찾을 수 있다면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바알신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나 이러한 낡은 미신을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신념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옛 풍습이나 이에 대한 여론은 종교의 외형적인 모습만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양치기 없이 황야에서 길을 잃어 ‘기운이 없고 배고프며 죽을 지경이 된’양과 같다. 따라서 기독교 복음이 이르렀을 때는 예수의 존재를 받아들여 안식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는 많은 지친 영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감리교 신자를 포함하여 여나믄 명도 안 되는 우리 일행 앞에 산적해 있던 과제가 아무리 막막하게 보였더라도, 우리들 대부분은 그때까지도 조선어 단어 몇 마디를 더듬거릴 수 있을 뿐인 상태에서 이 나라의 오래 정착된 종교 대신에 1,4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고자 했다.

 

우리는 가난한 농부들과 나이 든 여자들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성공의 요소인 승리의 확실성은 신앙의 신성함에 있었으며, 우리를 보낸 전능한 하느님에게 있었다. 이러한 생각만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L. H. Underwood,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신복룡, 최수근 역주 <상투의 나라> (서울: 집문당, 1999), 32-34). 
 

   그래서 선교사는 한국종교가 더 이상 조선 사회에서 희망을 줄 수 없었음을 주장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릴리아스 호튼 여사(언더우드 부인)는 한국종교로 ‘불교, 유교, 도교’를 꼽았다. 그런데 불교, 유교, 도교는 한국에만 있는 종교가 아니다. 적어도 불교와 유교는 외국으로부터 이식된 ‘외래종교’다. 불교는 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고, 유교는 중국 및 한국 그리고 일본에까지 전파되어 있던 철학의 사조였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 세 종교가 희망이 없었다기보다는 조선이라는 사회 자체가 희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여기서의 우상은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가 다 포함된다. 즉, 신사(神祀)만 우상이 아니라 유교의 조상제사나 불교의 의례들을 포함하여, 유일신종교를 강조하는 기독교 이외에는 모두 우상으로 뭉뚱그려진다.

 

중요한 것은 고작 10 여 년 정도 한반도에서 강세를 띤 아마테라스오미가미 신전에서의 참배들 및 부여신궁 의례들(神祀參拜)에 대해서는 그토록 심각한 반성들을 거듭하면서도 500 여년 정도의 우상숭배였던 유교 식 제례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는 데 아주 큰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제대로 반성하지 못했으며, 제대로 양비(兩非)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만일 기독교의 교리대로 한다면;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의 아마테라스오미가미 참배보다는 500 여 년 동안 지속 된 공자숭배 및 유교의 의례들에 대한 반성을 훨씬 더 통렬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상이라고 하여, 다 같은 우상이 아니다! 우상에도 결이 있다.

 

만일 나에게 아마테라스오미가미의 우상과 유교의 우상 중, 어느 우상이 더 기분 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유교의 우상을 훨씬 더 나쁘게 여길 것이다!

 

아직 많이 연구되지 않았고, 앞으로 더 많이 연구해야 할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김운회 교수의 책을 따르면; 일본 신사종교(神祀宗敎)의 뿌리는 가야(伽耶)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 1. (서울: 해냄출판사, 2006), 306-320).

 

반면 유가철학은 중국으로부터 왔다.

 

어차피 기독교 유일신교의 논리대로 하면, 아마테라스오미가미던 공자던 우상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두 우상 중 어느 우상을 더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느 우상에 대한 반성들이 더 통렬해야 하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500년 된 우상인가 아니면 고작 10년 된 우상인가?

 

어느 우상에 대한 반성들이 더 통렬해야 할까?

 

조선시대의 도시구조를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자료제공: 이창언 교수

  © 경건과 학문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대성전(大成殿)이다.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전각(殿閣)을 뜻한다. 공자를 중앙에 모시고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등 4성(聖)을 좌우에 모셔 합사(合祀)한다.

 

어느 곳을 가던 공자가 제1번이다!

 

이 심각한 중국 우상에 대한 반성을 뒤로하고, 고작 10년 정도 했던 아마테라스오미가미 의례가 그토록 억울하단 말인가?

 

이는 결코 공정하지도 못하며, 균형은 아예 없는, 즉, 자신들이 무엇에 세뇌됐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철두철미한 고대사(古代史) 망각행위에 불과하다.

 

고대의 한반도 사람들이 공자를 숭배했는가?

 

물론 더러 어떤 학자들은 고대 사로국의 의례에서도 유교 식을 애써 찾아보려 한 모양인데, 나는 그 학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주 고분군 천마총에서 발견 된 천마도는 그 재질이 나무인데, 중앙아시아 산이라고 한다. 또한 황남동 고분군에서 발견 된 유리들은 서(西)아시아나 로마 식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시야를 좀 더 넓혀야 한다.

 

교회에 출석하지만 실은 교인들도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인들이다.

 

좀 더 사회적 시각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당시의 국제정세도 고려해야 한다.

 

단지 아마테라스오미가미에 대한 의례가 우상인가 아닌가 하는 주장들은 너무 단조롭다!

 

그게 우상인 줄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

 

1933년도까지 조선예수교 장로회의 세례교인 수는 10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한반도와 제주도 그리고 만주대륙의 노회들까지 합해도 그랬다.

 

즉, 전(全) 국민의 1%도 되지 않을 수치다. 물론 소수(少數)의견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소수의견들 안에서의 의견충돌에만 집중하다 보면, 보편성을 잃고, 특히 국제관계 등은 헤아리기 힘들게 된다. 특히 역사적 맥락 파악에 있어서는 도움 안 된다.

 

질문 하나 해 보자!

 

현존하는 의례들 중, 일본국과 한반도를 놓고 볼 때, 어느 나라가 고대의 의례들을 더 많이 보존하거나 계승하고 있을까?

 

이를테면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을 놓고 볼 때 일본과 한국 중, 어느 나라에서 고대의 민속적 의례들을 더 잘 보존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물론 둘 다 기독교에서 보면 우상숭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걸 주장하는 게 아니다.

 

고대사의 맥락에서 어느 나라가 더 타당한 정당성을 갖는가 하는 질문이다!

 

기독교의 교리로 하면;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맞다.

 

너무도 당연한 이 우상숭배를 아직도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면 500년 된 우상에 대한 반성은 왜 강조하지 않는가?

 

사실 비(非)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공자숭배보다는 아마테라스오미가미 의례가 더 중요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독교인들이야 유일신을 섬겨야 하겠지만 비(非)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고대 가야의 신일지도 모를 그 의례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고대사에 대한 명분이 더 강해지는 것 아닐까?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공자숭배도 하지 않고, 아마테라스오미가미 의례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의 맥락에서는 공자보다 신사의례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정말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의례는 유교 식 제사와 공자숭배에 있다.

 

초기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유교 식 제사 의례들을 우상숭배로 여겨, 반대했는데 바로 여기에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특성이 내재 되어있다.

 

단지 우상이어서 만이 아니라 중국숭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신학적 단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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