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예레미야

예레미야 43:8-13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7/27 [15:58]

예언자 예레미야

예레미야 43:8-13

공헌배 | 입력 : 2019/07/27 [15:58]

 

방금 읽은 본문은 애굽의 멸망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피면, 이스라엘은 애굽과의 교류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다나라에는 친()애굽적 정치인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애굽파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정황과는 반대의 의견을 주장합니다.

 

, 구약성경은 애굽에 대한 배타성이 아주 강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출발을 반()애굽으로부터 잡을 정도로 애굽에 대해 배타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고백하기를 애굽으로부터 탈출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애굽에 대한 비판으로 도배되어 있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반 애굽적입니다.

 

애굽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요시야를 성경은 개혁군주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철저할 정도로 반애굽적인 면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설교를 하기 전에, 구약학회의 회장을 역임하신 교수님과도 전화로 통화했습니다.

 

성경본문은 예레미야의 예언으로 이집트, 애굽이 바빌로니아에게 망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에 견주어 볼 본문으로는 이사야 19장입니다. 그곳을 보면 애굽의 몰락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한 군데 같이 찾아보십시다: 같이 찾으실 말씀은 이사야 203-4(989쪽 언저리)입니다.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읽음).

 

그 당시의 예언자들은 말로써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예언했는데, 이사야는 벗은 몸으로 지냈습니다. 그 행동은 애굽에 대한 예표인데, 이집트와 그 남쪽에 있는 이디오피아까지 앗시리아한테 망하여, 사람들이 알몸을 드러내고 포로로 끌려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를 따르면, 애굽은 신()바빌로니아에게 망하고, 이사야서를 따르면, 애굽은 앗시리아한테 망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애굽은 이래저래 얻어터지다가 망하고 몰락한다는 예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질적 사태는 어땠을까요? 남 유다의 경우, ()애굽파들이 있었습니다. 즉 신바빌로니아가 싫어, 애굽에게 기대려 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강력하게 반대한 예언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듣기 좋았을까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유다의 왕 시드기야나 그 주변의 친 애굽파들은 예레미야의 말이 정말 듣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가짜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역사가 지나고 나서는 알 수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가짜에게 더 쏠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의 역사에 견주어 보십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 때, 애굽에 견주어질만한 나라가 있는가? , 있습니다. 이는 중국입니다.

 

제가 쓴 논문 중에 심적 외상을 통해 본 야훼종교와 진한의 이주민들이 있는데, 이 논문은 <계명신학> 15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논문에서 동아시아에서 애굽에 견줄만한 나라는 중국이라고 했습니다.

 

역사 문제를 길게 설명할 수는 없어, 비교적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는 약 500년 정도입니다. 500년 동안 고려가 겪은 뚜렷한 한 가지의 현상이 있었습니다.

 

이는 고려 사람들로서는 너무도 뚜렷하게 반복적으로 겪은 일이었습니다. 그게 뭘 까요? : 중국의 몰락입니다.

 

고려시대 때의 중국을 송()으로 부르는데, ()은 줄기차게 연거푸 북방민족에게 망합니다.

 

그 첫 번째로는 전연의 맹이라 하여, 요나라에게 당하는 사건입니다. 요나라는 거란족이 세웠는데, 북방민족의 나라입니다. 송나라가 힘에 밀려 요나라에게 엄청난 양의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난 후에 송나라는 또 망합니다. 제가 뭐라고 했죠? 송나라는 중국입니다. 그 송나라가 요나라 이후에는 금()나라한테 망합니다. 그런데 이 금()나라는 누가 세웠을까요? 이는 금나라의 역사서에 나옵니다. 신라의 후손이 세웠습니다. 금나라 민족을 여진족으로 부르는데, 이 여진족 부족들을 규합하여 세운나라가 금입니다. 만주에 있었습니다.

 

이 금나라는 경주 김씨, 즉 신라의 왕족이 세웠거나 신라 귀족의 후손이 세웠습니다. 즉 금나라 역사서를 보면, 신라 사람의 후손이 아골타인데, 아골타가 세운 나라가 금입니다. 소위 전금으로 부릅니다. 이 전금은 북송지방을 점령합니다. 쉽게 말해 중국 대륙을 반토막 내서 그 북쪽지방을 점령했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북쪽이 망하니까 중국 사람들은 남쪽에다가 다시 나라를 세워, 유지해야 하겠지요? 그 나라가 바로 남송입니다. 그래서 북송 지방을 지배한 금나라가 꽤 오래갑니다. 이쯤 되면 고려로서는 중국이 별 볼 일 없다는 걸 알 법도 하지요? 우리나라의 <고려사>에도 나옵니다. 금나라는 신라 사람이 세운 나라다.

 

그런데 그 금나라도 망합니다. 누구한테 망할까요? : 칭기즈칸. , 몽고한테 망합니다. 이리되면 북송, 즉 중국의 북쪽 지방은 누가 다스리게 될 까요? 몽고가 다스립니다. 그런데요. 이게 특이합니다. 몽고의 세조 쿠빌라이 칸은 아예 남송까지도 점령해버립니다. 그래서 중국의 전역이 몽고한테 지배받게 됩니다. 그 기간이 꽤 깁니다.

 

이쯤 되면 한반도에 살던 고려인들로서는 중국의 멸망과 중국의 몰락을 연거푸 줄기차게 경험했다고 여겨도 되겠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한반도에 살던 고려인들은 몽고한테 맞섭니다. 몽고에서는 고려한테 화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화친: 잘 지내보자는 뜻이지요. 화친하자는 몽고에게 고려는 어떤 뜻을 보여주었을까요? 싸우자고 제안합니다.

 

그 당시의 몽고는 지구의 절반을 지배했습니다. 중세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바로 몽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몽고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력하게 결의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고려였습니다: 멍청한 겁니까 무식한 겁니까? 아니, 몽고는 우리한테 싸우자는 게 아니라 먼저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고려는 몽고에게 줄기차게 날을 세웠습니다. 그러면 몽고가 가만 있겠습니까? 쳐들어오겠지요? 쳐들어 왔더니, 고려가 졌습니다.

 

그래서 졌으면, 좀 덜 설쳐야 할 텐데, 더 극력하게 맞섭니다. 그러면 몽고인들이 가만있겠습니까? 잘 해보자는 데 계속 싸우자고 덤비니, 안 싸울 수가 없잖아요. 가만 두면 계속 덤비니까 힘을 빼야겠지요? 그래서 고려에게 점점 더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그래서 안 맞아도 될 걸, 매를 벌어들입니다. 더욱 더 무거운 조공에 더욱 더 강한 짐을 지워버립니다. 국력이 소진할 때까지. 왜요? 가만 두면 계속 덤비거든요.

 

김운회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고려가 아닌 타 민족이 고려처럼 몽고에게 저항했다면 몽고는 아마도 그 민족을 지구에서 없애버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즉 멸종시켰을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려였기 때문에 몽고가 많이 봐 줬다고 합니다. 실지로 몽고 황실에서는 고려 여인을 황후로 맞아 줄 정도로 고려에게는 관대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기황후입니다. 아무나 황후로 맞지 않습니다. 고려인이었기 때문에 받아준 겁니다.

 

그러나 그 고려도 계속 저항하니까 어쩔 수 없이 몽고로서도 고려를 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반도에 있는 신라의 유적들 중에는 적석목곽분이 있는데, 이는 과거 몽고지역에 있던 무덤 양식과 흡사합니다. 그래서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은 북방유목민들이 남하하여 세운 나라일 걸로 학계에서는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반도 사람들은 왜 그리 몽고한테 불만이 많았을까요? 그거 별로 도움 되지 않을 텐데요.

 

그러다가 드디어 몽고도 몰락합니다. 몽고가 몰락해 가자, 고려에서는 다시 세력 다툼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바로 그게 친()몽고파와 친()중국파와의 갈등이 되겠습니다.

 

고려의 내부사정에서는 누가 이겼을까요? ()중국파가 이깁니다. 바로 그 친중국파 패거리가 이성계 장군을 등에 업고 혁명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나라가 조선입니다. 이씨 조선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고려왕조 500년 동안 겪은 게 중국의 몰락이었는데, 고려 말의 유교파 패거리들은 다시 친()중국 정책으로 갑니다. 그토록 장기간 줄기차게 중국의 몰락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 식 관료들은 중국의 종이 될 것을 자처했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조선입니다.

 

어찌 됐을까요? 대략 200년 쯤 지나고 나니, 일본에서 요청을 해옵니다. ‘가도입명명나라로 가려 하는데, 길 좀 열어주시오! 여기서의 명나라는 당연히 중국입니다. 열어주었을까요? 택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안 열어주면 어떻게 될 까요? 아작 납니다.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으로까지 이어진 7년 전쟁은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중국으로부터 돌아설 만도 하겠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더 조선을 시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북방민족입니다. 누구일까요? 후금입니다. 후금은 누가 세웠을까요? 역시 신라의 후손이 세웠습니다. 좀 전에 말씀 드렸지요? 금나라의 후손 아골타가 세웠다구요. 그러면 후금은 누가 세웠느냐? 아이신죠로 누루하치가 세웠습니다.

 

아이신죠로는 무엇인가? 한자말로 애신각라(愛新覺羅)입니다. 애신각라란,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겠다입니다.

 

그래서 후금도 신라 사람이 세웠습니다. 유난히 금나라, 즉 여진족의 나라는 신라와의 연관이 깊습니다. 이 후금을 조선에서는 어떻게 상대했을까요? 쳐들어갔습니다.

 

왜 조선이 후금으로 쳐들어 갔을까요? 명나라가 시켜서!

 

갔다가 어떻게 됐을까요? 조선 군사 수천 명이 궤멸됩니다. 후금이 이깁니다. 그리고 누루하치의 아들 홍타이지가 임금이 됐을 때,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 전쟁이 바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입니다.

 

이 전쟁이후 조선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다. 이게 과연 조선에게는 책임이 없었을까요? 그 당시의 조선인들은 중국숭배 사상을 가졌습니다. 이름 하여 중화사대주의입니다. , 중국이 자신들의 상전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 사상 때문에 동포한테 묵사발나게 터진 민족이 조선인들입니다. 조선인들이 뭐라 했는 줄 아십니까? 중국은 자신들의 부모랍니다.

 

그래서 여진족 너거들이 우리를 괴롭히면 중국이 도우러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안 오거든요. 그러자, 드디어 조선왕이 항복했습니다. 항복해서 삼전도에서 여진족에게 3번 절하고 9번이나 고개를 숙이는 예를 올렸습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됐을까요? 만주족의 세조 순치제에 이르러, 드디어 후금은 중국정벌에 나섭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중국은 여진족, 즉 만주족에게 망합니다. 인구비례로 하면 만주족은 한줌도 안 됩니다. 그 한 줌도 안 될, 만주족에게 수억의 중국인들이 200년 이상 지배받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쯤 되면 조선에서는 뭔가 깨달을 만도 하지 않습니까? 조선의 지도층은 뭔가 되게 미련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와 같은 조선의 미련한 헛발질들은 또 멈출 줄 모릅니다. 세월이 지나자 일본이 다시 들어옵니다. 어떻게 하면 될 까요? 뭘 알아야 말이지요. 그거 아십니까? 일본 천황은 백제왕의 후손입니다. 백제가 남입니까?

 

이씨 왕조라 하는 것은 전주 이씨입니다. 전라도 이씨에요. 다시 묻습니다: 백제가 남입니까? 그 당시 일본의 주장은 상당히 강력했습니다. 합방입니다. , 일본과 한반도와의 통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가서는 그렇게 주장 안 했습니다. 유독 한반도에 와서는 합방한다. , 통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1905년에 조약을 하는데, 그게 바로 을사보호조약입니다. 조선에서는 이걸 을사늑약으로 부르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보호조약으로 부릅니다. 누구로부터 보호해 주려 했을까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청일전쟁 때에는 일본 측과 중국의 리홍장이 조약을 합니다. 물론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전쟁 후에 조약(시모노세키 조약)을 하는데, 그 첫 조항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조선은 완전무결한 독립국이다. 청나라 너거는 손 떼라 우리가 관리한다. 이거지요.

 

그런데 기미독립선언문을 보니, 조선은 그 당시까지도 중국인들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중국()은 망했던 나라였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그때(기미년)까지도 중국인들을 염려했지 뭐에요!

 

혹시 이 책 보셨습니까? 이거 제가 쓴 책인데요. 이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면서 오늘의 이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기독교는 역사관의 종교이기도 합니다. 기독교를 표현하는 말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구원사, 신명기 역사관, 역대기 역사관, 변증법적 신학,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즉 기독교의 이해는 단순히 사실의 나열이나 실증사적 이해를 따른 가설적 진술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해하고, 고백하며, 순종할 뿐만 아니라 믿음을 가진다는 데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빌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이 떠졌습니다. 그게 성경에 많이 반영됩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를 거친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 역사 이해를 가져야 할 까요?

 

함석헌 선생님처럼 고난사관을 가지면 됩니까?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고난만 있었습니까? 영광은 없었습니까? 누구처럼 유교적 성경 읽기를 할 까요? 조선은 500년가량이나 유교를 따르다가 철저하게 몰락한 나라입니다. 그만하면 많이 한 것 아닐 까요? 안병무나 서남동 선생처럼 민중사관으로 볼 까요? 그런데 구약성경이 과연 민중사관 일 까요?

 

구약성경에서 결정적 변수 중 한 가지는 바로 바빌론 포로기였습니다. 아마 구약학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제 말이 그런 대로는 옳다고 여기실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바빌론 포로기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로만 말해보면 우선 외교에 있어서의 반향(反向)입니다. 즉 애굽을 다시 본 것입니다.

 

신명기 역사서는 애굽을 별로 좋지 않게 여깁니다. 예레미야의 경우에도 반()애굽적입니다. 애굽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 일 까요?: 애굽은 고대의 강대한 제국이었으며, 찬란한 문명을 꽃 피운 나라입니다. 구약 성경이 그러한 애굽을 동경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성경은 애굽에 대한 비판으로 도배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반()애굽적 특성이 두드러집니다. 물론 그 애굽은 이스라엘의 인근에 있으면서 이스라엘과 내왕할 만한 요건을 갖춘 나라임은 두말할 나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솔로몬 모두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친()애굽적 사관인 것은 아닌 듯합니다.

 

두 번째로 성경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성은 신관(神觀)입니다. 이야말로 기독교 성경의 핵심 중에도 핵심인데, 성경은 애굽의 신을 반대합니다. 아울러 가나안의 농경신도 반대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 일 까요?

 

성경이 문명을 추구하라고 주장했을 까요? 놀랍게도 성경은 문명을 꽃 피웠던 나라들이 어떻게 망하는지를 철저하게 보여줍니다.

 

이에 견줄 때 고대의 한민족(韓民族)은 어떤 민족이었습니까? 이는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에서 배운 통찰로 한민족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 가지의 의견을 말하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반지나적(反支那的) 유목사관(遊牧史觀)’입니다.

 

만일 조선이 소중화적(小中華的) 모화사대관(母華事大觀)’으로 지나족에게 충분히 충성하였고, 고대의 한반도 신라가 당나라에게 충분히 신세를 졌다면 이제 우리는 반지나적(反支那的) 유목사관(遊牧史觀)’을 가질 필요도 있지 않을 까요? 일제 36년이라는 끔찍한 고난의 시간을 겪은 우리가 이 시기에 또 다시 지나를 숭배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될 까요?

 

저는 아직 반지나적 유목사관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는 실험적 대안입니다. 또 저는 반지나적 유목사관에 대한 임상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힘을 모으면 어떨 까요? 만일 과거에 고려가 유목민에 대해 조금 더 긍정적이었더라면 그 당시에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 까요?

 

개인적 고백을 하여 죄송합니다만 저의 본은 곡부(曲阜)이고, 들은 대로 하면 저는 공자(孔子)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제가 기독교인이어야 할 이유 한 가지를 찾으면 바로 반유교적(反儒敎的) 선택에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한반도 자체에서 유교를 철학적으로 이해하여, 이게 사상적으로 일리가 있느냐 없느냐를 논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조선인들은 그 사상의 가치를 넘어 실정성에 있어서 충분할 정도로 질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공자 선생의 책임이 아니라 조선의 정치가들이 져야 할 책임임에는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유교가 싫습니다. 굳이 말씀드리면 저는 19세기 말의 내한 선교사님들에게 한 가지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선교사님들이, 조선인들을 중화사대사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중요한 탈출구를 제공한 데 있습니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말 하였습니다: 기독교인 하나가 늘어나면 중국인 하나가 줄어든다그렇다면 저는 거기에 동의합니다. 기독교를 통해서 만이라도 일단은 중국인 하나를 더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선말의 그 지긋지긋했을 상황을 감안한다면 일단은 서양 선교사님들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과제가 있다면 미래입니다. 성경은 우리민족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려온 백년 중에는 기독교의 공과 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갈 길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잘 하려면 과거에 대한 해석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해석을 위해 한국사에 대한 이해는 필수입니다.

 

* 이 설교는 필자가 어느 지역의 연합회에서 했습니다. 설교도중 밖으로 나간 분도 계시고, 이 설교 후, 식사할 때 어느 목사님이 저에게 설교 같지 않은 설교 하느라 수고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설교라는 것이 때로는 대단히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 날의 그 설교 이후 청중의 반응은 싫어했던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기 좋은 설교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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