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세습은 시대정신에 어울리지 않는가?

어느 인터넷 기사를 읽고...

공헌배 | 기사입력 2020/01/16 [10:42]

교회 세습은 시대정신에 어울리지 않는가?

어느 인터넷 기사를 읽고...

공헌배 | 입력 : 2020/01/16 [10:42]

 

누가 기사를 올려주어, 잠깐 읽었다. 그 내용은: 세습은 이 시대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가?

 

그럼 시대의 정신은 누가 만드는가? 이게 중요하다.

 

디 유나이티드 킹덤에서는 아직도 왕이 존재하며, 귀족도 있고, 귀족의 자녀에게 특혜도 준다. 당연히 의회에는 상원과 하원도 있다.

 

물론 기사(나이트와 데임)도 있다.

 

지금이 중세도 아닌데, 기사가 있다.

 

흔히 세계사 공부할 때, 중세의 몰락을 기사계급의 몰락이라든가, 교황권의 약화라든가, 십자군 원정에서의 큰 성과 없이 시간을 오래 끌었던 일이나 지방 국가들의 부흥 등. 이와 같은 사태들을 열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정신은 토인비의 표현대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지방 국가와 종파(분파)교회로의 이행이 된다. 이런 것이 일종의 시대 상 또는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도 디 유나이티드 킹덤에서는 기사의 작위를 주지 않는가? 그리고 국명도 리퍼블릭(공화국)이 아니라 킹덤(왕국)이다.

 

그럼 디 유나이티드 킹덤은 시대정신을 거슬러 행동하는 국가인가? 소위 청교도 혁명이니, 산업화의 선두주자이니 했던 그 나라가 아직도 국왕제를 한다.

 

시대정신!

 

그래, 말씀 잘 하셨다!

 

어느 분의 책에 의하면; ‘시대정신에 대해 설명한 대목도 있더라, 그 설명을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논문에서 표준 예(paradigm)’라는 단어를 썼다. 시대정신과 표준 예는 좀 다르다. 이에 대해 여기서 설명하기는 싫다.

 

나는 가끔 앨빈 토플러의 책을 떠 올린다: 이를테면 정보혁명이니, 생태 히틀러니, 3의 물결이니 등등.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토플러는 자기 환상에 빠진 사람과 같이 느껴지더라! 어찌 보면 세상이 제 맘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자아도취증과 같다고나 할까?

 

좀 심하면 판타지 소설 읽는 기분까지도 들더라!

 

이슬람 권을 가 보시라! 아직도 음식금기가 존재한다.

 

마빈 해리스의 주장대로 하면; 일종의 경제적 요인 때문에 돼지고기를 금하는 듯 하는데, 그럼 중동지역도 아닌 곳에서는 왜 돼지고기를 금하는가!

 

, 중동을 벗어나서도 이슬람교 신자들은 돼지고기를 금한다!

 

목회지 계승이 이 시대의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구?

 

그것은 조막만한 나라, 대한민국의 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가면 많이 다르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목사의 자녀가 그 교회에서 목회하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서조차도 목회지 승계에 대한 체감온도가 교파에 따라 차이난다.

 

이게 어떻게 시대정신인가?

 

예장 통합 교단이 전체사회인가?

 

예를 들어; 중세의 서유럽에서 십자군 원정이 장기화 되면서 교황권에 타격을 입혔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대정신이라 말 할 수 있다. 물론 동방교회 쪽은 사태가 달랐지만 적어도 프랑크 왕국 또는 갈리아 지역의 국가 또는 과거의 브리타니아 지역 등에서는 일종의 시대 상 또는 시대정신으로 명명될 만한 요인들이 있다.

 

그러나 조막만한 나라의 반동가리 국가에서 그것도 수백 개의 교파 중, 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의 감정적 정서가 과연 시대정신인가? ∼∼

 

로마 가톨릭 교회를 생각해보시라!

 

프로테스탄트 종파로부터 엄청난 신학적 공격들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전통을 유지하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칼뱅의 <기독교 강요> 4권을 보면, 가톨릭 신학의 성만찬 이론에 대해 엄청난 비판을 했다. 칼뱅의 비판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까지도 있다:

 

     “미사는 교황제도 가운데 가장 무서운 괴물이다.”(마르틴 루터가 검증한 슈말칼트 신조(1537): 이장식 편, <기독교 신조사>, (서울: 컨콜디아사, 1979), 83).

 

 

        “금잔에 넣어드리는 미사는 세상의 모든 왕과 백성들을 졸고 어지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야수들보다도 더 어리석은(중략) 확실히 사탄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포위하고 함락시키기 위해 만든 무기 가운데 이 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J. Calvin, <英韓 기독교 강요>, , 편집부 번역 (서울: 성문출판사, 1990), 877).

 

이렇게 공격했다고 하여, 가톨릭교회가 그들의 성만찬 예전을 바꾸었을 듯 한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눈 하나 까닥 안했지 싶다!

 

도대체 시대정신이 무엇인가?

 

디 유나이티드 킹덤을 보자: 아직도 국왕이 존재한다. 재판을 할 때 가발을 쓰며, 의회가 열릴 때도 의장이 가발을 쓰는 모양이다. 상원과 하원과의 구별이 있으며, 귀족과 기사가 있다.

 

반면, 한반도는 조선시대 때부터도 과거제도가 있었다. 일종의 공정경쟁이라도 부추긴 모양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영국에서는 과거제도가 없었다. 시험제도의 일반화는 조선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은 오늘날까지도 귀족의 경우, 성적에 상관없이, 옥스퍼드대학교나 캠브리지대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있는 듯하며, 아마도 옥스퍼드대학교는 교수채용 인사권이 영국 귀족들에게 있는 모양이다.

 

만일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이 실행한다면 난리 날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과연 조선시대의 교육경쟁력이 영국보다 더 뛰어났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경쟁력이 영국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시는가!

 

영국에 비교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영국에 비교하면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야 말로 얼마나 공정한가? 영국에 비교하면 한때나마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는 얼마나 치열했는가?

 

그래서?

 

그래서 대한민국이 영국보다 시대정신을 더 잘 이행하고, 대한민국이 영국보다 시대정신을 더 많이 주도해왔던가?

 

서울시의 인구는 천만이 넘는다고 한다. 반면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는 50만 정도 사는 모양이다. 그러면 에든버러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중, 어디가 세계적으로 더 유명한가?

 

에든버러의 인구는 대구 인구의 1/4 내지 1/5 수준 아니겠는가? 그래서 대구의 경북대학교를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대학교와 비교하는 사람 있던가!

 

인구로 하면 에든버러보다 대구가 월등하게 많고, 입시경쟁으로 치면, 대한민국은 유치원 때부터 대입시험을 염두에 두고 가르치는 나라 아니겠는가?

 

그래서 여러분은 대구의 모 국립대가 에든버러대학교보다 더 낫다고 믿는가?

 

역사로 해 볼까?

 

옥스퍼드대학교가 더 유명한가 성균관대학교가 더 유명한가?

 

하버드대학교가 더 유명한가 영주의 소수서원이 더 유명한가?

 

역사적으로는 하버드보다 영주의 소수서원이 더 오래됐다!

 

물론 옥스퍼드는 중세에 세워진 학교라 성균관보다 오래됐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스위스의 바젤대학교와 비교할 때, 성균관대학교가 더 유명한가?

 

아니, 인구 50만 가량이 사는 에든버러와 비교할 때 성균관대학교가 더 유명하다는 보증이 있는가?

 

그러나 한반도야 말로 조선시대 때부터 과거제도가 있었고, 오늘날의 한반도는 얼마나 치열한 입시경쟁에, 어릴 적부터 대입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비해, 영국은 아직도 귀족들에게 특혜를 주는 사회이며, 작위(나이트 또는 데임)를 주는 사회이다.

 

그런데 세계사 공부해보니까, 시대정신은 오히려 영국 쪽에서 많이 주도한 면들이 엿보인다.

 

, 그럼 이제 질문해보자!

 

예장 통합 교단은 시대정신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어떤 시대정신이 목회지 계승을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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