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던 나라, 불행했던 시절

역사의 교훈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8/21 [14:41]

망했던 나라, 불행했던 시절

역사의 교훈

공헌배 | 입력 : 2019/08/21 [14:41]

 

조선시대를 볼 때, 중국(나라)이 망하기 전에, 조선이 먼저 고통당했다!

 

구한말을 볼 때, 중국을 침공하기 전에, 조선부터 점령했다!

 

따라서 조선은 중국점령의 통로였다.

 

구한 말 미국의 팽창/무역 정책을 볼 때, 그 당시 조선은 교역의 량이 미미하여, 별 다른 경제적 이익들이 없었다. 그래서 조선은 청()나라로 가기 위해 지나다녀야 할 정착장과 비슷한 곳이었다.

 

이와 같은 교량국가를 중국에서는 어떻게 여길까?

 

두말할 필요 없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완충지대 내지 방어선 또는 저지선 정도로 여길 것이 너무도 뻔하다!

 

과거사를 볼 때,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존중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의 안전에 조금이라도 위협받을 때 신경 썼다. 고려 말, 홍건적은 자신들에게 별 다른 피해를 주지도 않은 지역인, 고려(한반도)로 쳐들어 와, 고려를 굴욕 시키며, 소위 한반도 길들이기를 한 듯하다.

 

그러나 특이한 사태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사태들을 볼 때, 조선이 망하거나 조선을 점령하면, 중국도 망했다. , 조선을 먼저 점령하여, 공출한 나라치고, 중국침공에 실패한 나라는 없었다!

 

(), 일본 모두 그랬다. 이와 같은 역사의 사태들과 지정학적 요소들을 고려할 때, 조선시대의 사태에서 조선이 어떻게 처신했어야 가장 안전했을까?

 

답은 너무도 뻔했다: 중국을 미워하는 편이 가장 유리했다.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그랬다. 조막만한 나라의 힘없던 왕조였지만 과거사에서는 그게 최선책이었다.

 

가령, 일본이 ()나라로 가려하니, 길 좀 빌려달라고 했다.

 

어떻게 하는 편이 가장 안전했을까?: 일본과 한편이 되어, ()나라로 쳐들어가야 했다. 이보다 더 좋은 방편은 없었다.

 

그러나 조선으로서는 이게 가장 불편했던 것 같다. 차라리 조선은 명()나라의 방패가 되어, ()나라를 대신하여 매맞아주는 나라가 되려했다.

 

이럴 경우, 일본이 명()나라에게 퍼부어야 할 분노를 조선 땅에서 발산하도록 만든다. 아니, 어떤 점에 있어서는 명나라보다도 더 가혹하게 짓밟을 수도 있다.

 

, 일본의 입장에서는 조선 때문에 명나라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조선에서 허송세월해야 하니, 그 모든 책임과 그 모든 분노를 조선 땅에 쏟아 붓는다. 이럴 경우, 분노는 더욱 더 증폭된다.

 

바로 이게 명()나라의 방패이길 자처했던 조선의 운명이었다.

 

이와 같은 사태를 반복하고 싶은가?

 

그 다음부터는 순서가 바뀌었다. 후금은 명()나라부터 손보는 게 아니라 조선부터 손 봤다! 조선을 때려 부셔놓고, 조선으로부터 조공과 노예들을 받아들여, 그 이익으로 국력을 신장한 다음, ()나라는 명()나라로 쳐들어갔다.

 

다시 말해, 조선부터 조져놓고, 명나라를 점령했다. , 일본이 시도했던 일을 청()나라에서 열매로 거두었다.

 

이럴 경우, 조선이 가장 덜 손해 보는 길은 무엇이었을까? 이 답도 너무 쉽다. 반중친후금(反中親後金)정책이다.

 

그러나 이 현상 역시 조선으로서는 너무도 괴로웠던 모양이다. 도대체 조선인들의 무의식 속에는 무엇이 있어서, 이토록 중국한테 호의적이었을까?

 

고려 때에는 반()몽고적이었고, 조선 때에는 반일(反日), 반금(反金)적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애국(愛國)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애국이 아니라 애중(愛中)이다!

 

19세기에 드디어 조선인들의 상징인 상투와 비녀를 푸는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게 조선인들에게는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20세기에는 조선을 밟으면서 조선인들에게 충성을 강요하여, 중국으로 쳐들어갔다!

 

임진왜란(분로꾸게이쪼노 에끼) 때의 소원을 드디어 20세기에 실행했다.

 

조선 사람들에게는 이게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고대의 백제나 고대의 고구려를 생각한다면, 20세기의 그 사태는 고통이라기보다는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고대사의 재()해석이 될 수도 있을 법 했다.

 

물론 실정적으로는 괴로웠을 것이다. 전쟁이 실행되면, 당연히 많은 물자가 들고, 그에 따른 국민의 희생들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희생들을 최소화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편은 약 300년 전에 있었던 임진년의 선택에 있었다.

 

, 일본이 마음 놓고, ()나라를 쳐들어 갈 수 있도록 조선에서는 길을 열어 줄 뿐만 아니라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어, 일본의 군인들이 원 없이 명나라와 전쟁할 수 있도록, 조선에서는 최대한 일본에게 협조하고, 일본의 승전을 기원하며, 일본이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일본이 이겨서, 중국()이 망하도록 기도해야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가 조선에게는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당연히 조선으로서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태가 이와 같았다면, 20세기의 그와 같은 사태들은 굳이 겪지 않아도 됐지 싶다!

 

더 쉽게 설명하면; ()나라가 16세기에 일본한테 침공 받아, 망했다면, 조선은 20세기에는 그와 같은 고통들을 겪을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말해, 16세기에 못한 숙제를 20세기에 한 것이다!

 

그래서 실질적 애국의 길은 친일(親日)에 있었다. 친명(親明)이 아니었다.

 

조선시대로서는 그랬다. 특히 전주 이씨가 왕조인 그 사회로서는 더욱 그럴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일본의 천황은 백제왕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요약한다: 역사의 교훈으로 볼 때, 중국을 치기 전에 먼저 손 봤던 나라는 한반도에 있었다. 이걸 피하고 싶으면, 반중(反中)적 태도를 확실하게 하고난 뒤, 중국의 멸망과 중국의 해체와 중국의 몰락을 소원하며 이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함에 있다!

 

굳이 한반도를 조사해 본다면, 한반도의 구성원들은 마치 고대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처럼 혼혈 화 된 땅이다. 문화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종적으로도 이게 심한 곳이다.

 

특이하게도 정책적으로는 중국을 의지해왔고, 그게 번번이 망했던 지름길이었다!

 

더 쉽게 설명 한다: 중국을 점령하기 전(), 한반도부터 조지면, 중국은 덩달아 망했었다. 이게 역사다!

 

이와 같은 사태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태도를 잘 해야 한다. 그게 살길이다!

 

나는 중국이 싫던데, 여러분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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