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의 교훈

역사가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헌배 | 기사입력 2020/03/30 [14:35]

명성황후의 교훈

역사가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헌배 | 입력 : 2020/03/30 [14:35]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이 뜻은 역사의 사태들이 자연과학의 법칙들처럼 항상성 있게 반복된다거나 딱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뜻한다.

 

그리고 역사는 통계적으로 완벽하게 복원되지도 않는다. 그저 역사는 역사일 뿐이다. 물론 역사학은 자연과학의 기법들도 활용한다. 그러나 역사의 반복성은 자연과학과 같은 반복성이나 통계적 정합성 등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차라리 역사는 종교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의하면, 자연에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이란 것들은 다만 인간들이 찾아 낸 가설들일 뿐이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해, <논리철학논고>대로 하면, 자연과학은 비()논리이다. 마찬가지로 운명도 비논리이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의하면; 고대인들은 운명 앞에 멈추어 섰다고 한다. 더 쉽게 설명한다: 고대인들은 오컬트(秘學)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운명이나 형이상학적 실재 앞에 멈추어 섰지만 근대의 서유럽 사람들은 피지컬의 영역에 속하는 자연과학 앞에 멈추어 섰을 뿐만 아니라 그 자연과학을 법칙처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운명이나 자연과학은 모두 비()논리이다. 그러면 비트겐슈타인은 자연과학을 운명보다 더 정확하거나 더 우월하다고 여겼을까? 그럴 필요가 없다!

 

이에 비교할 때 역사학은 무엇일까? 헛소리들의 남발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오늘날에도 역사학을 배우는 걸까? 그거야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아야지!

 

그럼 공헌배 너는 왜 역사공부를 했는데? 재미로!

 

역사학은 피지컬 한 영역에서의 통계적 정합성들을 많이 들이댈 수 있을까?

 

I do not know!

 

그러면 역사학은 오컬트(秘學)의 영역에서는 말해질 수 있을까? No!

 

오컬트는 말해질 수 없는 영역들의 그 무엇들이기는 한데,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해제들을 보면, 비트겐슈타인은 그 영역도 머릿속에는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역사학은 무엇인가?

 

글쎄! 역사학은 사회과학적이기는 한데, 내 생각에 역사학은 종교학과 같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역사학 그러면, 실증사라고 하던 데, 그런 게 어디 있는가? 그건 언어철학을 제외한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언어철학(논리철학)을 인정해버리면, 실증사야 말로 헛소리들의 나열들일 뿐이며, 상상적 추론들의 나열들에 가깝다.

 

이미 에드워드 카(E. H. Carr)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역사학의 성격들을 잘 말해주었다. 에드워드의 주장대로 한다면, 역사는 역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며, 객관이란 것들은 있기 힘들 뿐만 아니라 역사는 모름지기 사가가 붓을 들 때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면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종교가 아니지만 역사학은 종교학들처럼 비()논리적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대로 하면, 자연과학도 비논리인데, 역사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역사관을 신앙화 될 수도 있을 영역처럼 다루기도 한다.

 

사실 역사와 신앙은 구분되는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또 역사가들이 내 말을 들으면 기분 상하겠지만 사실 역사학들은 불확실한 실재들에 대해 가설들을 나열해왔던 상상력들의 학문이다. , 역사학이란 심리의 유추들에 의해 해석되는 학문이지, <철학적 탐구>를 만족 시킬 만한 이해의 학문이 아니다!

 

역사학 특강을 여기서 계속해대는 것은 소모적이다. 그러면 나는 왜 이와 같은 발성들을 지껄이는가? 내가 무식해서 그렇다! 무식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설명을 좀 듣고 싶어서이다.

 

나는 TV시청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지난 번 북미정상회담의 장면들 중 일부는 시청했다: 김정은 위원장 왈: 역사적(통역사 왈: historical).......

 

즉 김정은 위원장께서는 역사를 몇 번 거론하신 듯했다.

 

이게 뭐지! 사실 정치가들의 발성들은 알아듣기 힘들다. 그런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역사.......’라고 돼 있다!

 

그래서 어쩌면 과거 한 때나마 역사교신자이기도 했을 법 했던 공헌배는 몇 줄 쓰기로 했다.

 

모델설정이 좀 곤란했는데, 오늘날의 사태들에서 뭔가 좀 연상되는 분이 있어,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참고자료로, 말 그대로 참고자료로만 제시해본다.

 

그녀는 명성황후 민자영이다.

 

민자영의 사진을 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민자영을 곁에서 보았던 릴리어스 호튼 여사의 민족지에 따르면, 민자영은 지적 이지미에 예리한 반론들과 함께 여타의 외교관들을 코오너로 몰아넣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정은 형편없었다. 비리, 부패, 뇌물, 미신, 무능, 차별, 민중들의 불만 등등 여러 개의 수식어들을 붙일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민자영은 굳이 일본이 건드리지 않아도 죽이려고 노리는 자들이 많았는데, 하필 일본에서 죽이는 바람에 모든 책임과 원망들을 일본에서 떠안았다. 원수지간이었던 대원군을 끌어 들여보기는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 날의 참변을 선교사의 시각에서 옮겨본다:

 

1895108, 아침에 우리는 왕궁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 이 시간은 조용한 시간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소리는 우리들에게 틀림없이 불길한 사건의 징조라는 것을 알게 했다.(중략) 다만 어떤 일본 군대들이 새벽 3시에 왕의 아버지이자 또한 왕비의 가장 큰 정적인 대원군(大院君)을 호위하여 그곳에 도착했고, 미국인인 다이(William M. Dye)장군의 지휘 하에 있던 조선인 왕궁 경호원을 쫓아내고 그들이 왕궁 문을 지키고 있다는 것만이 분명했다. 오후가 되어 조선인 양반을 만났을 때 그가 완전히 놀란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해 준 것은 왕비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서 이 뉴스는 확실해졌다.(중략) 미국인에게 훈련받은 조선의 군대는 일본인에게 훈련받은 자들로 거의 교체되었다(L. H. Underwood,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신복룡, 최수근 역주 <상투의 나라> (서울: 집문당, 1999), 182).

 

그래서 힘도 없던 황후가 어눌한 조선군대로 왕궁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자신의 집안 경비조차도 용역으로 안 되자, 수비를 하나마나 한 자들로 교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말 아니겠는가? 살고 싶었으면 임오군란 때처럼 도망했어야지!

 

눈치가 빠른 사람이 예언자 예레미야”(<경건과 학문> 2019727)라는 설교를 읽었다면, 어떻게 해야 왕비가 살 수 있을지 바로 나온다.

 

회개(悔改)하면 된다. 여기서의 회개란, 조선왕조를 부정하는 것에 있다.

 

, 구테타를 일으킨 이성계는 자신의 상관 최영을 죽이고 나라를 세웠는데, 그 정부는 친명사대주의 정책들을 썼다. 바로 이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해야 한다. 일개의 왕비 개인이 할 만 한 일이 아니다.

 

둘째는 일본에게 사과해야 한다. 죽기만큼 싫겠지만 그게 살 길이었다.

 

도대체 무얼 사과하란 말인가? 오히려 사과해야 할 쪽은 일본 아니겠는가? 그렇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었으면 일본에게 사과해야 한다. 사과라니! 미쳤는가? 그래, 미쳐야 산다.

 

무얼 사과하란 말인가?

 

첫째, 임진왜란(블로꾸게이쪼노 에끼)때에 명나라 정복에 협조하지 않았던 일을 사과해야 한다. 즉 일본에서 가도입명이라는 의견을 제안해 왔을 때, 일본과 한편이 되어, 명나라로 쳐들어가지 않았던 일을 사과해야 한다. 즉 그 당시의 조선이 살 길은 일본에게 길들을 열어주어 일본이 마음 놓고 명나라로 쳐들어 갈 수 있도록 협조했어야 조선이 안전했다. 그러나 구약의 예레미야가 아닌 이상 이 정도를 알아차릴 만한 정치인들은 없었을 듯하다.

 

둘째, 고대 백제왕국의 설움들을 헤아리지 못한 일들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물론 일본은 그런 사과까지 받으려 할 리가 없다. 그래서 이 분야는 약간 돌려서 해야 한다:

 

, 우리 조선왕가의 본은 전주(全州)인데, 만세일계의 천황폐하에게 경의를 표하나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정도의 생각까지 해낼 만한 왕궁의 인물들은 아무도 없었을 듯하다. 다시 말해 예레미야와 같은 천재 예언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생각해 낼 수 없을 일이다.

 

그래서 똑똑하신 민 왕비께서는 머리를 쓰셨다. 청나라, 러시아, 미국 등을 돌림빵으로 이용해가면서 일본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청나라, 러시아, 미국 그 어느 나라도 조선에게 이용당해주지 않았다. 미국은 조선과의 무역을 하고 싶어 했겠지만 그 당시의 조선은 그 투자가치가 너무 없어, 하나마나 한 나라였다.

 

러시아는 일본을 막으면서 부동항을 얻고 싶었겠지만 일본이 이를 가만 둘 리 없다. 그리고 청나라는 조선에게 상전노릇하면서 조선의 취약한 틈들을 이용하여 왕창 뜯어먹으면서 일본을 막고 싶었겠지만 웃길 소리다. 다른 나라는 바보인가?

 

그러니까 이와 같은 사태에서는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딱 하나의 견적밖에 없다. 일본과 손잡고, 대동아공영권을 잘 하여, 개혁에 성공하는 길 뿐이다. 그러나 민 왕후는 이 도안들을 가장 싫어했다. 사실 이게 그나마 가장 손해가 작은 데, 이걸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 죽었다.

 

어차피 조선은 망할 나라였다. 그러나 망하더라도 가장 손해가 적은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왕후는 가장 손해가 큰 방법으로 망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을 자극하고, 일본에게 모욕을 주는 방법이었다. 최악의 선택이었다.

 

단군을 종교처럼 이용한 것은 대종교일 수도 있는데, 사실 그 당시에 필요했던 것은 대종교가 아니라 아마테라스오미가미였다. 그게 싫으면 백제교를 찾았어야 했다. 그런데 조선말에는 중국의 영웅을 모시는 관우에게 제사를 올렸으니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 아니겠는가?

 

다시 역사를 생각해보자, 조선이 왜 관우에게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 왜 공자나 맹자에게 제사를 지내는가? 그러면서도 고조선을 운운할 나라가 될 만 했는가? 이보다는 차라리 연개소문이라든가, 동명왕이라든가, 혁거세라든가, 칭기즈칸에게 제사를 올리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역사적 종교로 말할 것 같으면, 당연히 유대교이다. 유대교에서는 역사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2천 년이 지나도 과거를 생각하면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유대교다. 조선이 중국 사람들에게 제사를 올린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해도 바람직하지 않다.

 

유대교의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신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신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열왕기상 18:21).

 

즉 그 당시 북이스라엘의 오므리왕조는 고대 문명의 강국(?) 페니키아의 공주와의 정략결혼까지 한 사태였는데, 느닷없이 엘리야가 출현했다. 그리고서는 이스라엘의 국민들에게 질문했다: ()이스라엘의 국민들이여, 바알인가 야훼인가? 선택하시오!

 

북이스라엘에서는 선택하기를 망설였다.

 

조선말의 왕후 민자영은 망설이다가 죽었다. 이쪽에 붙을까 저쪽에 붙을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 나라를 이용할까 저 나라를 이용할까?

 

그러나 그 어느 나라도 이용당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가운데 민자영은 머뭇머뭇 망설이다가 죽었다. 참으로 슬프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역사종교의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답은 뻔하다. 이씨 왕조는 고대사(古代史)로부터의 철두철미한 배신으로 세워졌다. 다시 말해 잘못 세워진 왕조였으며, 잘못 일으킨 혁명이었다. 이 근원적 인식의 변화 없이는 조선이 안전할 수 없었다. 그런 회개(悔改)를 하기에 민자영은 너무 약하다.

 

사실 역사를 종교처럼 해버린다면, 굳이 힘이 없더라도 일본의 편에 서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종교에 있어서 그 당시에는 일본만큼 명분이 좋은 나라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믿든, 믿지 않든 관계없이 조선에서 그렇게 해석해버리면 된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그 당시의 일본은 힘까지 갖추었다. 그러나 역사관이 근원적으로 굽어버렸던 조선은 이 좋은 기회들조차도 최악의 사태들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답은 아주 쉽다: 고조선을 멸망시킨 나라가 어디인지 보면 된다(前漢).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까지 쳐들어 온 나라가 어디인지 확인해 보면 된다().

 

그리고 백제의 남은 자들이 어디로 피난 갔는지 찾아보면 이 역시 답이 쉽다(日本).

 

, 역사교 신자라면, 일본의 힘이 미약했을지라도 최선을 다해 일본을 도우면서 중국을 쳐야 했다. 그러나 조선은 정 반대의 선택들만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게 판단이 서지 않는지 오늘날까지도 머뭇머뭇 기웃기웃 하지 않는가?

 

중국이 강하든 말든 관계없다. 우리의 주적은 무조건 중국이다. 이것만 확실하게 하면 된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설령 중국의 힘이 세고, 일본의 힘이 약하더라도 우리는 일본의 편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도 고맙게도 미국이 계시지 않는가? 이건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 답은 매우 뻔하다. 친미(親美)정책을 택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없다!

오죽했으면 공자의 81대 손 씩이나 되는 내가 서양에서 생성 된 그리스도교를 전도하고 다녔겠는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다. 그리고 믿음의 가치 말고, 굳이 세속의 가치로 하더라도 중국이 싫어, 예수 믿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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