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일까?-플라톤의 ‘폴리테이아(政體)’ 제4권에 견주어

패렴의 진원지를 모르는가?

공헌배 | 기사입력 2020/03/17 [08:34]

정치란 무엇일까?-플라톤의 ‘폴리테이아(政體)’ 제4권에 견주어

패렴의 진원지를 모르는가?

공헌배 | 입력 : 2020/03/17 [08:34]

 

역사를 통해 경험한 정치인들은 도덕적 사람들이 아니었다. 역사가 말해주는 정치가들이란, 악역(惡役)들을 감당해주고, 손에 구정물들을 묻혀가면서 자기집단의 이익들에 유익을 주는 자들이다.

 

더 쉽게 설명하면, 자기 나라를 배 불리기 위해 남의 나라들을 사정없이 쥐어짜는 자들이 역사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요사이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정치가들에게 무슨 도덕/군자들 식의 잣대로 심판해댄다. 이게 무슨 일이지? 사실 정치인들의 관행들을 따르면, 정치인들은 도덕적 모범가들이 아니다. 모름지기 정치인들이란 유능해야 한다.

 

바람을 피워도 좋고, 세컨드, 써드 등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있어도 용납될 수 있으며, 까짓 거 재산들 좀 모아도 눈 감아 줄 수 있고, 기분 나쁘면 경쟁자들을 두들겨 패주어도 그럭저럭 납득해 줄 만한 계층이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하나, 이것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는 데, 국익이다. 즉 바람피워도 좋고, 욕을 좀 잘해도 괜찮으며, 성질이 괴팍하여, 부하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질 수도 있겠지만 단 하나의 직무: 국가를 강하게 만들며, 타국을 쥐어짜는 한이 있더라도 자국의 실리만큼은 조금도 양보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자국의 국토를 확장해나가야 할 확장적 이데아에 있어서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유능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게 대체로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정치의 패턴이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나라가 있으니, 대한민국이다. 이 나라의 언론들은 정치인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성직자들에게 적용하시라! ·고등학교의 윤리선생이나 스님들이나 수행하는 고행자들에게는 타당할지 모르겠는데, 어찌 사업가들이나 정치인들에게 도덕을 잣대로 그리도 자주 들이대는가! 너무 놀랍다!

 

정치인들은 도덕시험치려고 등판 된 자들이 아니다. 모름지기 정치인들이란 무엇보다도 국익이라는 이기성에 기인된다. 도덕적 결함은 좀 뒤로해야 한다. 즉 정치인들에게는 유능한 능력들, 국가에 산재한 문제들, 세계사적 통찰력, 경제적 해결책 등 문제의 해결능력들에 있어야지, 무슨 초등학교 교사들에게나 적용할법한 국민윤리규정 등에 이끌려 그들을 심판한다는 자체가 좀 이상하다. 마치 언론들의 장난과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플라톤의 정체(폴리테이아)를 보면, 진짜로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절제이다. 플라톤의 책에 의하면, 정치인들에게는 절제를 요구했다. 나라의 수호자들(정치인들)은 특혜가 아니라 엄격하게 통제되는 공동생활을 강요당한다. 굳이 수도원이라는 말이 쓰인 것 같지는 않지만 마치 수도원처럼 정치인들(나라의 수호자들)을 격리시켜서, 공동생활을 하게 하고, 절제되고 훈련 된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론(哲人政治論)은 철학자들이 하는 정치를 뜻하는 게 아닌 듯하다. 즉 철학자나 소피스트들이 모여, 하는 그런 정치의 차원으로 보기는 어렵다. 철인정치(哲人政治)란 일종의 이데아적일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고대 헬라스 사회에서 실행되기에는 불가능했거나 엽기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정치였을 듯하다. 이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요점을 잡자! 플라톤의 주장대로 하면, 민주주의는 쓰레기이다. 그럼 플라톤은 어떤 정치를 원했는가! 이게 정확할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플라톤의 정치 아젠다를 요사이 식으로 표현해본다면, 전문가들(현자들?)의 정치다. 즉 훈련되고 교육받은 우수한 인재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걸 뜻하는 데, 이는 요사이 대한민국과 같이 명문대 출신들이 저마다 나 잘 났네하면서 등판 된 그런 정치유형이 전혀 아니다. 소위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란 정서에 호소하고, 국민여론에 호소하며, 저마다 나 잘 났네하여, 표몰이로 등판 된 사람들인데, 이런 스타일을 플라톤은 아주 나쁘게 여긴다.

 

플라톤의 책에 의하면, 국가의 구성원들에게는 저마다의 역할(포지션)이 있는 데, 이게 마치 음악의 화음처럼 잘 조화되어야 한다. 그럼 이 가운데에서 정치인들(국가의 수호자들)은 어떤 자들이어야 하는가? 이게 나한테는 좀 어렵게 읽혀졌는데, 내 이해가 옳은지 부족한지도 잘 모르겠는데, 프로가 정치를 해야 한다. 어중이떠중이나 아마추어나 통빡 잘 굴리는 그런 류들이 정치하면 개판 된다.

 

그럼 그 정치의 프로들은 기득권을 가졌기 때문에 특혜들을 누려야 하는가? 전혀 아니다! 바로 이와 같은 프로들에게 요구되는 덕목들이 절제이며, 이들에게는 마치 수도사들과 같은 금욕을 요구한다. 뿐만아니라 이들은 세속과는 다소 격리되어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정치프로들의 엄격한 훈련들과 이로 인한 전문성들 그리고 세계를 보는 안목 등이 결합하여, 전체 국민들의 공익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 다수의 행복을 위해, 국가의 수호자들(정치인들)은 고난의 행군들을 감행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해야 하며, 격리되어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데이만토스는 정치인들이 결코 행복한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고 여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에서는 공부 좀 하거나 돈 좀 생기거나 고시에 합격했거나 뭐 좀 잘 하면, 저마다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경향들이 있는 듯하다. 심지어는 이게 이공계에서 컴퓨터 백신 만든 전문가일지라도 그랬다. 그러나 플라톤의 책에 의한다면, 컴퓨터 백신 잘 만드는 지식은 정치적 통전성이나 정치를 잘 할 만 한 지적 능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플라톤 식으로 하면, 아무나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굳이 이를 비유로 설명하면, 어떤 운동선수들이 일반인들 백명에게 코칭 받는 것과 전문가 한명에게 코칭 받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낫겠냐에 비교되기도 한다. 즉 일반인들 백 명이 코칭해 봐야 별 볼 일 없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란 이타적 사람들인가? 별로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견준다면, 역시 정치인들도 이기적인 동물들이다. 왜 그럴까? 도킨스는 생명체들은 유전자들의 설계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는 데, 그 유전자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 어떤 집단에서 스스로 감소시키거나 희생하거나 죽음을 감당하는 것들도 실은 유전자의 설계에 의한 집단 이기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즉 집단을 살리기 위해, ()가 희생되는 이기성에 기인했다고 한다. 이에 대입하면 정치인들의 금욕(?)생활도 실은 집단(국가)이기주의를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인들의 절제주의는 프로적 정치가 될 수 있을까? 상당부분 설득력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를 인류사의 어떤 모델에 비유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불교의 사찰 등에 견줄 수 있다.

 

즉 절제 된 사람들의 공동생활들을 참고할 수 있는 곳들이다. 그런데 인류사를 고려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혼인도 하지 않은 채 공동생활을 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재산들은 어마어마하다. 대한민국의 사찰들 역시 재산들이 결코 적지 않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종교적 금욕주의를 생에의 의지에 대한 부정이라고 아주 올바르게 해석했다(라인홀드 니부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이한우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1992), 69).

 

이기적 욕망을 생애의 의지에서 분리해내지 못한 기독교와 불교의 금욕주의자들은 욕망을 절멸시키려 하다가 단지 완전한 육체적 절멸만을 중단했을 뿐이다(라인홀드 니부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이한우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1992), 71).

 

그래서 금욕주의나 플라톤 식 절제주의도 어느 정도의 타당성은 있겠지만 절대적 타당성은 갖지 못한다고 여겨야 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는 뇌물을 근절할 수 없단 말인가! 그대들의 조상들을 보시라! 뇌물들의 근절들이 가능하겠는가? 유전자 또는 관습적 무의식을 따라, 한국 사회에서의 뇌물근절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의 집단무의식들은 정말 무섭다! 그러나 이게 정당한지 몹시 의문이다.

 

()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게 망하여, 70 여 년의 포로기를 겪었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의 구약신학을 따르면; 이스라엘은 상당한 반성의 기회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럼 한반도는 어쨌는가?

 

고려는 약 80년 동안 몽고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혁명을 일으켜, 친중사대적모화관(親中事大的母華觀)으로 갔다: 조선 왕조 건국!

 

이는 구약의 패턴과는 매우 다르다!

 

국민여론이라는 것은 가변적이다.

 

패렴의 진원지가 밝혀진 마당에도 자꾸 대구 패렴인 듯 여긴다!

 

그 국가사회의 성패는 지식인들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반도의 어떤 지식인들이 왠지 신뢰스럽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를 섬기는 것이 마치 애국인 것처럼 여겼던 지식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과연 이게 애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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