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교단 목회자들에 대한 단상

왜 목회가 좀 더 힘들어졌을까?

공헌배 | 기사입력 2019/06/18 [12:26]

통합 교단 목회자들에 대한 단상

왜 목회가 좀 더 힘들어졌을까?

공헌배 | 입력 : 2019/06/18 [12:26]

 

웬만하면 나는 아래와 같은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이 글을 쓴다는 것은 학자들의 치부와 같을만한 것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괴로워 나는 사람들이 어지간히 해 주길 바랐는데, 그 사람들은 무슨 자존심들에 상처를 입었다고 느끼는지, 고장 난 기관차처럼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만큼 인간들의 관성이나 습관들은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인간의 뇌는 조건반사의 기능을 갖고 있어 어떤 사태들을 반복하면 그것이 마치 진리인 양 주입된다. 엄격하게 말하면 진리라기보다는 관습이 된다. ‘윤리라는 말의 어원 에도스에는 어떤 것을 반복하여 실행한다는 뜻이 있다. 쉽게 말해 에도스는 습관 또는 관습이다. 그래서 윤리는 사실 문화이거나 습관이거나 인간들에게 세뇌되어왔던 조건반사 기능의 현()사태들이다.

 

내 신분이 목사라 이런 것까지 말해주는 게 좋지 않다. 내가 주장한다고 하여, 군중심리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교회사를 쥐꼬리만큼이라도 배웠다는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기로 했다.

 

사람들은 왜 자꾸 예수님을 거론하며 종교에 대한 절제와 희생정신을 말할까?

 

그렇게 세뇌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걸 좀 근사한 말로 하면, 윤리교육(관습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목사들이 실행하는 작업들이 교육(훈련)이기 때문에 이걸 부인하면 선생이나 정치인, 목사들 모두 타격받는다.

 

임마누엘 칸트 식으로 인식론을 배우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므로 그냥 배운 대로 관습을 따라, 사는 데 익숙하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보자,

 

대학교의 교수직 세습에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게 정당하다고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에 대해서는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쓴다.

 

왜 그럴까?

 

평소 목사와 함께 살아온 관습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인들은 목사에 대해 필요이상으로 신경 쓰는 경향이 있고, 목사들도 교인들의 일에 신경 쓰기 때문이다. 한국이 유독 심하다. 유럽의 교인들은 한국의 교인들만큼 목사에게 신경 쓰지도 않을 듯하며, 한국만큼 목사에게 의존적이지도 않을 듯하다. 그들은 심방 받는 것을 사생활 침해로 여긴다고 한다.

 

한국교회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 칼뱅주의를 실행할만한 사회적 능력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교육 때문에 자신들은 칼뱅주의를 배웠다고 느낀다. 극히 일부의 자료들만으로도 황홀할(?)정도의 낙관론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당시의 사정이 열악했다. 그러나 그 시대로서는 놀라운 경험이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되었고, 선교사들은 점진적으로 손을 떼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한국의 교회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기 시작했다. 자유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아무에게나 주었을 때에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 당시의 한국교회는 자유를 누려도 될 만큼 준비되지 않았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다가 중요한 이슈가 터져버렸다. WCC가입 논쟁이었다.

 

이 사태이후, 한국의 장로파 교회들은 수 백 개로 갈라져 버린다.

 

물론 교파분열 말고도 엄청난 분열들을 겪는다. 즉 같은 교파 안에서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같은 교파 안에서도 개척 및 분립 현상은 다반사였다.

 

일제시대에 없던 심각한 분열이 실행 됐다. 즉 수틀리면 갈라섰다. 마음 안 맞아도 갈라섰다. 목사가 싫어도 갈라서고, 교인이 싫어도 갈라서며, 기분이 상해도 갈라섰으며, 자존심이 상해도 갈라섰다. 보기 싫으면 찢으면 됐다.

 

일제시대의 선교사들 입장에 견준다면 무법천지나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부모나 선생을 잃은 고아와 같은 신세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은 자유를 얻었다든가, 자립 했다든가, 소위 민주주의를 실행한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WCC사태 이후, 신학교육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보수 측에서는 정통주의와 구 프린스턴 또는 전통신학 교육에 몰입한다. 그러나 진보 측에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갈라 서 버렸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그 갈라 선 값어치를 해야 할 텐데, 문제는 이름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명분 때문이다. 가령 대한예수교 에큐메니컬이렇게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소위 그 당시의 지식인들의 무의식의 소원들은 그렇게 바꾸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신학적 욕망을 실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사뭇 다르다. 신학자들에게 조종 받을 필요가 없는 곳이다.

 

문제는 목사후보자들인데, 신학에 입문하면 그때부터 교회와의 괴리들이 실행된다. 그러나 마치 자신들은 교인들과는 다른 지식들을 배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수혜를 입는 계층은 신학자들이 된다.

 

그럼 여기서부터 신학교육을 생각해보자, 갈라 서 버린 교파의 신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에큐메니컬, 성서비평학, 해방신학, 종교신학 등 자신들이 외국에서 배워왔던 지식정보를 퍼 날라야 한다.

 

학벌 좋고 가방 끈 긴 사람들에게 높은 년봉들을 줘 가면서 그들의 넋두리들을 들어주다가 졸업한다. 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문제는 졸업이후부터 생겨버린다.

 

교회로 가야 했다. 차라리 종교학과로의 편입이 더 유리했을 일일 텐데, 특이하게도 신학교의 육성회원으로 부름 받은 적지 않은 분들이 다시 신학교에 기부를 실행한다. 사람들은 이게 당연하다고 교육받아 왔다.

 

? 가방 끈 긴 교수님들은 언제나 우수하며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이니까!

 

결국 지식인들에게는 유리하게 그리고 목사들에게는 혹독하게!”라는 무의식의 실행들이 현실적으로 나타났는데, 황야와 같은 벌판으로 내동댕이 쳐 진 목사들에게는 보호자도, 배운 전통도, 매뉴얼도 모두 부실했다.

 

일제강점기를 생각해보시라! 한반도의 장로파 교회 신학교는 단 한 곳, 평양신학교 뿐이었다. 그러나 교파의 분열들은 많은 신학교를 만들게 되고, 따라서 신학박사들의 일자리들은 계속 늘어난다.

 

신학자들이 강조하는 교파 일치가 실은 신학자들에게는 가장 불리하다. 왜냐하면 교파가 늘어나야 신학교가 늘어나며, 신학교가 많아져야 일자리 또한 많아진다.

 

그럼 교회는 왜 수적으로 성장해야 하는가? 신학교수들의 일자리를 위해서!

 

아무도 이런 식으로는 말하지 않겠지만 사회과학 해보면 답 나오잖아요!

 

신학 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얼마나 나쁜 놈 되는 것인가?

 

원래 초기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의 치리란 딴 거 아니다. ‘치리(디시플린)’란 단어는 훈련인데, 이것은 목사가 교인들 벌주는 제도다. 다시 말해 교인들 훈련시키는 제도였다. 법률의 매뉴얼도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광복 이후 교파가 갈라지면서 이 치리가 형사소송법의 형태를 베끼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치리가 재판으로 변해버렸다. 법리훈련을 받지 않으면 교인들을 훈계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즉 치리하지 말라는 뜻이 된 셈이다. 목사들이 모두 법대 출신들은 아니지 않은가!

 

갈라진 교파에서의 목사들은 점점 더 불리해진다. 그 후부터는 목사가 교인들을 치리하는 게 아니라 교인들이 목사를 고발할 수 있는 구조로 변모해갈 수도 있게 됐다.

 

게다가 임시목사제도의 오용은(사실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는데) 목사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만들게 된 셈이다. 이토록 불이익을 당하는 목사들에게는 무엇이 위로가 될까?

 

다름 아닌 성경이 된다: 예수님도 고난 당하셨는데, 바울도 고난당했는데, 십자가의 길인데...

 

모두모두 정당한 윤리와 심리적 보상이 돼 버린다.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분명 초기 한국장로파 교회의 전통과는 심각한 괴리를 갖는다.

 

이 구조에서 언제나 이익을 볼 수 있는 수혜계층은 누구인가? 당연히 지식인들이다!

 

,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현상이 가능했겠는가? 력현(力現)이다. 힘이 모자라면 나가야 하고, 힘이 넘치면 휘어잡게 된다. 물론 어중간한 곳도 있다. 그 힘의 원천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대략 난감한데, 까리스마를 갖거나 목사가 매력 있거나 개척하여 주도권을 잡거나 가방 끈이 엄청 길어서 교인들을 압도하거나 설교를 해서 교인들로부터 눈물, 콧물 다 빼내거나 기적을 일으키거나...

 

물론 이와 같은 행태는 엄밀하게 말해 칼뱅주의는 아닌 듯하다. 사실 대한예수교 장로회를 전통의 칼뱅주의와 동일 시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전통의 칼뱅주의만을 가르칠 수도 없게 됐다. ? 갈라 서 버렸으니까!

 

그리고 유학 가서 칼뱅주의를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많은데 왜 굳이 칼뱅주의를 유통시키겠는가? 칼뱅주의는 다양한 신학의 루트들 중 한 매뉴얼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신학자들의 넋두리들을 실컷 들어 준 뒤, 현장으로 가보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럼 현장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특이하게도 일제시대와는 달리, 목사에 대한 기대와 목사들에 대한 반향과 목사들에 대한 간섭과 목사들에 대한 윤리와 목사들에 대한 온갖 투사(投射)들이 실행될 수도 있는데, 이걸 다 들어줄 수가 없다.

 

쫓겨나거나 휘어잡거나 타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신학교수들은 전쟁터와 같은 곳으로 자신들의 제자들을 내몰면서도 매뉴얼 교육을 해주지 않았다.

 

전통에서부터 갈라 진 교파에서는 교회현장에서 WCC교육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모 교단이 WCC에 가입했다고 하여, 교회에서 무슨 WCC교육이라도 하는 줄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WCC는 가르칠 필요가 없는 데, 목사들의 힘들이 약해졌다. 원래 일제시대 때 가졌던 그 존중심들과 권위들이 심각하게 타격 받았다.

 

다시 말해 일제시대와 같은 방식의 매뉴얼을 쓸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일제는 무조건 나쁜 것이란 식의 사회적 감정에 덧입어 목사들이 알아서 해야 됐다.

 

그렇다면 갈라진 교파에서는 어떤 관습들이 실행됐겠는가?

 

전통(초기 한국장로파의 매뉴얼)은 배우지 못해도 다양한 서양신학들은 배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제각기 뭔가를 해야 된다.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태에서의 습관은 지식인들에게는 관대하게 그리고 목사들에게는 야박하게 그러나 까리스마를 가지면 관대하게 된다.

 

그러나 교파적으로는 한 가지의 중요한 관습이 제법 오랫동안 실행됐다. 그 교파에서는 목사들이 불이익 당하는 것을 관성처럼 여겨, 힘을 갖는 것을 싫어한다. 개교회적으로는 몰라도 집단적으로는 그런 경향이 있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도구가 나오는데 예수님의 삶, 바울의 삶, 십자가의 길 등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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