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倭人)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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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헌배 | 기사입력 2019/08/03 [11:39]

왜인(倭人)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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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헌배 | 입력 : 2019/08/03 [11:39]

 

* 본 강의는 2012108침략의 명분은 타당할 까요?”라는 제목으로 케리그마신학연구원(www. kerygma. or. kr)에서 인터넷으로 한 것이다. 이를 약간 수정하여 아래에 싣는다. 이 강의의 구체적 내용들(각주)은 공헌배, <한국기독교사상사> (파주: 한국학술정보 북토리, 2014), 98-114에 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일본은 한국을 점령했다고 말하기보다 합방(合邦)’ 즉 통일(統一)했다고 주장합니다. 대관절 합방(合邦)’이라니? 예를 들어 독일이 러시아를 쳐들어 가 놓고 합방했다고 말합니까?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영국이 어메리카의 원주민들을 학살해 놓고 합방이나 통일했다고 말 할 까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합방(合邦)’이란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한다든가, 인도가 파키스탄과 한다든가,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한다면 이해가 될 듯합니다.

 

그 이유는 어떤 형태로든 역사적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왜 우리와 합방합니까? 대관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또 하나 이상한 게 있습니다. 그들은 1905년에 조선과 조약을 하면서 보호조약이라고 합니다. ‘보호라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그들이 왜 조선을 보호해 줍니까? 도대체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해 준단 말입니까? 조선이 언제 일본한테 보호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했습니까? 어느 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이라도 나라가 보존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청나라의 식민지였으면 우리는 아마 티벳처럼 되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러시아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었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몽고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일본의 식민지를 겪었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지성인이십니다. 도대체 그 분은 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을 까요? 정말 우리는 일본 아니었으면 큰 일 났을 까요? 만일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일본한테 감사해야지, 왜 그토록 심각한 불평을 합니까?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군요.

 

김운회 교수님의 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안내자 분(인류학 박사과정)으로부터 일본 고대사가 한국과 긴밀하다는 것을 모를 만한 일본의 지식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을 대단치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고분에서 백제의 유물이 나오면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기고만장하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것을 피할 뿐이지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중략) 한국과 일본, 이 두 나라의 고대 숙명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서 이 두 민족을 괴롭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일본은 고려가 몽골과 연합하여 일본 정벌에 나선 것을 두고두고 한국 침략의 이유로 들곤 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일본 고대 조정에서는 신라와의 관계가 악화되기만 하면 세이캉론(征韓論: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이론)이 들끓었다고 합니다.(중략) “근대 일본 지식인 치고 세이캉론자(정한론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중략) 이들의 뿌리는 무엇인지, 이들의 무의식 속에 있는 민족적인 갈등과 분노의 원천은 무엇인지, 그리고 천세(千歲)의 문은(文恩)’은 무엇이고, ‘백제와 일본은 민족 유대적인 숙명을 지니고 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의 의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 1. (서울: 해냄출판사, 2006), 23-26).

 

 

이거 들으면 들을수록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주장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고, 그래서 저는 이번 강의에서 소위 알려져 있는 ()’라는 단어에 집중하여 고대의 왜와 한민족과의 관계에 대해 조명해 보겠습니다.

 

한국인들은 종종 ()이라는 말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자칫하면 조상을 욕하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고대의 한국인들을 가리키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라는 단어에 대해 몇 가지로 살펴보십시다.

 

<삼국지> 30, 위서 30, 오환선비동이전 30, ‘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後漢 建安 년간(196-219)에 공손강이 둔유현 이남에 帶方郡을 설치하고(중략) 韓濊를 토벌하였다.(중략) 이후 倭漢은 대방군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당연히 한예왜한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따른다면 낙랑(둔유현의 소재로 볼 때)의 남쪽에는 대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 이 존재 했다는 말이 됩니다. 고대의 대방은 고조선의 거수국(족장국)이기도 했고, 한 때는 중국 한()나라에게 점령을 당한 한()의 군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倭漢이라는 문장은 무엇 일 까요? 이 단어를 해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대방군 안에는 ()’라는 인종도 있었고, ‘()’이라는 인종도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런데 이 왜()라는 단어는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마한의 남쪽은 왜와 접한다.”(<後漢書>, 85, 東夷列傳, ‘韓傳’)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안에 왜가 있었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리고 북대방은 본래 죽담성이다.”(일연,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제1, ‘북대방)라는 말도 있는데, 도대체 죽담성이 어디 일 까요?  <한반도의 왜>라는 EBS TV프로에서는 고대 어느 시기 한 때 한반도의 서남부에 ()’가 존재했었다고 밝혔습니다.

 

흔히 알려져 있기로는 나주의 반남고분을 왜()와 연관 짓습니다. 이 무덤은 옹관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런 무덤이 일본에서도 발굴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하필 대방이라는 말에는 가 따라 다닐 까요?

 

윤내현과 김부식의 글에서 유추해 낼 수 있는 주장을 감안할 때 고대의 馬韓은 오늘날의 평안북도나 요동 지방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그렇다면 마한 남쪽의 는 평안남도나 황해도로 여겨 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서지역이나 요동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둔유현 이남의 지역이 어쩌다가 공손강의 공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이 대방군의 관할 아래에 속했다라는 기록을 의지한다면, 대방과 와는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대방은 요서지역에도 있었고(윤내현의 주장), 한반도의 서남부에도 있었다고 합니다(일연의 주장). 그런데 중요한 것은 帶方代名詞처럼 보입니다.’

 

만일 고대의 마한을 오늘날의 평안북도로 볼 수 있다면마한남쪽의 황무지 왜를 개간했다라는 말은 평안남도나 황해도 지역을 개간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평안남도나 황해도로부터 시작되는)한반도의 전역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연의 기록에 나타난 전라북도나 남원 지방은 고대의 그 대방(帶方)이 아닐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음으로 고려할 점은 <광개토대왕의 비문>입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신라 사람들은 북쪽에는 말갈이 있고, 남쪽에는 왜인이 있고(중략) 이것이 바로 나라의 해가 된다.”그래서 신라의 남쪽에는 ()’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래에는 종종 이 왜를 일본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보면, 사로 남쪽에 있던 왜가 사로를 쳐들어 가 광개토대왕이 도와준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러는 그 왜를 가야로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만주원류고>를 따르면 고대의 삼한(三韓)은 한반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심양과 길림 일대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리 될 경우, 왜는 당연히 한반도의 북부 지방 이상(以上)에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 문제로 연변대학의 박진석 선생과 일본의 후루다다께히꼬 선생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집니다.요약하면 후루다다께히꼬 선생은 광개토대왕의 비문에 나타난 ()’는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에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반박한 분이 박진석 선생이십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그 광개토대왕의 비문에 나타난 왜는 일본 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박진석 선생보다는 후루다다께히꼬 선생의 주장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새로운 책들이 쓰여 지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하나로 김운회 선생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주장을 따르면 는 중국의 해안지방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해안지방들, 즉 한반도의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를 모두 왜()로 볼 수 있을 만큼 왜족(倭族)의 분포지역은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이럴 경우, 왜는 인종명인가 아니면 문화적 명칭인가의 문제가 남습니다. 다시 말하면, ()’라는 말이 문화적 명칭일 경우에는 해안지방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대명사(代名詞)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종의 명칭일 경우에는 왜족(倭族)’이라는 민족의 명칭으로 쓰여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두 가지를 다 포함할 수 있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왜인(倭人)’은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한국에서도 나타나며, 주로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었던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안지방이 아닐 경우에는 그 왜가 인종의 명칭으로 쓰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고조선의 거수 중 하나였던 대방이 만일 ()’로 불릴 수 있었다면 이는 고조선을 구성하였던 거수국 중 하나가 였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김운회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 하였습니다:

 

한반도에만 국한시켜서 본다면 현재 황해의 도서 지방과 한반도 남부의 해안 지대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해안 지방의 우리 민족을 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 사람들만을 왜라고 부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알겠죠? 왜냐하면 일본이나 한반도 남부 연안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요동, 산동, 평양의 연안 지역 사람들까지도 왜인이라고 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고대에는 한국인(韓國人)’이라는 말이나 왜인(倭人)’이라는 말은 별 개가 아니었습니다. 동의어로 쓰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군요:

 

<논어정의(論語正義)>에는 구이(九夷), 1은 현토(玄菟), 2는 낙랑, 3은 고려, 4는 만식, 5는 부유(鳧臾), 6은 소가, 7은 동도, 8은 왜인(倭人), 9는 천비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구이 중 하나로 왜()가 포함됩니다. 흔히 동이족(東夷族)’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중 하나로 가 포함되었다는 말일 까요? 보면 볼수록 왜와 한()민족과는 가까이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에 KBS에서 방영한 프로를 보니까 한반도의 서남부에서 발견된 왜인들의 형질은 백제계와는 차이가 있고, 대신 일본에 있는 왜인들의 형질과는 동질적이라고 합니다. 물론 백제계라는 말은 부여족(夫餘族)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유 엠 부찐 선생의 주장을 따르면 부여족은 알타이 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학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페이스북 그룹 시대와 종교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를테면 흉노족의 조상이 되는 산융족(山戎族)이 바로 알타이 족입니다.그래서 만일 왜족의 형질이 부여족과는 차이가 있다면 그 왜는 알타이 계는 아닐지라도 고조선의 거수나 동이족 중 하나 일수는 있습니다.

 

고대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주장 중 한 가지는 위만조선의 멸망 이후 새로 떠오른 세력은 부여나 고구려 같은 나라들이었습니다. 만일 부여가 알타이 계였다면 고구려도 알타이 계였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한()민족이 알타이 계였는가하는 점입니다.

 

소위 고아시아족이라는 종족이 있습니다. 흔히 이 종족을 원()고조선 종족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고아시아족의 정체는 불분명 합니다. 특별히 윤내현 교수님은 고아시아족이라는 명칭을 그다지 신뢰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종족인 조선족혹은 아사달 족이나 한()민족 그 자체는 없었을 까요?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왜족(倭族)은 어떠한 위상을 가졌을 까요? 북방계 일 까요 남방계 일 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고대 한반도에는 왜족이 거주하였다는 것만큼은 뚜렷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정리해 보십시다. 첫째, 고서에서 ()’라는 단어는 대방(帶方)’이라는 단어를 따라다닌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치 왜는 대방의 대명사인가 할 정도의 생각까지 들게끔 만듭니다. 둘째, ‘라는 단어가 나타난 지역의 분포는 중국 일부와 요동, 한반도의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셋째, 나주의 반남고분에서 발굴된 유골의 형질은 백제계(아마도 부여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인들이 일본에 거주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왜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한반도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에 한반도에는 왜인들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구성원들이 왜인들로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역사의 해석 및 고백이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동포가 맞습니까? 20세기 초·중반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하면서 한국인들과는 같은 나라임을 주장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임나일본부 설같은 지배이데올로기를 주장한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확실히 고대의 일본은 어떤 형태로든 한국과의 연관이 깊었습니다. 백제 뿐 아니라 가야나 신라와도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중반의 일본은 역사의 해석 및 고백이라는 명분을 조선인들에게 제시해 왔습니다. 이에 대한 그 당시 조선인들의 응답은 어떠했을 까요? 그리고 이와 같은 해석의 작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 한 가요?

 

다시 <삼국지> 30, 위서 30, 오환선비동이전 30, ‘전을 주목해 보십시다:

 

後漢 建安 년간(196-219)에 공손강이 둔유현 이남에 帶方郡을 설치하고(중략) 韓濊를 토벌하였다.(중략) 이후 倭漢은 대방군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한예왜한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을 해석해 보십시다. 첫째, 韓濊라는 단일적 인종, 둘째, 라는 두 인종의 복합성, 셋째, .다시 말하면 () 또는 =라는 견해, 넷째, .로 보는 경우, 다섯째, (), 그러니까 =, 여섯째 와의 복합적인 경우, 일곱째, 음차(音借)를 활용한 해석으로 좁힐 수 있습니다. 의 음차이고, ‘의 음차입니다.

 

이리 해석하는 이유는 공손강이 한예를 토벌했다면 당연히 한예가 공손강의 관할 하에 놓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한예를 음차 하여 왜한으로 썼을 뿐, ‘왜한이라는 실체가 따로 있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즉 한예의 다른 표현이 왜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궁금하여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을 윤내현 박사님께 의뢰해 보았습니다. 아래는 저와 윤내현 박사님과의 대화를 요약한 것입니다:

 

공헌배: 교수님, <삼국지> 30, 위서 30, 오환선비동이전 30, ‘전에 나오는 한예왜한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윤내현: 대방 안에 , , , 라는 네 개의 종족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공헌배: 그리 넓지도 않은 영토에 네 개의 종족이나 살았다는 말입니까?

윤내현: 그런 것 같습니다.

 

공헌배: 혹시 음차를 활용한 해석으로는 볼 수 없겠습니까? 공손강이 한예를 토벌했는데 무엇 때문에 倭漢이 공손강의 관할 아래에 들어갑니까? 한예를 토벌하였으면 당연히 한예가 그 관할 아래에 있어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윤내현: 사료에 그리되어 있으면 사료를 존중하여야 합니다. (전에) 이병도 선생이 어느 자료에서 위치인식이 이해되지 않아 사료를 고쳐 이해하였습니다. 즉 그 대목에 있어서만큼은 사료의 오기(誤記)일 것으로 이해한 거죠. 그러나 사료는 그리 이해하면 안 됩니다.

 

공헌배: 교수님, 그래도 의 음차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윤내현: 다를 겁니다. 사가(史家)가 그리 적은 데에는 이유가 있어서일 겁니다.

 

 

그래서 이 문장의 해석은 저로서도 쉽게 답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위의 문장으로 보아 또는 와는 관련이 깊어 보이는 데 정확히는 무어라 말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분명해 보이는 것은 대방은 또는 와는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설령 여기서의 왜()가 예()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라는 글자는 이라는 글자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대방으로 불린 지역은 로도 불리었거나 대방현의 구성원들 중에는 왜인들도 포함되었다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으로 불렀을 가능성은 없었을 까요? =일 가능성은 없는가입니다. 윤내현 박사님의 주장대로 하면 분명 은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이라는 문장의 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 까요? ‘의 출처 때문입니다. 만일 왜가 중국인이라고 한다면 그 , 고대의 고조선 중 하나였던 대방을 지배하러 온 점령군이었거나 중국으로부터 고조선으로 망명을 한 중국인들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가 한국인이었다면 그 는 고조선의 거수국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즉 고대 사회의 를 고조선 민족의 일부로 여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김운회 교수님의 주장을 들어보십시다: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운 책이지만 중국 최초의 지리지 <산해경(山海經)>개나라는 거연 남쪽이고 왜의 북쪽이며 왜는 연나라에 속한다(<山海經> 12 海內北經)”라는 말이 나옵니다(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 2, 138).

 

이 주장대로 하면 왜인들은 연나라(오늘날 베이징 지방)의 남쪽지방인 개나라보다 더 남쪽에 있었을 테니까 양자강의 하류지역이었거나 그보다 약간 북쪽 정도에 있었을 듯합니다. 이상하죠. 倭人이 중국 본토에 나오는군요. 좀 더 살펴보십시다:

 

<한서(漢書)>에는 낙랑의 바다 가운데 왜인이 있고 그것이 나뉘어 백여 국이 있었다(<漢書> 28 <地理志> 8 )”고 합니다(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 2, 139).

 

낙랑이라 함은 고조선의 거수 중 하나입니다. 즉 고조선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고조선의 거수 중 하나인 낙랑의 어촌민(漁村民)들을 가리키는 것 같지 않습니까?

 

<위략(魏略)>에서는 왜가 대방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고 산과 섬에 의지하여 나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천리 길에 또 나라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왜인들이다(魏略云 倭在帶方東南大海中(후략) <漢書> 28 , 地理志, 8 ; 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 2, 139).

 

여기서는 대방의 위치를 찾아야 왜인들의 거주지를 찾을 수 있을 듯한데, 대방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계의 설이 몇 개 있습니다. 대방은 낙랑의 둔유현 이남에 있었던 군현이었기도 하고, 고구려 때에는 낙랑의 인근에 있으면서 낙랑사람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해 간 사람들이 대방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방은 낙랑과는 멀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일 대방을 한반도의 황해도로 국한하게 된다면 그 동남쪽에는 바다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 있어서는 대방이 요서지방이나 요동 지방정도에 있어야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대방을 요서로 비정하면 그 동남쪽의 왜인들은 오늘날 북경지방의 동쪽 해안에 살았을 것 같고, 요동반도로 비정하게 되면 왜인들은 요동반도의 동남쪽이나 한반도의 서해안 사람들을 뜻하게 될 것입니다.

 

주천이라는 곳은 현재의 깐수성(甘肅省) 주취안(酒泉)인데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 큰 호수가 있고 그 호수에서 다시 동쪽으로 가면 왜인들이 산다는 말이 됩니다(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 2. (서울: 해냄출판사, 2006), 140).

 

깐수성은 중국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즉 만리장성의 남쪽인데 위도상으로는 산시(陝西)성인 북위 37도 정도로 산시성에서 내륙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상하죠. 왜인들은 바다가에 살기도 하고, 내륙에 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인들이란 중국인들 일 까요? 한국인들 일 까요? 아니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사람들 일 까요? 아니면 중국에 거주하던 동이족(東夷族)이었는데 한국으로 온 사람들 일 까요? 이를 밝히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김운회 교수님은 여러 가지의 정황을 통하여 왜를 한반도의 거주민으로 여기게 됩니다. 김운회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 하였습니다:

 

한반도에만 국한시켜서 본다면 현재 황해의 도서 지방과 한반도 남부의 해안 지대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해안 지방의 우리 민족을 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 사람들만을 왜라고 부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알겠죠? 왜냐하면 일본이나 한반도 남부 연안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요동, 산동, 평양의 연안 지역 사람들까지도 왜인이라고 했기 때문이죠(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 2, 145).

 

그래서 왜인=한국인이라는 공식조차도 성립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라는 말을 민족명(民族名)으로 쓸 것인가 문화적 명칭으로 쓸 것인가에 따라 그 이해는 또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문화적 명칭일 경우에는 바다 가에 사는 어민들을 뜻하는 어민들의 대명사(代名詞)처럼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명칭 일 경우에는 동이족이거나 고조선 거주족 중 하나이거나 중국민족의 일부이거나 하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복합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입니다. 민족명도 되고, 문화적 명칭 일 수도 있는 경우입니다.

 

한 가지 방법을 찾아보자면 체질 인류학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즉 나주의 반남고분에서 나온 유골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미 밝힌 대로 한다면 그 유골의 특징은 부여족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민족(漢族)일 까요? 아니면 한국민족(韓族)일 까요? 아니면 漢族韓族의 혼혈 일 까요? 역시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백입니다. 즉 고대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있습니다. 왜인들의 형질이 무엇이었든 그 왜인들은 고조선이나 삼한(三韓)과는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해석하기 나름인데, 부여족의 근처에는 숙신족(肅愼族)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고조선이나 고구려 민족의 일부로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왜인은 어떨 까요? 이들 역시 고조선 민족이나 한민족(韓民族)의 구성원으로 들어와야 옳지 않을 까요? 아니면 고조선 민족들 중, 일족(一族)을 뜻했거나 한민족(韓民族)을 뜻했던 다른 말이 ()’였을 가능성은 없을 까요?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일본 천황은 자신이 백제왕의 후손임을 밝혔습니다. 고대의 왜족(倭族)이 누구였든 간에 그 왜는 백제를 너무도 많이 도왔습니다. 그들은 백제를 재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으로 말미암아 대패합니다.

 

한국인들은 흔히 일본에게 사죄하라고 합니다. 이는 당연히 옳은 말입니다. 일본의 죄는 작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죄는 없을 까요? 우리는 일본한테 당하기만 했습니까? 우리 역사책에는 세종 때의 쓰시마 섬 정벌을 기록하였습니다. 말이 세종 때이지, 실은 태종 이방원의 계획이었을 겁니다. 단지 세종이 즉위한 이후여서, 세종의 치적으로 남습니다만 아마 이방원의 계획이었을 겁니다.

 

역사책을 따르면 200 여 척의 함대를 조직하여 쓰시마 섬을 토벌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일본 측의 이해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KBS에서는 이 사건도 잠시 다루었는데, 조선군이 쓰시마 섬을 쳐들어갔을 때, 쓰시마 섬에 남자들은 거의 없었고, 주로 여자들과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쓰시마 섬의 남자들은 거의가 배를 타고 멀리 나가 있었는데, 쓰시마 섬에 있던 여인들이 멀리서 배가 들어오자 가족이 돌아오는 줄 알고, 음식을 내놓고 환영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배에서 내린 남자들이 조선의 점령군 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즉 그 당시의 조선군은 일본의 여자와 아이들과 싸워 이긴 것이다. 이 사건을 일컬어, 조선에서는 쓰시마 섬 정벌이니, ‘왜구토벌이니 한다는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종종 말하여 져 왔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왜구입니다. 즉 정규군이 아니라 해적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해적이 과연 일본에만 있었을 까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약탈하러 간 해적들은 없었을 까요? 이런 것 역시 일본 측과 공동으로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순수하고도 의로워 죄가 거의 없고, 일본인들만이 죄로 가득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엉터리입니다.

 

고려 말 한반도에서 여·몽 연합군이 어마어마한 군대로 일본을 쳐들어갔습니다. 몽고의 세조 쿠빌라이 칸은 중세의 역사 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였던 사람입니다. 도대체 그에게 부족한 게 무엇 일 까요? 무엇이 모자라 그 일본까지 쳐들어갑니까? 여러분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일본인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입니다. 그에 비해 몽고인들은 아시아인들 중에도 체질이 큰 편에 속합니다. 그러면 일본인과 몽고인이 전투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몽고인들의 덩치는 일본인들에 비해 두 배는 될 텐데, 그들은 신()무기까지 동원하여 일본으로 갔습니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초기에는 달랐지만 후기에는 신라가 일본인들한테 위협적인 존재자들이었습니다. 일본은 신라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그 당시 가장 번성하였던 당나라까지 가세하여 일본인들을 죽이러 갑니다. 그 때 일본인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혹시 상상해 보셨습니까? 이와 같은 종류의 무의식이나 기록들 또는 문화재들이 일본에는 많습니다.

 

, 일본인들에게 있어서의 고대사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이었던 심리의 작용일 수도 있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싫어하듯 고대사를 목격하지 않았던 일본인들도 한국에 대한 심상(心象)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일본인들은 한국인들과 합방(合邦)’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인들이 했던 일은 설득이 아니라 힘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힘이면 다 될 까요? 그리고 조선인들은 무엇 때문에 일본을 설득하지 못했을 까요? 불행스럽게도 20세기에는 조선인들의 힘이 일본인들의 힘 보다 약하였습니다.

 

그래서 힘이 없었기 때문에 남의 나라의 힘을 빌려 일본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불행스러웠던 것은 그 남의 나라조차도 일본의 힘에 밀렸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 보십시다. 한일(韓日)관계를 힘으로 푸는 것이 바람직 할 까요? 힘이면 무엇이든지 다 됩니까?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까? 힘에 의한 보복이 반복된다면 서로 불신(不信)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해도 믿지 못합니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데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일본과 조선과의 관계에서는 설득이나 이해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힘에서 설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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